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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독일군 침공하자 발레단 피란시킨 스탈린,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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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아폴로의 천사들:발레의 역사
제니퍼 호먼스 지음
정은지 옮김, 까치
736쪽, 3만5000원

1941년 6월 소련을 침공한 독일이 모스크바로 다가오자 스탈린은 국가 자산을 대거 후방으로 피란시켰다. 야포·전차·비행기를 만드는 군수공장과 행정조직은 물론 문화 인프라도 포함됐다. 극단·오케스트라·영화촬영소와 함께 발레단도 유럽의 동쪽 끝인 우랄산맥 자락으로 옮겼다. 발레는 무슨 일이 있어도 후손에게 안전하게 넘겨야 하는 ‘문화재’임을 잘 보여주는 일화다.

 이곳에서 연습한 발레리나들은 야전병원과 군수공장으로 떠났다. 화약과 피 냄새가 진동하고 포성이 울리는 최전방의 흙투성이 공연장에서 이들은 치열하게 춤을 췄다. 잠시 뒤 죽음의 전장으로 떠날 어린 병사들 앞에서다. 옛 소련의 발레리나 울라노바는 전선에서 ‘백조의 호수’ 공연을 보고 힘을 얻었다는 병사들의 편지를 받고 울먹였다고 회고했다.

 이렇듯 발레는 역사였고 문화유산이었고 국민의 영혼이었다. 우아함의 대명사이자 환상적인 스토리텔링과 치열한 예술성을 담은 발레는 이런 처절한 현실 속에서 성장해왔던 것이다.

 발레리나였던 지은이는 이 책에서 발레와 역사의 만남을 시도한다. 400년이 넘는 역사의 발레가 어떻게 지금처럼 우아함과 예술성을 대표하는 예술 장르로 발전했는지를 상세히 짚어본다. 발레에는 테크닉·안무·공연만이 아니라 르네상스·고전주의·계몽주의·낭만주의, 심지어 볼셰비즘과 냉전, 모더니즘까지 인류 문화와 지성의 정수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발레에는 인간의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이 묻어있다. 법칙·활용·변화 등 어떤 언어 못지않게 엄격하고 복잡한 움직임의 체계인 것이다. 그 법칙은 임의적인 게 아니라 자연 법칙과도 통해 자연과학적이기까지 하다는 게 지은이의 설명이다. 입증가능한 물리학적인 진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레는 육체가 아름답게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몸의 예술이다. 수많은 사람의 춤에 대한 헌신과 열망이 이러한 완성을 이루게 했다. 아울러 프랑스·이탈리아·러시아·영국·미국 등 국가별 특성도 반영하고 있다.

 지은이는 고대 그리스에서 문명의 신이자 치유, 예언, 음악의 신인 아폴로에서 발레의 표상을 찾는다. 시·미술·음악·팬터마임·춤 등 종합예술의 구현자이자 절제된 아름다움의 상징인 아폴로는 발레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발레는 정신과 육체, 그리고 영혼을 아우르는 종합예술이다. 이런 복합성은 발레를 감정과 느낌이 충만한 예술로 승화시킨다. 발레의 치명적인 매력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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