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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광 프란치스코, 어릴 때 유리창 꽤나 깼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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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메시(오른쪽)가 지난해 8월 이탈리아전을 앞두고 교황(가운데)에게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를 선물했다. 왼쪽은 이탈리아 골키퍼 부폰. [사진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54)는 최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이렇게 썼다.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평화를 위한 축구경기’에 참가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무척 영광스럽다.”

 평화를 위한 축구경기는 아르헨티나 대표팀 출신 수비수 하비에르 사네티(41)가 설립한 자선단체와 로마 교황청이 공동 주최하는 이벤트다. 최근 20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 분쟁 중단을 기원하는 자선경기다. 그래서 교황이 직접 나서 마라도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성(聖)과 속(俗), 영(靈)과 육(肉)을 구분해 말한다면 스포츠는 속세의 사람이 즐기는 육체의 향연이다. 그러나 교황 프란치스코(78)의 시각은 다르다. 고정 관념을 깨는 자유분방한 행동으로 ‘록스타 교황’으로 불리는 그는 스포츠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남다르다. 카톨릭의 ‘사커 스타’라고 불려도 될 정도다. 프란시스코 교황은 세대와 인종·언어·문화 등 서로 다른 가치를 이어주는 다리이자 소통의 수단으로서 스포츠의 가치를 신봉한다. 다음달 1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촉구 친선대회의 성공을 위해 메시와 마라도나에게 직접 전화를 건 배경이다. 이 경기에는 로베르토 바조(47)·안드레아 피를로(41·이상 이탈리아)·지네딘 지단(44·프랑스)·사무엘 에투(33·카메룬) 등 전 세계의 전·현직 축구스타들이 대거 출전한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출신인 그는 성직자의 길을 걷기 전 평범한 아르헨티나 아이들처럼 축구에 열광하며 성장했다. 교황의 어릴 적 친구들은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교황의 속명)는 축구 이야기를 나누다 종종 흥분해 교실 밖으로 뛰어나가 직접 공을 차곤 했다. 그가 깬 유리창이 한 두 장이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고향 마을 플로렌스를 연고로 하는 축구 클럽 산 로렌소 데 알마그로는 교황이 가장 좋아하는 팀이다. 교황은 추기경 시절까지도 산 로렌소의 구단 정회원으로 매년 회원권을 구입했다. 틈날 때마다 경기장을 찾거나 라디오로 경기 생중계를 들었다. 교황은 미사를 집전하며 “신자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 로마의 올림픽스타디움이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산 로렌소 경기장처럼 환한 빛을 밝혀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교황으로 추대돼 이탈리아로 떠나자 산 로렌소 구단은 교황을 명예 회원으로 추대하는 한편, 고유 회원번호(88235번)를 결번처리해 존경심을 표현했다.

 현대의 스포츠는 위기다. 승부조작과 약물 중독이 빈발하고 지나친 상업화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교황은 긍정적인 면에 주목한다. 지난 6월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이탈리아 체육위원회 70주년 기념 행사가 열렸다. 교황은 행사에 직접 참석해 체조 선수들과 장애인 선수들을 격려했다. 또 광장에 모인 젊은 운동선수들에게 “스포츠는 도전”이라며 “인생에서도 적당히 타협하고 안주하는 게 아니라, 승리를 향해 도전하라”고 강조했다. 또 “스포츠는 우리에게 수용(Accept)이 무엇인지를 일깨운다”며 “같은 유니폼을 입는다는 건 한 팀에 속했다는 의미다. 팀의 일원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배우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교육과 스포츠, 노동을 통해 젊은이들이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스포츠를 통해 삶을 풍성하게 가꾸면 신과도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게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각이다.

 스포츠 스타와 국제스포츠의 거대 기구에는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교황은 지난해 8월 아르헨티나와 이탈리아의 축구 A매치 평가전을 앞두고 두 나라 선수를 바티칸에서 만났다. 세계 최고의 스타 리오넬 메시와 이탈리아의 악동 마리오 발로텔리를 향해 교황은 “선수 여러분들은 인기인이다. 경기장 안에서 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지난해 11월 토마스 바흐(61)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제프 블래터(78) 국제축구연맹 회장 등 세계 체육계 수장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스포츠가 돈과 승리만을 좇으면 핵심 가치인 ‘단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스포츠 상업화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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