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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족구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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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캠퍼스에 족구왕이 나타났다. 말 그대로 족구를 잘해서 족구왕이다. 이 청년은 족구를 찌질한 복학생의 전유물쯤으로 여기는 다른 학생들 앞에서 전혀 기죽지 않는다. 학교에 족구장 건립을 건의하기까지 한다. ‘족구왕’(21일 개봉, 우문기 감독)은 족구를 소재로 우리 시대 대학생들이 피부로 느끼는 현실을 발랄하게 그려낸 청춘영화다. 취업에 청춘을 저당 잡힌 대학생들의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하되 이를 지나치게 꼬집지는 않는다. 대신 청춘을 건강하게 불태우는 주인공 만섭(안재홍)의 열정을 통해 극 중 다른 대학생들, 나아가 관객들을 감화시킨다.

 제대한 지 닷새 만에 대학에 복학한 만섭은 기숙사 선배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권하자 ‘공무원에 관심없다’며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에 몰두한다. 바로 족구와 연애다. 학자금 대출 이자를 갚느라 온갖 아르바이트에 바쁜 처지이면서도 족구를 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학교 퀸카 안나(황승언)에게 열심히 구애도 한다. 이런 만섭의 열정은 점차 주변 학생들을 변화시킨다. 극 초반의 만섭은 세상에 이런 덜떨어진 복학생이 있나 싶을 정도인데, 점차 꽤 멋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오밀조밀한 조연 캐릭터와 아기자기한 웃음도 이 영화의 재미를 더한다. 새침데기 안나를 비롯해 다이어트 때문에 오로지 다시마만 먹는 복학생 창호(강봉성), 먹성만 좋고 족구는 못하는 미래(황미영), 왕년의 축구 스타 강민(정우식) 같은 주변 인물들의 개성과 이들이 만섭 때문에 달라지는 모습이 한껏 부각된다. 특히 교내 족구대회 장면에서는 만화적인 재미가 폭발한다. 식품영양학과의 만섭은 다른 학과 학생들과 토너먼트 식으로 대결을 벌이는데, 학과마다 개성이 도드라진다. 결승전에서 만섭이 쌍둥이킥, 즉 두 선수가 동시에 공을 찰 것처럼 공중에 떠서 상대편을 현혹시키는 기술을 구사하는 장면에서 이 영화는 절정을 이룬다.

 이 영화가 첫 장편인 우문기(31) 감독은 끊임없이 웃음을 안겨주는 와중에도 그와 비슷한 또래의 청춘을 향한 진심 어린 메시지를 담아내는 연출력을 발휘한다. 우 감독은 “현실을 비판하려 한 게 아니라 앞으로 60년을 더 산 뒤 다시 지금의 청춘으로 돌아온다면, 지금처럼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것인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할 것인가, 그걸 묻고 싶었다 ”고 말했다.

장성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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