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KB금융 중징계 큰소리 치더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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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22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는 하루 종일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날 자정을 넘겨 나온 KB금융지주 수뇌부에 대한 징계 결과가 그간 공언해 왔던 ‘중징계’에 못 미친 탓이다. 민간 위원들이 주축인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는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게 나란히 경징계인 ‘주의적 경고’를 결정했다. 경징계는 금융회사 임원 자격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됐다”며 한탄했다.

 금감원은 은행 주전산기 교체를 둘러싼 내분 사태와 도쿄지점 부당대출 등 각종 금융사고에 대해 특별검사까지 벌였다. 이를 토대로 두 최고경영자(CEO)에게 사실상 ‘사퇴 권고’를 의미하는 중징계를 사전 통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확정하기 위한 두 달간의 심의 끝에 나온 결과는 한마디로 완패였다. 한 제재심의위 참석자는 “법이나 규정을 위반했다는 입증 없이 단지 물의를 일으켰다거나 관리를 철저히 못했다는 책임을 물어 경영진을 경질하자는 건 무리”라며 “결정 과정에 큰 이견은 없었다”고 전했다. 감독당국이 ‘군기 잡기’를 위해 서둘러 검사를 벌이고 무리하게 중징계를 시도했다가 되레 역풍을 맞은 셈이다.

 자리를 지키게 된 두 CEO들은 이날 오후 지주사·은행 임원들과 함께 경기도 한 사찰로 1박2일의 템플스테이를 떠났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통해 수습에 나서는 모양새를 취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간 깊어진 갈등의 골을 메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장 주전산기 논란이 다시 불거질 조짐이다. 국민은행은 지난 4월 IBM의 메인 시스템을 유닉스 시스템으로 전환하기로 이사회에서 결정했다. 이 행장과 감사가 이에 문제를 제기하며 내홍이 시작됐다. 이 행장은 이날 “주전산기 교체 문제를 이사진과 다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지주 측 한 인사는 “이미 결정한 내용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두 CEO가 모두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은 것도 향후 수습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국민은행 노조는 “임 회장과 이 행장에 대해 직무정지 가처분 등 민·형사 소송을 제기하고 임시 주주총회 소집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민근·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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