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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으로 가는 꽃가마-장형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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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여든 해를 사시고도 허리하나 구부러지지 않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집안을 이끌어 가시더니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이미 죽음이 근접해서 그 죽음의 그림자를 만지면서 사실 나이에 갑자기란 말이 어색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할머니의 근력으로 봐서는 갑자기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를 알 수 없는 나로서는 더욱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할머니의 사망 소식은 심한 현기증을 일으키게 했다. 거대한 성(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할머니는 쓰러져 가는 우리 집안을 버티어온 버팀 기둥이었고 뿌리 없는 물풀처럼 중심을 잃은 우리 가족들을 비끄러매려던 견고한 말뚝이었다. 그런 할머님이 돌아가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연락을 받고도 곧 바로 집으로 갈 수 없었다. 그때 나는 할머님의 사망이란 엄청난 소식 이전에 내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에 빠져 있었다.
그날 오후 퇴근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주인집 아주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내가 갑자기 산통을 시작했으니 빨리 오라는 것이었다. 아직 해산달이 두 달이나 남았는데, 혹시 체한 것이 아니냐는 내 말에 아주머니는 자신의 경험으로 봐서 틀림없는 산통이라는 것이었다.
급히 집으로 달려간 나는 아내를 가까운 산부인과에 입원시켰다. 바삐 움직이는 간호원들의 발소리와 어느 방에서 들려오는 애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내가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이 대해 실감을 느끼려고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그때 주인 아주머니에게서 병원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고향에 계신 할머니께서 별세하셨다는 연락이 왔다는.
그러나 나는 일어설 수 없었다. 내 손을 잡고 진통을 억제하려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내를 혼자 두고 떠날 수도 없었고 지금 출발한다고 해서오늘 안으로 고향에 도착할 수도 없었다. S시에서 고향으로 가는 배는 오후 6시면 끊기기 때문이었다.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마음을 굳힌 나는 그대로 눌러앉고 말았다.
밤을 지새우는 진통 속에서도 아이는 좀 체로 나와주지 않았다. 일그러진 아내의 얼굴을 마주보며 고통을 같이 나누고 있음을 보여쥐야 하는 것은 정말 지겨운 노릇이었다. 그러나 새벽 4시가 지나자 아내의 진통은 다소 가라앉았고 땀에 젖은 얼굴을 하고 잠이 들었다.
방에서 나온 나는 어두운 복도에 혼자 앉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아 가슴에 와 안겨지지 않는 아버지가 된다는 것과 할머니가 사망했다는 사실의 허허함과 싸워야 했다. 그것들은 노련한 놈담꾼의 말장난처럼 낄낄거리며 어두운 복도를 휘젓고 있었다. 하나의 죽음과 하나의 탄생. 죽으면 태어나고 태어나면 죽고, 그래서 세상은 언제나 평형을 유지하는 것일까? 우리가 기를 쓰고 슬퍼하고 기뻐하는 모든 일들이 평형 상태를 유지하려는 진통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수면 부족으로 충혈된 눈을 부릅뜨게 했다.
날이 밝을 때까지 한숨도 자지 못한 나는 세상에 태어나기를 두려워하는 듯한 자식놈의 탄생도 보지 못하고, 다시 진통에 시달리고 있는 아내를 두고 S시로 가는 첫차를 탔다.
S시는 구겨진 종이처럼 찌푸린 하늘과 흰 이를 드러낸 바다에 짓눌려 있었다. 거리에는 겨울비 속의 낙엽처럼 추한 냉기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군데군데 심하게 패인 아스팔트, 억센 사투리, 산비탈의 게딱지같은 판자집들, 어판장의 고기 썩는 냄새, 항구에 매어져 있는 폐선들. 이 도시의 얼굴들이 반가운 듯이 맞아 주었지만 역겨움이 앞섰다. 그 느낌은 중심을 잃고 멋대로 살아온 지난 몇 년의 내 생활의 잔해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눈이 조금씩 흩날리고 있었다. 떨어진 눈은 금방 녹아 시커먼 흙탕물이 되어 구두 밑에서 질퍽거렸다. 나는 바짓가랑이를 추슬러 잡고 진창을 지나 선창으로 갔다. 선창에는 고향 창선도로 가는 도선이 「트럭」과 사람을 싣고 시동을 걸고 있었다. 매표구에서 표를 산 나는 뛰어서 배에 올랐다.
긴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고 담배를 꺼냈다.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켜니 바람이 불을 빼앗아 갔다. 이번에는 바람을 등지고 켜니 혀를 날름거리며 불꽃이 피어올랐다. 담배를 붙이고 연기를 들이마시자 추위에 경직되었던 내부가 진저리를 치며 깨어났다. 항구를 떠난 배가 섬으로 선두를 돌렸다. 섬은 눈발 속에서 허소하게 서 있었다.
바다 가운데 불끈 솟아오른 섬, 창선도. 산이 각도를 죽이지 않고 곧바로 바다로 곤두박질치는 온통 바위투성이의 척박한 섬. 사람들은 산비탈을 깎아 밭을 일구고, 가까운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아 모진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사람이 언제부터 살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섬에서 고인돌이 발견된 것으로 봐서 그 역사는 꽤나 오랜 것은 틀림없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사람이 살게 된 것은 이곳이 유배지가 되고 나서였다. 나의 조상도 그런 계통을 밟아 이곳에 정착하였다.
나의 8대조께서 이곳에 유배되었다가 병사하시자, 7대조께서 부친의 유해를 찾으러 왔다가 이곳에 숨어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평온한 생활 속에서 살아오셨던 6대조께선 이곳의 척박한 풍토에 견뎌내지 못하고 육지로 떠나려고 했으나 선친의 유해가 묻힌 곳이라 끝내 떠나지 못하고 눌러앉고 말았다. 그러나 그 후 선조들은 차츰 적응을 하게 되고 옛날의 그 영광스런 가문에 대한 향수도 잊어가고 있었다. 제법 생활 기반도 안정이 되고 비록 좁은 곳이지만 주위에서 명망도 얻게 되었다.
그런데 그 가문이 할아버지 대에 와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두 형제 중 막내였었는데 시대가 바뀌고 누구에게나 출세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자 선친들께서는 잃어버린 옛 영광을 되찾겠다는 꿈에 부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신학문을 배우고 일본 유학까지 하셨다. 백종조께선 가산을 팔아가면서 할아버지를 공부시켰으나 할아버지께서는 관계(관계)에 발을 들여놓으시지 않고 장사을 하셨다. 왜 놈 밑에서 월급장이 노릇을 하느니 장사를 해서 돈을 버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배를 사서 일본을 왕래하며 밀무역을 하셨다. 그러나 일경에 체포되어 배와 가산을 몰수당하고 말았다. 옥살이를 마치고 출감하신 할아버지는 술로 세월을 보내셨다. 이렇게 쓰러진 집안을 일으켜 세우며 버티어 온 분이 할머니셨던 것이다.
할머니는 흔히 말하는 기구한 일생을 살다 가셨다. 가난한 어부의 여섯 형제 중의 막내로 태어나 서럽게 자라나야 했다. 나이 열 여섯에 시집을 갔지만 설움과 고생은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나이 마흔에 남편을 잃고 주위의 권유로 할아버지와 재혼하셨지만 고생과 설움은 마찬가지였다. 방향 잃은 난파선 같은 집안을 이끌어가랴, 전처 소생의 자식들을 시집보내고 장가들이느라 흘린 눈물이며 찢기어진 가슴을 글로 옮기면 할머니의 말처럼 책으로 열 권은 넘으리라.
그러나 20년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홀로 남은 할머니를 친 혈육들이 모시려고 했으나 할머니는 기어이 우리 집에 남으셨다.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자식도 없는데도, 고생이 덩굴째 굴러다니는 우리 집에 남으려는 할머니에 대해 사람들은 말도 많았지만 할머님의 일녘은 자신의 손으로 길러 온 손주들의 성장과 성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할머니의 각별한 정을 받으며 성장했다. 첫 손주인 탓도 있겠지만 나를 낳은 후 어머니의 젖이 돌아오지 않아서 나는 할머니의 빈 젖을 빨며 할머니의 품에서 자라나야 했다. 할머니는 나에게 손주 이상의 애틋한 정을 주었고 나는 어머니보다 더 할머니를 따르며 자라났다. 할머니에게 있어서 나는 할머니의 운명이었던 것이라고나 할까. 내가 성공을 하여 남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 그것이 곧바로 할머니 자신의 생애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공경하는 마음을 보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기대를 저버린 나를 야속하게 생각하시면서도 끝까지 기대를 포기하시지 않고 눈을 감았으리라.
바람이 갯벌 위를 지나 황량한 염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하얗게 센 갈대꽃이 그 바람에 풀풀 날리고 있었다. 겨울이면 모든 것이 정감을 잃어버리는 고향 마을. 대나무들이 서로 부딪치며 바람을 안고 뒹굴고 있었다. 잎을 잃어버린 감나무와 밤나무들은 잔가지를 내젓고 있었다.
나무가 많은 마을, 그리고 바람이 많은 마을. 그래서 나무들은 재 각기 바람을 비켜서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대나무는 유연한 허리운동으로 바람을 비켜가게 했으며, 감나무와 밤나무는 척박한 땅에다 깊이 뿌리를 내려 중심을 잡았다. 그러나 냇가에 심어 놓은 포플러가 지난여름의 태풍에 쓰러졌는지 길을 막고 드러누워 있었다. 이들 포플러는 물기가 많고 비옥한 땅에서 자라기 때문에 뿌리가 얕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바람에 쉬이 쓰러질 수 밖에.
집에는 바람이 들이닥치지 않았다. 집 뒤의 대나무 숲이 쓰러졌다 일어나며 바람을 잠재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 안뜰에 서 있는 수령 60년의 유자나무는 반 이상이 고사한 채로 그래도 위엄을 잃지 않고 서 있었다. 몇 번인가 고사의 위기를 넘기며 긴 생명을 이어 온나무였다. 그 유자나무는 인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나무였다. 섬에 유자나무가 하나 때문이기도 했지만 크고 우람하고 많은 열매를 매달기 때문이었다. 한참 많이 열릴 때는 40접을 넉넉히 딸 수 있었고 최근에도 10접 이상은 땄었다. 그러나 이제 열매를 매달기는커녕 목숨도 겨우 지탱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직 수명이 다했다고는 볼 수 없었다. 내년 봄이 되면 또 다시 꽃을 피워 올릴는지도 몰랐다. 나무의 그러한 질김은 할머니의 일생을 너무나 닮았으니까.
대문을 들어서는 나를 알아보고 가장 먼저 달려나온 것은 막내 성준이었다. 녀석은 내 가방을 받아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성준이 또한 할머니의 정을 각별하게 받으며 자라서 눈물깨나 흘렸는지 눈동자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큰형이 왔어요.』
성준의 고함소리에 고3인 성숙과 두분 고모가 달려나왔다.
『오빠…….』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삼키는 성숙이를 껴안으며 고모들의 눈에 어린 물기를 나는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누구보다도 할머니를 가장 이해했던 고모들.
『날씨도 추운데 오느라 고생이 많았지? 얼른 들어가자.』
큰 고모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마당에는 장막이 쳐져 있고 그 장막 아래에 아버지와 두 분 당숙과 두분 고모부가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아버지는 약간 넋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고, 당숙들과 고모부들은 초상집의 예의 침울한 분위기 이상의 어떤 경직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슨 의논을 하고 있었는지 내 인사를 받기 무섭게 도로 얼굴을 마주하고 앉았다.
고모들을 따라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목쉰 울음을 터뜨리며 방바닥에 퍼져 앉아 있다가 내 다리를 부여잡고 얼굴을 비벼댔다. 이미 목이 쉬어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어머니로서는 북받쳐 오르는 설움과 자식에 대한 반가움을 그렇게 밖에 나타낼 수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꿇어앉아 어머니의 손을 꼬옥 쥐었다. 어머니의 심경을 잘 알고 있다는 뜻으로.
할머니의 시신 앞에 누구보다도 더 비통해 하고 싶을 어머닐 것이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생전에 그렇게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세상 물정에 어두웠고 따라서 집안의 운영권을 할머니가 쥐고 있었다. 어머니로서는 나이 50이 되도록 시어머니에게 주도권을 뺏긴데 대한 불만이 없을 수 없어서 자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집안의 운영권을 빼앗긴데 대한 불만은 지엽적인 것이었고 근본적인 이유는 자식들에 대한 애정의 주도권을 시어머니에게 뺏긴데 대한 불만이었다. 우리 다섯 형제는 모두 할머니의 강한 애정의 치마폭 아래에서 양육되어졌고, 따라서 어머니보다 할머니를 더 따랐다. 고부간의 언쟁에도 항상 할머니를 역성들었다. 그러니 할어머니로서는 어머니에 대해 섭섭한 마음도 생기셨으리라.
이제 저 세상으로 떠나고 곁에는 없다는 사실에 누구든 참회의 눈물을 흘리겠지만 본성이 순하신 어머니이신지라 그 설움은 더할 것이었다.
『처는 왜 같이 오지 않았니?』
모자간의 축축한 분위기를 증발시키며 작은 고모가 말했다.
지난해 여름 아내를 데리고 고향엘 와서 결혼하겠다는 말을 꺼냈을 때 할머니의 노기는 벼락과 같았다. 할머니는 큰 손주며느리만큼은 자신의 손으로 선택하고 싶어하셨었다. 그런데 내가 어디서 무얼 하는 여잔지도 모르는 대처 여자를 데리고 왔으니 기함을 안 하신 게 천만 다행이었다. 그러나 나는 할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내와 결혼을 하고 말았다. 그러자 할머니로서는 당연한 금족령 내렸다. 이런 때에 와서 며느리의 역할을 잘 해내면 역시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던 집안 사람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놓을 수도, 있지 앉느냐는 뜻의 질문일 것이었다.
『무슨 연락이 오지 않았던가요?』 아내에게 해산을 하게되면 연락을 하라고 했었다.
『연락은 무슨 연락?……어디 아프니?』
『아니에요. 해산을 하려는지 진통이 있기에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그래? 그것 참 반가운 소식이로구나.』
큰 고모의 말에 어머니가 쉰 소리를 냈다.
『돌아가시기 전에 증손자 한번 안아 봤으면 하고 그토록 소원하시더니….』
어머니는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찍어내셨다.
『할머니께서는 시간만 나면 너와 네 처를 보고싶어 하셨어. 비록 당신은 손주에 대한 실망 때문에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비정한 소리를 하셨지만 그걸 얼마나 후회하셨다구.』
『저도 진작 고향엘 오고 싶었읍니다만 회사 일이 바빠서요.』
그것은 순전히 변명에 불과했다. 시간이란 만들면 생기는 것. 도무지 세상을 산다는 것이 귀찮았던 시기였다. 할머니에게 잘못을 빌고 어쩌고 하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무정한 말이 어디 있느냐. 할머니의 희망이었던 네가 아니냐. 그런데 그런 말 밖에 못하다니….』
큰 고모가 약간 언성을 높였다. 이번에는 또 작은고모가 나를 힐책했다.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도 우리 성제가 보고 싶구나 하신 할머니셨어. 이놈아, 마지막 가시는 할머님의 가슴에다 못을 박은 놈이야, 네 놈이.』
『불쌍한 어머니, 저런 놈을 친자식보다 더 애지중지 하시더니…. 참 인덕도 없는 분….』
고모들의 말은 하나 하나가 예리한 못이 되어 내 가슴 깊숙이 들이박혔다.
나는 고모들의 시선을 피해 병풍 뒤로 시선을 돌렸다. 병풍과 벽의 틈새로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수의를 입고 할머니가 잠들어 있었다. 그곳은 이미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러나 나는 할머님이 누워 계신 곳이 지금 내가 앉아있는 방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내가 어릴 때 할머니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면 할머니는, 『내가 죽어버릴란다.』하고 뒤로 벌렁 나자빠져 죽은 시늉을 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겁을 먹기는커녕 키들키들 웃으며 할머니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면 제 풀에 지친 할머니는 슬며시 눈을 뜨시며 성을 내는 체 하셨다.
『이놈! 할미가 죽었다는데도 불러보지도 않아.』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맞서곤 했다.
『거짓말인줄 난 다 알아. 숨소리가 들렸어. 죽은 사람은 숨울 못 쉬거든.』
할머니는 벌떡 일어나 아이구 영특한 내 새끼 하시면서 나를 껴안으셨다.
지금도 할머니는 나를 놀리려고 일부러 죽은 시늉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 내 새끼야, 왜 인제 오니 하고 내 손을 덥석 잡을 것만 같은 느낌에 나는 오래오래 빠져 있었다.
그 때 밖에서 수런거리는 소리와 함께 좀은 느끼한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차츰 커지더니 방안으로 들어왔다. 삼촌과 숙모였다. 사실 아버지는 외아들이므로 삼촌과 숙모가 우리에게는 있을 수 없었다. 지금 들어온 삼촌은 할머니의 유일한 혈육인 것이다. 우리와는 헐연적인 유대관계가 전혀 없지만 우리 형제들은 이분을 삼촌으로 부르는 것을 더 자랑스럽게 여겼다. 마치 그렇게 하는 것이 할머니에 대한 보은이나 되는 것처럼. 삼촌과 숙모가 한바탕 눈물을 쏟는 동안 그 곁에 앉아 있기가 어짠지 거북스러워졌다. 내가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다고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통곡을 해야 할 나였었다. 그러나 눈물이 나오거나 슬픈 감정이 도무지 일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는 몇 번의 죽음을 보아왔다. 그 때마다 느낀 감정이 달랐었다.
내가 네 살 때 겪은 고모의 죽음은 불쌍함을 불러 일으켰고, 여섯 살 때 겪은 바로 아래 동생의 죽음은 슬픔을, 그리고 국민학교 2학년 때 겪은 할아버지의 죽음은 허망함과 공포의 감정을 불러 일으켰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죽음을 앞에 놓고는 왜 그런 허망함이나 공포의 감점이 일지 않을까? 아니 그런 감정은 차치하더라도 불쌍함이나 슬픈 감정이 일지 않았다. 오히려 얼마지 않
아 태어날 아이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내부에서 끈끈한 힘이 치밀어 오르는 것 같은 묘한 감정이 전신을 휘어잡았다. 그러자 강한 식욕이 뒤를 따랐다. 무엇이든지 게걸스레 먹고 싶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었는데도 강한 식욕이 일어나는 건 정말 이상한 현상이었다. 가능하다면 술도 마시고 싶어졌다. 나는 방에서 나와 부엌으로 갔다.
오후가 되자 상여가 꾸며졌다. 빈 상여를 맨 상여꾼들이 상여를 얼러기 시작했다. 소리잡이의 청승맞고도 찐득찐득한 앞소리가 앞장을 서고 상여꾼들의 「어어럼 어어럼 어나리넘차 어어럼」하는 상여소리가 느릿느릿 뒤를 따랐다. 소리잡이의 앞소리와 상여꾼의 상여소리가 어우러져 빈 상여를 떠메고 마을을 도는 것을 보고 있다가 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마당의 장막 아래서는 큰 당숙과 아버지와 삼촌이 장지 문제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나는 멍석의 귀퉁이에 앉아 언쟁에 귀를 기울였다.
『자네의 뜻은 잘 알겠네만 그렇게 할 수는 없네. 비록 숙모님이 우리 가문에 오셔서 친 혈육을 두시지는 못하셨지만 우리 가문의 사람임에는 어김이 없네. 그러니 자네가 친 혈육이라고 해서 숙모님들 모셔가겠다는 말은 어거지밖에 안되네.』
당숙의 말에 삼촌은 공손하게 말했다.
『저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헌데 내가 듣기로는 어머님을 공동묘지에다 모시려고 한다기에 하는 얘깁니다. 어머님이 어디 자식이 없읍니까?…그런데도 공동묘지에 외롭게 잠드시게 해서 되겠읍니까. 그래서 제가 모시고 가서 아버님 곁에 모시려는 것입니다.』
우리 가문에 와서 40여년을 사신 할머니를 친자식들이 모시고 갔다고 하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 것인가. 그래도 이곳에서는 드문 양반의 가문임을 자랑하시는 당숙들이신데. 비록 껍질뿐인, 이제는 소용도 없는 양반이지만. 그 양반 껍데기를 껴안으면 물에 가라앉지도 앉을 것이라고 믿고 있을 당숙들에게는 한 마디로 말해 말도 안 되는 소리일 것이다.
『그건 우리 가문에 먹칠을 하는 것일세.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네. 숙모님을 공동묘지에 모신다고 해서 꼭 외롭게 하신다고는 볼 수 없네. 그 곳에는 당신의 따님이 잠들어 있기도 하고, 또 돌아가시기 전에 그곳에 묻어 달라는 뜻을 비치기도 하셨네.』
그 따님이란 내가 네 살때 죽은 고모를 말하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재혼하실 때 데리고 온 딸로 나이 열 여섯에 인후염으로 죽었다. 돈만 있으면 고칠 수 있는 병이었으나 의붓딸의 병에 대해 누구 하나 신경을 써주지 않았고 할머니의 가슴만 쓰리게 하다가 죽었다고.
그 고모에 대한 할머니의 한스러움은 보통 깊은 것이 아니어서 설움이 북받칠 때면 으레 들먹이며 한숨을 지으셨었다. 그러니 할머니로서는 그런 유언을 하실만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할머님의 진정한 본심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할머니는 첫째 소원이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된 것을 보는 것이고, 둘째는 증손주를 안아 보는 것이며, 세째는 죽어서 할아버지 곁에 묻히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그런 할머님이 공동묘지에 안장해 달란 말을 하신 것은 이미 당신이 우리 집 산소에 모셔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아시고 원망스런 자신의 신세에 대한 자구책적인 뜻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아버지나 어머니와의 언쟁 끝에는 그런 뜻의 자탄을 수없이 하셨다.
『내가 미친년이지. 죽고 나면 이 집 산소에 묻히지도 못하고 공동묘지에 외롭게 묻힐 년이 무슨 청승으로 이 놈의 집을 위해 이런 고생을 하면서도 욕만 얻어 먹누.』
그러한 할머니의 한숨 섞인 탄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결코 할머니를 공동묘지에 묻히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논쟁은 당숙과 삼촌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었고, 아버지와 나는 뒷전으로 밀려나 구경꾼 신세가 되어버렸다.
이를 보다못했는지 삼촌이 넋 나간 사람처럼 멍청하게 앉아 있는 아버지를 끌어들였다.
『형님이 결정하세요. 이 문제는 형님의 사촌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고 또 내가 나설 문제도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형님이 결정할 문젭니다. 그런데도 형님은 뒷전에 물러나 방관만 하십니까.』
그러자 아버지는 쭈뼛거리며 어눌하게 말했다.
『지금 장지 문제로 왈가왈부할 때가 아니네. 이미 그 문제는 형님들이 결정을 했네. 우린 상주이니 그 문제엔 끼어들지 말기로 하세.』
아버지의 말에 어이가 없는 듯 한참이나 아버지를 쏘아보던 삼촌이 거칠게 말했다.
『아니 형님은 집안 운영권을 몽땅 사촌들에게 넘겨 주었읍니까?』
그 말에 아버지는 주눅든 얼굴을 할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가문의 문제를 토의하는 데 있어서 아버지의 힘은 약했다. 원래 언쟁에 가담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남에게 자기주장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 아버지의 성격 탓이기도 했지만 할아버지가 문중의 재산을 팔아먹은 일 때문에 우리 집은 큰 소리를 칠 수도 없었다.
이미 모든 것이 자신에게는 불리함을 알았음인지 삼촌은 결심한 듯 일어서면서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좋습니다. 당신네들이 정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모시고 가겠읍니다.』
『자네 고집이 왜 그리 센가. 산소에는 이미 큰 숙모님이 묻혀 있네.』
당숙의 말에 삼촌이 다시 앉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어머님을 묻으면 안됩니까. 한 산소에 같이 묻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습니까. 헌법에 있습니까, 당신네 허수아비 양반 법에 있읍니까?』
『그래 우리 가문의 법에 있네. 그러니 자네는 상관하지 말게.』
『제 어머니의 문제입니다. 그래두요?』
『자네의 어머니? 그건 40여년 전 옛날의 이야기야.』
끓어오르는 격분을 목구멍에서 삭히는지 삼촌의 목울대가 파르르 떨고 있었다. 나는 삼촌의 팔을 끌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은 삼촌은 나를 힐책하기 시작했다.
『성재 너에게 실망했다. 그래도 난 네가 한 마디라도 해 주길 바랬는데….』
『삼촌, 그게 아니잖아요. 아버님들이 하는 일에 제가 어찌 끼어들 수 있어요.』
『왜, 왜 못 끼어드냐. 네가 하는 말은 그래도 네 당숙들이 무시하지는 못할 게야. 허울 뿐인 조씨 가문에서 너만큼 출세한 사람이 누가 있느냐. 그런데도 한마디하지도 못해.』
『제 생각이 짧았나봐요. 삼촌, 그러나 이젠 어쩌겠어요.』
『어쩌지 못한다고?』
삼촌은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치면서 통곡을 했다.
『아이구 불쌍한 어머니, 그렇게 고생고생 하시면서 이놈의 집안에 남으시더니 죽어서 이게 무슨 꼴이란 말입니까.』
내가 삼촌의 손을 잡자 삼촌은 내 손을 뿌리치며 더욱 기세를 올렸다.
『놔라, 이놈아! 이 배은망덕한 놈아. 네 할머니가 네놈 잘 되기만을 빌면서 그 어려움을 참으며 살았었는데 네 놈이 그것도 모르고…. 불쌍한 어머니, 저것도 손주라고 맨날 자랑하시더니….』
삼촌의 울음 반, 나에 대한 욕설 반의 푸념은 예리한 단검이 되어 내 가슴에 들이 박혔다. 칼이 박힌 자리에서 선혈이 흘러나와 가슴속을 쿵쾅거리며 흘러 다녔다. 그러자 심한 자멸감이 전신을 짓눌렀다.
기실 내 말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는 할머니를 할아버지 곁에 모셔야 한다고 말해야했다. 그것이 할머니에 대한 나의 마지막 효도이고 보은일 수 있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내 의무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배은망덕한 놈이 되고 만 것이다. 돌아가시기 전에도 두 번씩이나 할머니를 실망시켰고 이제 돌아가신 후에도 실망을 시키고만 것이다.
밤이 되자 집안이 바빠졌다. 입관준비를 하기 때문이었다. 마당에는 웇칠을 한 관이 저승사자처럼 버티고 누워 있고, 어둠 속에 숨어있던 슬픔이 스멀스멀 기어나와 사람들에게 들러붙었는지 모두들 눈물을 질끔거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축축해졌고, 마당에 피워 놓은 화롯불이 슬며시 혀를 낮추기까지 했다. 남자들의 애고 하는 곡소리와 여자들의 칙칙한 울음소리에 묻혀 할머니의 시신은 관속으로 옮겨졌다. 그러자 곡소리와 울음소리는 최후의 발악처럼 거세어지고 뚜껑이 무정하게 닫혔다.
그제서야 내 가슴의 한편이 무너지며 주체할 길 없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흡사 위태위태하게 버티어오던 제방이 천둥의 음파에 의해 무너지고 물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나는, 남자는 아무리 슬퍼도 눈물을 흘리지 말며 울음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는 개발싸개 같은 인습을 팽개치고 어깨를 들먹이며 가슴 속 저수지의 물이 다 빠질 때까지 실컷 울었다. 물이 다 빠진 그 저수지의 밑바닥에는 허망함이 물컹물컹한 진흙탕처럼 괴어 있었다. 그 진흙탕은 깊이 깊이 나를 빨아들였다. 목까지 빠지고 잠시 후면 코까지 막아 숨을 못 쉬게 될 지경에 이를 때까지 나는 그 허망함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관을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어깨를 쑤셔대는 싸늘한 한기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주위는 교교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마당에서 투전판을 벌이던 사람들은 방으로 자리를 옮겼고, 마당에는 그들이 피워놨던 화롯불이 아직도 타고 있었다. 곁에 아버지가 앉아 있다가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추울텐데 방에 가서 자거라.』
『괜찮아요. 그 보다 아버지가 피곤해 보여요. 가서 주무시지 않고….』
『나도 괜찮다. 그럼 우리 이야기나 하자. 너도 근 일년만에 집에 왔으니 할 얘기가 있을 게고, 나도 그렇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도 ,의논해 보기로 하고.』
『그러세요.』
대답하면서 나는 내가 담요를 덮고 있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추울까 해서….』
아버지는 말끝을 흐렸다. 지나가는 바람처럼.
이제 바람이 자는지 웅얼거리던 대숲은 고요했다. 뜰의 유자나무는 시커먼 그림자를 쓰고 웅크리고 서 있었다.
『저 유자나무도 이제 더 살지 못할 것 같네요. 아무리 질긴 나무라지만.』
『그런가보다. 이제 베어버려야겠다.』
『그러면 이제 저 나무는 영원히 자취를 감추겠군요.』
『아니다. 저 나무의 열매로 묘목을 만들어 놨단다. 내년 봄에 다시 그 자리에다 심을 게야.』
나는 다시 유자나무를 바라봤다. 북쪽은 말라버리고 남쪽만 살아 있어 흡사 남쪽으로 지금 쓰러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좀 전에 시외전화가 왔었다.』 쓰러지던 바랑이 등을 세우는 것 같은 힘있는 음성이었다.
『시외전화가요?』
『그래, 네 처가 아들을 낳았다는구나.』
『아들을요?….』
나는 전신이 충전되는 듯한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내가 아버지가 되다니. 준비도 되어 있지 않는데.
『그것 참 이상한 일이구나.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손주를 보게 되고 참 네가 태어날 때도 그랬지.』
외아들이신 아버님이 결혼 6년이 지나도 자식이 없자 점을 치니 돌아가신 친할머니의 묘를 이장해야 한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래서 점괘에 따라 이장을 하니 다음해 할머니의 제삿날 내가 태어났던 것이다.
『아버지, 그 앤 할머님이 보내 주신 걸 거예요.』
『그래 너처럼.』
『새로운 힘과 용기를 주신 거예요.』
아버지와 나는 마주보며 기쁨을 조금씩 발산했다. 서로의 얼굴에 번지는 기쁨을 읽으며 그 기쁨을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듯 은밀하게 나누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의 얼굴이 스산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머님은 돌아가셔서도 우리 집안을 보살펴 주시는데 우린 어머님께 해드린 게 너무 없구나. 생전에는 가슴에 멍만 드시게 했고….』
젊은 시절 아버지는 재산을 처분하고 도시로 나가 살려고 했으나 할머니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고생스런 농사를 짓고 눌러 앉았으면서도 할머니에 대한 그때 감정은 결코 삭여지지 않고 아버지의 가슴속에 이 물질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면 그때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할머님께 폭언을 퍼부었다. 평소에는 친어머니 이상으로 잘해 주셨던 아버지로서는 그러한 몇 번의 실수가 못내 한스러우리라.
『아버지,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나도 그랬다. 대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후배들을 가르치며 고향을 지키기를 바라는 할머님의 뜻을 거역하였다. 지옥과도 같은 고향이 싫었기도 했지만 옛 가문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허황된 착각에 빠져 수차의 고시에 응시했다가 낙방하고 결국에는 샐러리맨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지치고 찌들면서 세태에 밀려가는 샐러리맨이.
『그래, 우린 이 섬에서 도망치려 했었지. 그러나 네 할머니는 이 섬을 지키려고 했어. 비록 추한 몰골이지만 내 얼굴인데 내가 사랑하지 앓으면 누가 사랑하겠느냐고…….』
『여자의 연약한 몸으로 우리들을 쓰러지지 않게 버팀 기둥이 되어주기도 했었어요.』
『그러나 우리는 오늘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어. 너무나 비굴하게 말이다.』
아버지의 눈이 축축하게 젖어오고 있었다. 마지막 열기를 뿜어 올리는 화롯불의 불꽃이 아버지의 눈동자 속에서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그 불꽃이 내 가슴속에서 뭉컹거리며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 불꽃은 얼굴도 못 본 아들놈을 감싸고 타오르며 내 가슴을 짓씹고 있었다.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버지가 관 위에다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성재 너에게 정말 면목이 없구나. 못난 애비의 추한 몰골만 보여주고 말았으니.』
『아버지, 그건 제가 할말이예요. 허나 이제 우리에겐 할머님이 주신 용기와 힘이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가 네 할머님에게 해드릴 일이 없지 않느냐. 할머님은 이제 우리 곁에 계시지 앉아.』
『그러나 있어요.』
『있어?』
아버지가 고개를 들며 눈을 반짝였다.
『할머님을 우리의 산소에 모시는 거예요. 그것은 우리의 도리이며, 할머니에 대한 보은도 되며, 할머님을 영원히 우리의 할머니로 머무르게 하는 것이예요.』
내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기시던 아버님이 시무룩하게 말씀하셨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허지만 이제 늦었지 않느냐.』
『제게 한번 맡겨 보세요. 방법이 있으니까요.』
어린애의 철없는 생각에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는 듯한 그런 얼굴을 하고 잠시 나를 쳐다보던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았다.
『그래 너만 믿는다. 넌 언제나 빈틈이 없었으니까.』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았다. 손가락 마디마다 못이 박힌 투박한 손이었다. 마음을 묻어두기 위해 기를 쓰며 맘을 파고 나무를 심던 그 투박한 손이 어린 내 손을 우악스럽게 움켜쥔 것이었다.
소리잡이가 꽹과리를 중몰이 장단으로 치고 있었다. 소리잡이의 앞소리를 따라 때론 너풀너풀 춤을 추며, 때론 무거운 발길을 어렵게 떼던 상여가 삼거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북쭉은 공동묘지로 가는 길이고 남쪽은 산소로 가는 길이었기에 삼촌이 앞으로 나서 공동묘지 쪽으로 머리를 튼 상여 앞에 매달려버린 때문이었다. 삼촌은 공동묘지로 가려면 자신을 밟고 넘어가라며 어거지를 썼다. 소리잡이는 아버지의 얼굴만 쳐다보며 연신 꽹과리만 두드렸고, 상여는 황진이의 대문 앞에서 얼어붙은 총각의 상여처럼 선 채로 움직일 줄 몰랐다.
당숙들과 문중 사람들은 창백한 얼굴이 되어 어쩔 줄 몰라 했고, 문상객들은 이 희한한 광경을 재미있다는 듯 구경했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아버지 곁으로 갔다.
『기회는 지금이예요. 산소로 향하라고 명령을 내리세요.』
그러나 아버지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떻게 할려고?』
『제가 새벽에 산소로 사람을 보냈어요. 지관 경씨도 같이 갔어요.』
『그래? 그럼 당연히 산소로 가야지.』
『결심이 섰어요? 그럼 제가 할께요.』
나는 상여 앞쪽으로 걸어가 소리잡이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산소로 가세요. 할아버지 곁으로요.』
모든 사람들이 흠칫 놀라며 아버지와 나를 쳐다보았다. 소리잡이도 꽹과리 치는 것을 멈추고 아버지의 얼굴을 살폈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시 폭죽처럼 꽹과리가 울리며 상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소리잡이의 앞소리가 쩌렁쩌렁 꼴짜기를 울리며 상여를 인도하고 있었다. 인제 가면 언제 오나. 그러나 할머니는 떠나지 않았다. 다만 영혼을 감싸고 있던 육신만 제 고향인 흙으로 들아가고 있었다.
『좀 빨리 갑시다.』
삼촌의 말에 꽹과리가 중중몰이 장단에서 잦은몰이 강단으로 바뀌어 울리고 있었다. 따라서 상여는 너풀너풀 춤을 추기 시작했다. 형형색색의 조화가 어깨를 흔들면서 소나무 숲을 지나 비탈을 오르고 있었다. 내가 첫 월급으로 연보라색의 한복을 사다 드리자 그 옷을 입고 덩실덩실 춤을 추시던 할머니를 실은 상여가 가벼운 걸음으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면서 산소로 가고 있었다.
상주들의 꽁무니에서 걷고 있던 나는 걸음을 바삐하여 아버지 곁에 섰다. 아버지도 나를 보고는 눈으로 웃으셨다. 나도 아버지를 웃으며 바라보았다.
『아버지, 이제 손주의 이름을 짓는 일만 남았군요.』
『그렇구나, 그게 큰 문제구나. 그러나 걱정마라. 이 아버지가 훌륭한 이름을 지을 테니.』
『또 있어요. 유자나무를 심는 일이요.』
『그래, 봄이 오면.』
상여는 이제 평지를 지나가고 있었다. 눈앞에는 탁트인 남해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그 바다는 봄을 기다리며 조용히 엎디어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 그 바다를 지나 봄이 올 것이었다. 너즈러진 겨울의 잔해들을 밀치고 힘찬 기지개를 켜면서 봄이 올 것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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