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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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올해부터 구정이 공휴일로 지정되는가 했더니 또 유산됐다.
구정아침 서울거리는 공휴일 모습 그대로인데도….
일제 땐 『설을 쇠면 잡아간다』고 했다. 낯선 사람이『제사를 지냈느냐』고 물으면『모른다』고 대답하라는 것이 어른들의 당부였다.
웬만한 종교는 모조리「유사종교」라는 굴레를 씌웠고, 우리 재래의 것은 모조리 없애야 「내선일체」가 된다는 계산이었다.
그래서「우리 설」은 쇠지도 못하게 했다.
한민족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내기 위해 설을 못 쇠게 한 이유였다.
해방이 되어 자유를 찾았으니 「우리 설」을 마음대로 쇤다고 좋아했더니 얼마 안되어 왜 정 때 듣던「2중 과세」가 또 문제가 되었다.
차례를 지낼 때 양주나 「콜라」 「사이다」를 잔에 부어 올리고, 「크리스머스」날이라도 좋으니 아무 때나 쉬는 날에 조상에게 문안을 드려도 좋으련만 굳이 음력설을「우리설」이라고 고집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런 고집이 7백회 이상의 외침(외침)에도 이 땅을 지켜온 끈기이기도하다.
예부터 설의 의미는 요즘 식의「새해의 첫날」정도가 아니었다. 산업사회가 되어가니 양주나「콜라」로 차례를 지내거나, 추위에 떨기보다는 석유가 많이 나는 산유국으로 이민을 가는 편이 좋겠다는 심산이라면 더 할말은 없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과 다른 것은 하늘이나 땅이 다르고 그 땅에 사는 사람이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나름대로 누려온 문화적 전통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들 스스로가 민족정신의 원동력이 되는 전통을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구세대의 낡은 유물로만 착각해서는 안 된다.
뿌리가 깊을수록 나뭇가지와 잎은 무성해지기 마련이다.
내년에는 우리설을 공식으로 쇠 봤으면 한다. 김태곤 (경희대민속학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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