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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사」…기술·장비 모두 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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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윤상군 유괴사건의 범인들은 목소리와 필적을 남겼다.
공범으로 추정되는 여인을 목격한 여학생도 있었다. 윤상군을 싣고 간 검은색 승용차를 본 이웃주민도 있다.
그런데도 왜 범인은 잡히지 않는 것일까. 한마디로 과학수사체제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성문감식에 의해 유괴범을 검거한 실례도 있지만 우리나라 과학수사연구소나 경찰에는 한 사람의 성문감식 전문가도 없다.
외국에서는 「레이저」광선을 지문감식에 이용, 옷이나 「카피트」, 인체에 남긴 지문까지도 채취·분석해 내고있다.
범죄가 날로 지능화되고 복잡해짐에 따라 수사의 과학화가 시급한 것으로 오래 전부터 지적돼오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과학수사의 수준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209.
우리나라 과학수사의 총본산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치안본부 감식계가 있다.
과학수사연구소나 감식계 직원들은 『그늘진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자신들을 표현한다.
「과학수사의 첨병이라는 생각보다는 일선경찰이나 수사기관에서 의뢰해 온 자료를 감정·감식하는 기술자정도로 여긴다. 「과학수사」를 지휘하는 기능도 없다.
감식계에는 4백50명의 직원이 있지만 4백여명이 여직원이다. 채취된 지문이나 전과자사진을 분류·정리하는 일이 업무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도 경찰국에도 감식계가 있지만 전담직원은 5∼6명. 일선 경찰서 형사계에도 감식요원이 1명씩 배치돼 있으나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있는 수사요원들은 아니다.
따라서 과학적인 수사자료를 연구기관에서 분석·정리해도 이를 활용할 수사관도 없는 실정이다.
사건 현장에 나가 기초적인 수사자료를 수집하는데 필요한 장비를 갖춘 감식차량마저 9대밖에 없어 강원·충북·제주도는 배정도 못 받고 있다.
「과학수사」는 말뿐이지 인력이나 장비 시절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다. 현재 우리나라 수사기관서 범죄가 발생했을 때 취급하고 있는 감식·감정업무중심으로 「과학수사」의 언저리를 점검해 본다.

<지문감식>
지문은 만인부동, 종생불변이라고 한다.
개인을 식별하는 수만과 방법은 많지만 지문처럼 정확한 것은 없다. 똑같은 지문이 없기 때문이다.
윤상군 유괴사건의 범인들도 지문을 남기지 앉기 위해 무척 애를 쓴 것 같다.
5차례의 협박편지에서 경찰이 발견해낸 지문은 단1개.
그러나 이 지문도 희미하고 1개뿐이어서 아직 누구의 것인지 가려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은 주민등록 때 모두 지문을 찍어둔다.
따라서 우리나라처럼 지문에 의한 개인식별이 손쉬운 나라도 없다.
얼굴이 없는 시체도 열 손가락 지문만 채취하면 3분내에 신원이 판명된다.
79년6월 부산동래여인토막살해범 이양길의 검거는 지문에 의한 대표적인 수사였다.
이는 피해자 양희자양을 살해한 후 면도날로 10개 손가락 끝에 있는 지문을 모두 도려내 버렸다.
치안본부 감식반은 면도칼로 완전히 없애버린 시체의 손가락에서 속살지문을 채취해냈다.
재생 채취된 지문을 4백여명의 직원들이 이틀 밤을 새우면서 6만여장의 지문 원장과 대조 끝에 피살자는 「부산시 부산진구 당감동 산1 양희자·23세」라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우리나라도 범죄와 관련된 사람의 지문은 1911년 이후부터 모두 보관돼 있다.
현재 치안본부에는 독립운동을 했던 유관순·전대통령 이승만박사의 지문도 보관돼 있다. 일본경찰이 채취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지문에 분말이나 액체를 묻혀 채취하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레이저」광선을 이용, 이미 없어진 지문이나 피부·의류 등에 남은 지문도 또렷하게 채취해 내고 있다.

<흔적감정>
필적이나 족적, 「타이어」흔적, 범행에 사용한 도구·냄새 등도 식별해 수사에 활용한다.
필적이나 족적·냄새 등은 미리 조사해서 자료로 남겨둘 수 없기 때문에 흔적감정은 용의자나 범인을 검거했을 때 동일한 인물인지를 확인하는데 이용한다.
윤상군 집에 보낸 범인들의 필적도 감정했지만 ▲한사람이 계속 편지를 쓰지 않았으며 ▲글씨나 문체가 고교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졌으며 ▲연령층이 40대 후반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필적감정에는 필압에 의해 필자의 성격·건강상태도 찾아낼 수 있다.
고질병환자나 호리호리한 체격은 필체가 무겁고 반대로 비만형이거나 우둔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필체가 가볍다. 또 필적은 유전성이 있어 쌍둥이의 필적은 비슷하다는 것.
효주양 유괴사건의 범인 이원석도 협박편지에 글씨를 고의로 흩갈겨 썼지만 필적감정결과 진범임이 밝혀졌다.
필적은 2백자이상의 문장을 3번 정도 반복해 쓰면 개인식별이 가능하다.
족적채취 기술은 우리나라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 모포나 「소파」등에 남긴 발자국도 찾아낸다.
심지어 발자국 모양에 의해 범인이 절름발이인 것을 밝혀낸 일도 있다.
족적감정에서 일반적으로 보폭이 50cm이하이면 키가 1백50cm이하고 50cm이상이면 신장이 1백60cm이상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냄새 감정에는 경찰견을 동원하지만 우리나라 경찰은 경찰견 사육비가 부족해 10년 전에 기르던 냄새감식견을 없애버렸다.

<목소리감식>
목소리는 「제2의 지문」으로 과학수사에 널리 쓰인다.
성문감식은 1950년 미국에서 개발됐다. 50년 12월 어느 날 「뉴욕」공항에 괴전화가 걸려왔다.
『24시간 내 「뉴욕」공항에 폭발물을 터뜨리겠다』는 협박전화였다. 경찰은 전화협박범을 색출하기 위해 물리학자인 「더월런드」씨에게 전화목소리 분석을 의뢰했다.
「더월런드」씨는 2년 동안 미국의 사투리 1백23가지를 수집, 용의자를 추적해 범인을 검거했다.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전과자의 목소리를 녹음, 분광기로 분석해 「필름」으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군 관계수사기관에서만 목소리 감정을 하고있을 뿐 일반 범죄수사에는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몽타지>
범인을 목격했지만 누군가를 모를 때 경찰은 목격자에게 전과자 시진을 열람시킨다.
치안본부에는 현재 약40만장의 전과자 사진을 보관하고 있다.
모든 범죄자의 사진이 다 보관돼 있는 것은 아니고 강도·절도·사기·유괴·통화위조 등 중요한 범죄를 저지른 전과자의 앞모습·옆모습·서있는 모습이 흑백사진으로 수록돼 있다.
범죄 수법별로 전과자의 사진을 대조해도 범인을 가려낼 수 없을 경우에 목격자의 진술을 토대로 「몽타지」를 만든다. 「몽타지」작성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몽타지」와 범인이 검거됐을 때의 적중률은 75%점도.
「몽타지」는 ▲앞이마와 머리형 ▲눈썹과 눈모양 ▲코 ▲입과 턱모양 등 얼굴을 4등분해서 그린다.
치안본부 「몽타지」작성실에는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인물들의 얼굴형태가 다 보관돼있다. 『영화배우 김모양을 닯았더라』『정치인 이모씨의 콧수염과 비슷한 수염이 났더라』 는 등 목격자의 진술을 그대로 재현하기 위해서는 「모델」의 그림이 항상 준비돼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화학감정>
머리카락·타액·혈액·정액·대소변 등의 감식에 의해 범인을 가려내기도 한다.
범죄의 수법이나 지능이 발달함에 따라 사건현장에서 범인이 남긴 지문을 찾기가 점점 어렵다.
그러나 지능적인 범죄자라도 자신의 머리카락 한오라기 정도는 남기게 마련이다.
살인사건의 경우 피살자가 반항하면서 1∼2오라기의 머리카락이 뽑혀지거나 강간사건현장에 범인의 음모 1오라기 정도는 떨어져 남을 수 있다.
법의학의 발달로 머리카락으로 범인의 혈액형을 가려내거나 남녀구분·연령식별이 가능하다. 머리카락도 지문과 비슷한 특징이 있어 30배 정도로 확대하면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남자의 머리카락은 끝이 뭉뚝하고 여자는 길고 끝이 파열돼 있으며 음모나 겨드랑이 털은 끝이 가늘고 갈색이다. 사람의 머리털은 하루에 1백오라기 정도는 자연적으로 빠지며 하루에 0.3「밀리」씩 자란다고 한다.
머리카락에 묻은 기름이나 냄새·먼지종류로 직업이나 생활정도 등을 식별하는 것은 기초적인 것이다.

<거짓말탐지기>
거짓말 탐지기는 피시험자의 ▲혈압 ▲맥박 ▲호흡량 ▲땀의 발생상태 등을 기록, 이를 분석하여 진술내용에 거짓이 어느 정도 섞여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거짓말탐지기의 정확도가 98%정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탐지기 조작·분석에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는 시·도 경찰국마다 거짓말탐지기가 1대씩 배정돼 있고 20여명의 전문요원이 있지만 활용이 잘 되지 않고 있다. 4년제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후 2년 이상 훈련을 거쳐야 탐지기를 수사에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거짓말 탐지기는 피시험자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는 효과가 없는 것도 문제. 【김재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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