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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법문은 문자나 언어로 파악할 수 없어『산은 산이고 물은 물…』|원광스님과의 회견(부산일보 게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큰스님, 요즘 건강은 좀 어떠하십니까?
『그냥 그런 대로 괜찮지. 그래, 자네는 그 동안 잘 있었나. 꽤 오랜만이지.』
-예 꼭 2년만에 큰스님을 뵙는 것 같습니다.
올해로 고희를 맞은 큰스님. 그러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형형한 눈 빚의 호안은 변함이 없다.
얘기를 하면서 자꾸만 조바심이 났다. 신문사에서 청탁을 받은 일 때문이다. 나는 큰스님의 일상생활 신조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얼른 말문을 열지 못하고 머뭇거리는데 손님(스님)이 또 대기하고 있다는 전갈이 왔다.
결국 l시간 지난 뒤에 다시 뵙게되었다.
「이놈」하고 호통을 치지나 안을까 두려워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뜻밖에도 아주 선선한 표정이었다.
『그래 무슨 말인데….』
-큰스님께서 이번에 제7대 종정직을 수락하신데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으면….
『자네도 잘 알겠지만 옛날부터 나는 어떠한 공직에도 나가지 않았어.
이번에는 종단 내외의 형편이나 여러모로 심각한 때라서 제발 안 하겠다는 말만이라도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할 수 없이 아무 소리도 않고 가만히 있었던게야. 내 이름이라도 내보내서 종단이 잘된다면 내가 왜 그걸 거절하겠는가?』
-큰스님께서 보내신 법어에 대해서 사람들이 모두 알쏭달쏭하다는 얘기들을 합니다만…. 특히『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대목이 어렵다는데….
『그래, 그보다 더 할말이 있겠는가? 본래 비지법문이란 문자나 언어로 파악할 수 없고, 분석이나 논리가 지니는 허구성을 극복한 것인데, 사물을 인식의 대상으로 보는 어줍잖은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
-종단의 여러 가지 상황과 현실에 대해 큰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종단이 나아갈 길과 승려들의 자세에 대해서 한 말씀을….
『뻔한 일 아닌가. 종단은 화합해야 하고 승려들은 수행해야지. 본래 승려란 화합하지 못하고 서로 이해하지 못하니 오늘날과 같은 아픔과 어지러운 현실을 겪는 것이지.
또 승려는 공부는 안하고 엉뚱한 시비분별에 빠져서 허덕이니까 관권이 개입되어 정화작업이라는 뼈아픈 역사의 기록을 남긴 것이 아닌가.
지금 우리 불교는 지극히 위험한 혼미상태로 초비상시가 아닌가 말이다. 앞으로 우리가 이런 구태를 벗어버리고 참다운 중흥의 길, 사는 길을 찾아야 할텐데 그러자면 집에 사는 우리 중들이 부처님 앞에 목탁 치고 신도들 명복이나 빌어주는 그런 불공이 아니고 이웃을 도와주는 것이 참 불공이라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이것을 참으로 실천해 나갈 때 비로소 우리 불교는 새싹이 트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지.』
-흔히들 말하기를 요즘의 현실을 인간상실이니 물질 만능이니 해서 역사적 비관론까지 들고 나오는 사람도 있는데 큰스님께서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본래 돈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아프고 괴로운 꼴을 당하거든. 똥보다 더러운 것이 돈인데 그걸 모르고 돈 돈하고 쫓아다니니까 자연히 똥보다 더 더러운 돈 냄새가 나게 마련이지. 모든 것을 다 돈으로 기준 삼는단 말이지. 사람이 돈의 주인이 돼야하는데 돈이 사람의 주인이 되어서 그렇단 말이야.
그러나 돈의 가치를 잘 알고 그 사용을 바르고 참되게 할 수 있다면 하나도 겁낼 일이 없지. 세상의 일이란 항상 그런 상대적 개념이 있으므로 해서 윤회 상전하는 것이니 그 실상을 잘 파악해서 스스로 체득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그렇게 되려면 부처님 말씀대로 따르고 행하는 길 밖에 없단 말이야. 부처님 말씀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실현을 뜻하며 부처님 말씀대로 행한다는 것은 자미득도 선도타 하는 보살정신의 현실적 구현을 의미하는 것이라 이 말이다. 여기에다 더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주관적 의식과 객관적 현실의 대립의 연속이니 자기실현 없이는 슬기로운 용기가 없을 것이고 그런 지혜를 갖추지 못한다면 객관적 판단의 기능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티칸」시 교황청의 교황은 l년에 한두 번씩 꼭 세기적 나들이를 하는데 올해는 일본에 가겠다 해서 세계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해인사 경내의 법석 말고는 일체 대중 앞에 서기를 거부하고 계시지요.
요즘「매스컴」의 보도진들이 큰스님을 친견하려고 왔다가 모두 헛걸음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큰스님을「신비주의자」「괴짜스님」이라고들 말하고 있습니다. 대중 앞에 안 서시는 이유는 무엇이며 만약 중생제도를 위해 대중 앞에 서실 뜻이 있다면 그 시기는 언제가 되겠읍니까.
괴짜 스님이란 말에 파안대소를 한 큰스님은.
『수미산이야 남풍이 불건 북풍이 불건 항상 수미산이지. 그리고 내 행동은 옛날 조사스님들의 행적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
큰스님은 이 말씀을 끝으로 더 말씀하시기를 거부 하셨다. <이하 생략>
총무원 간부 스님들의「세배친견」을 통해 흘러나온 이 종정의 불교계 현실을 보는 태안과 높은 수행력은 다시 한번 세간의 화제가 되면서 오늘의 한국불교 현실에 회초리 같은 따끔한 충언으로 깊이깊이 되새겨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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