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3)|물레질에 담긴 3장의 내재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예부터 민족이 있는 곳에 그 민족 특유의 시가 있어왔다. 멀리 태서의 이야기는 그만두고라도 우리 한문 문화권인 동양 3국을 살펴보면 중국에 오언이니 칠언이니 하는 한시가 있고, 일본에 단가니 배구니 하는 자기네 나름의 고유시가 있는가 하면, 우리 나라에는 한국 특유의 뛰어난 가형인 3장 6구의 시조가 있어왔다.
그런데 이 제각기의 시가들이 하나같이 우연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시가 수천년 수만년 동안 풍우에 씻기어 단단하게 광택이 나는 큰 산 큰 계곡의 반석 같은 것으로서, 중국이란 대륙의 끈질기고 요지부동한 민족성과 그 역사의 장구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일본의 단가 (5, 7, 5, 7, 7)니 배구 (5, 7, 5)는 그 자수의 긴축성으로 보나, 그 노래솜씨의 삽상한 맛으로 보나, 일호의 군더더기를 용납하지 않는 그네들의 성품이며 식성까지 여실히 나타내는 것으로서, 어떻게 보면 그네들의 너무나도 빽빽한 여유롭지 못함까지가 엿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시조는 또 어떤 노래인가? 우리 민족 시인 시조는 초·중·종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초장이 3, 4, 3, 4, 중장도 3, 4, 3, 4인데 종장만이 유독 3, 5, 4, 3으로 자수의 변용을 가져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시의 오언이나 칠언, 일본의 단가·배구가 모두 자수의 배열에 있어서 한 자의 가감이나 어떠한 변용도 용납이 안 되는데 반해, 우리시조는 초장·중장에 있어서도 자수의 가감 (다음에 상술하겠음)이 가능할 뿐 아니라, 종장에 와서는 물굽이가 한바퀴 감았다가 다시 풀어져 흐르는 듯 하는 변용 (3, 5, 4, 3) 을 가져오는 것이다.
그러면 다른 나라들의 시가가 일행 직류인데 반해 유독 우리 시조만이 직류에다 일곡을 더 보태어 마치 여름날의 합죽선처럼 접었다 펴는 시원함을 가져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여기에 그 연유한바들을 소개하기로 한다.
나이가 든 사람이면 누구나가 다 알겠거니와 옛날 밤을 새워가면서 잣던 할머니의 물레질, 한번 뽑고 (초장), 두번 뽑고 (중장), 세번째는 어깨너머로 휘끈 실을 뽑아 넘겨 두루룩 꼬투마리에 힘껏 감아주던 (종장) 것, 이것이 바로 다름 아닌 초·중·종장의 3장으로 된 우리 시조의 내재율이다.
이만하면 초장·중장이 모두 3, 4, 3, 4인데 왜 하필이면 종장만이 3, 5, 4, 3인가 그 연유를 알고도 남을 것이다. 이런 시조적인 3장의 내재율은 비단 물레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백반에 걸쳐 편재해 있는 것이다.
설 다음날부터 대보름까지의 마을을 누비던 걸립놀이 (농악) 의 자진마치에도 숨어 있고, 오뉴월 보리타작 마당 도리깨질에도 숨어 있고, 우리 어머니 우리 누님들의 다듬이 장단에도 숨어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모든 습속, 모든 행동거지에도, 희비애락에도 단조로움이 아니라 가다가는 어김없이 감아 넘기는 승무의 소매 자락 같은 굴곡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 하나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우리 국학자들 중에서는 더러 우리 시조의 3장을 견강부회로 한시의 기, 승, 전, 결에다 억지로 떼어다 붙여, 초장이 기요, 중장이 승이요, 종장이 전결이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한심한 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일본의 학자들이 자기나라 시가를 아직 그 누구도 한시와 결부하여 이야기한 논거를 찾아보지 못했는데, 하필 우리 학자들이 우리시조를 한시와 관계지으려고 하는 뜻은 무엇인가? 이 것도 항용 말하는 사대주의 사상에서 온 풍조라면 깊이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또 요즘시조를 쓰는 시인들 중에는 시조가 이미 창에서 떠난 지가 오래라고 한다.
그러나 시조창이 시조시의 발상의 도출에 원용된다는 것은 하나의 철칙(?)인 것이다. 제각기의 민족시가 제작기의 민족 정서의 필연적인 귀결이라면, 우리 시조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판소리, 우리의 시조창도 우리 민족 수천년의 조용하고 은은한 내부의 흐름의 소리겠기에 말이다.
하나에도 둘에도 시조에의 용념은 3, 5, 4, 3인 종장에 있다는 것을 말해 두고, 이제 다음 회부터는 자수고로 넘어가기로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