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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열면서 한쪽선 세제혜택 폐지 … 정책 ‘엇박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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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호 18면

거래는 있지만 사고 판 흔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 바로 지하경제의 특성이다. 금(金) 거래 시장이 대표적이다. 현물과 현찰을 주고 받기 때문에 당국은 거래를 포착하기 어렵다. 음성 거래는 관행이 됐다. 이를 양성화하고 세금을 정상적으로 걷는 게 필요했다. 정부가 지난 3월 ‘KRX 금 거래소’(이하 금 거래소)를 연 이유다. 5개월이 흘렀다. 금 거래소는 애초 취지대로 금 거래 양성화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을까.

개장 5개월, 지지부진한 KRX 금 거래소

국내 금시장의 특성을 이해하려면 생소한 단어 두 개를 숙지해야 한다. ‘앞금’과 ‘뒷금’이다. 세금을 내고 정상적으로 거래된 금이 ‘앞금’, 음성적으로 거래된 금은 ‘뒷금’이다. 현재 국내에서 금을 사고 파는 데는 크게 3가지 방법이 있다. 우선 시중 금은방을 통해 장신구나 골드바를 사고 파는 방법이 있다. 두 번째로는 은행을 찾아가 금 실물을 매매하거나 금 적립계좌를 개설해 적립식 투자를 할 수 있다. 마지막이 금 거래소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은행이나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금은 모두 ‘앞금’이지만 시중 금은방에서 거래되는 금은 대부분 ‘뒷금’이다. 뒷금 거래로 인한 세금 탈루액은 연간 30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금 거래 통장 개설한 뒤 매매
정부는 금 거래소를 열면서 국제시세와 동일하게 금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했다. 거래 방법도 주식시장과 똑같아 편리하다. 금 거래 통장을 개설해 돈을 넣어 둔 뒤 금 매입이나 매도를 주문하면 된다. 자신이 보유한 금의 양과 거래 후 남은 잔액이 통장에 표시된다. 그램(g) 단위로 사고팔 수 있지만 실물로 찾아갈 땐 킬로그램(kg) 단위로만 가능하다. 정부는 금 거래소 활성화를 위해 1년 동안 거래 수수료도 면제하고 거래액의 일부는 소득세에서 공제해주기로 했다. 실물로 찾아가지 않는 한 부가세 10%를 내지 않아도 된다. 공도현 거래소 금시장 운영팀장은 “투자 목적으로 금을 보유하려면 굳이 실물로 집에 보관하는 것보다 금 거래소에 개설한 통장으로 보관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수수료와 각종 세제 혜택, 안전성도 확보됐지만 지난 5개월간 거래소의 금 매매량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거래량이 하루 평균 3~5kg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국내 총 금 거래량을 하루 100kg으로 추산한다. 이 중 ‘앞금’은 거래소와 은행, 세금계산서가 발행된 시중유통 분을 합쳐도 25%에 불과하다.

금 거래소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금을 사는 수요자나 금을 공급하는 공급자나 모두 ‘뒷금’ 거래에 비해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부가세 안 낸 시중 뒷금이 오히려 저렴
먼저 수요 측면. 뒷금의 가격은 부가세 10%를 내지않아 생긴 이익을 업자와 개인이 6대 4로 나누는 방식으로 매겨진다. 예를 들어 국제시세가 3.75g(한 돈)에 16만 원일 경우, 시중 뒷금 가격은 16만 원이 아니라 16만4000~17만원 사이에 매겨진다. 제대로 납부하지 않는 부가세를 거래 가격에 얹기 때문에 국내 금 가격은 항상 국제시세보다 높다. 거래소 가격(=국제시세)이 100이라면 뒷금은 100.6~100.7에 거래되는 식이다.

하지만 거래소에서 금을 국제시세(3.75g=16만원)에 산 뒤 현물을 찾아갈 때는 부가세 10%가 붙은 17만6000원을 내야 한다. 거래소를 통해 금 현물을 매입하면 시중에서 사는 것보다 더 비싸게 사는 것이다. 가격이 더 비싸니 거래소를 외면하는 게 당연하다. 금 현물을 찾지 않고 주식처럼 계좌상으로 거래해 자본이득을 올리려는 투자자 외에는 금 거래소를 이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어 공급 측면. KRX 금 거래소에 금을 팔 수 있는 곳은 정련업체다. 개인은 거래소에 금을 팔 수 없다. 정련업체들은 시중에서 금붙이를 사들여 녹인 뒤 골드바를 만들어 거래소에 공급한다. 문제는 정련업체들도 시중에서 국제시세의 100.6~100.7의 가격으로 금붙이를 사들인다는 점이다. 이들 업체는 사온 금붙이를 녹여 골드바로 만든 뒤 국제시세인 100에 거래소에 납품해야 한다. 시중에서 16만4000원에 사온 금을 16만원에 납품해야하니 공급을 할 이유가 없다.

정부는 그나마 ‘뒷금’을 ‘앞금’으로 양성화하고, 세금도 내도록 유도했던 ‘의제매입’ 제도를 지난해 말 폐지했다. 이 제도는 금 업자가 금을 팔 때 부가세 10%를 받아 17만 6000원에 ‘정상’ 거래할 경우, 원래는 매입근거가 없는 ‘뒷금’이었으나 ‘16만원에 사온 금’이라고 신고하면 매입근거로 간주해 매입금액의 103분의 3(대략 3%)을 세액공제해주는 제도다. 이 제도가 4년간 운용되는 동안 세금감면 규모는 2009년 164억, 2010년 236억, 2011년 292억, 2012년 246억원에 달했다. 이로 인해 정부도 부가세 2500억원 규모를 더 걷었다. 금 거래는 연 5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데 이 중 5% 가량이 양성화된 것이다.

정련업체인 삼덕금속의 최팔규 회장은 “의제매입제도가 지속됐다면 거래소에 국제시세대로 납품하더라도 돌려받는 세금이 있어 금을 공급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련업체들이 시중에서 16만4000원에 재료금을 사오더라도 3%에 해당하는 4800원을 환급받을 수 있어 공급이 활발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최 회장은 “의제매입제도가 없어지면서 거래소도 활성화되지 못하고 그나마 일부 양성화되던 금 거래도 일제히 음성으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제매입제도 폐지 이유에 대해 “정책 효과가 적었다”고 설명한다. 기재부 부가가치세제과 이승규 사무관은 “부가세 환급의 혜택이 소비자들이 아니라 가짜 신고서를 만들어낸 업자들에게 돌아갔고, 금에 꼬리표가 없다 보니 ‘앞금’이 됐다가도 언제든 ‘뒷금’이 된다는 점 때문에 정책효과가 지속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금 거래소에 공급용으로 수입되는 금지금(金地金·금덩어리)에 대한 세금문제도 거래소 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재 금지금에 대해서는 관세 3%를 면제해주지만 관세 면제액의 20%에 해당하는 0.6%를 농어촌특별세로 내야한다. 국제시세대로 사온 금이 세관을 통관하는 순간 0.6%만큼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다.

‘금파라치’ 도입, 효과 있을까
정부는 금 거래 양성화의 보완책으로 지난 7월부터 ‘10만원 이상 현금거래시 현금영수증 발행 의무화’ 제도를 도입했다. 100만원어치를 현금으로 산 개인이 110만원을 안 받은 금방 주인을 신고하면 100만원의 40%를 세금으로 매기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때 걷은 세금 가운데 절반(20%)을 신고자에게 포상금으로 지급하고, 20%는 국가에 귀속시킨다. 이른바 ‘금파라치’(금+파파라치)제도다. 효과가 있을지 아직 판단하기 어렵지만 금 업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종로에서 금방을 운영하는 김 모씨는 “부가세 없는 거래가 일반적인 상황에서, 소비자가 부가세 없이 사고 싶어해 팔았는데 갑자기 범법자로 몰고 간다”며 “정부가 올바른 거래 시스템을 못 만들어내고는 국민끼리 감시하도록 조장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또 다른 금은방 주인은 “세무공무원이나 수사기관들이 부가세 탈루를 방조한 뒤 금 거래업자들을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온현성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장은 “거래소에서 금을 사고 파는 게 도리어 손해가 된다면 거래가 활성화 될 리가 없다. 금 거래가 양성화되고 주얼리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금 관련 세제를 정교하게 짜야 한다”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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