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숙청방법 즐기는 중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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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홍콩=이수근 특파원】『종신 제여 안녕. 종신 제, 너는 성난 사자같이 으르렁댔고 불 뿜는 철포 처럼 행동했다. 너는 중국인민의 등에 무거운 짐을 지웠으며 어리석고 두꺼운 검은 천으로 아침햇살을 가렸다…. 소수 당 간부들을 위해 마련해 놓은 이 황금의 의자, 종신 제를 치워 버릴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지난 주말 중공 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실린 시의 한 귀 절이다. 여기서 말하는 종신 제가 중공당 주석 직을 가리키는 것이며 황금의자에 앉아 있는 자가 화국봉을 가리키는 말임은 자명하다.
최근 북경에서는 중공당 주석 화국봉이 물러나고 당 총서기 호유방이 화를 승 계할 것이라는 소문이 부쩍 나돌고 있다.
이 소문이 내년 초로 예정된 중공 12전 대회에서 사실로 판정된다면 중공역사상 새로운 수법의 숙청방식이 정착되고 아울러 중공이 최근 강조하는 법과사회민주주의의 정체가 과연 어떤 것인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런 해답을 선사하는 셈이 된다. 왜냐하면 화국봉이 지난 9월에 수상 직을 조자양에게 넘길 때도 그렇고 강청·임표 집단에 대한 재판이 지난11월 시작됐을 때도 그랬기 때문이다.
화의 수상 직 퇴진을 넌지시 바깥 세상에 흘려 보낸 것도 지난3월의 북경의「루머」였다. 「홍콩」의 신문잡지는 소위「소도 소식」으로 흘러나오는 이 미확인「뉴스」를 게재했고, 그 반응을 다각도로 분석한 것으로 믿어지는 중공의 실권파는 다시 북경에 주재하고 있는 외교관들을 동원, 주로「유고」의「탄유그」통신을 통해 조금 더 강도 높은「루머」를 흘렸다.
이어서 지난4월에 등소평의 측근 담계룡(사천성 제2서기)이 북경을 방문중 한 일본사절에게 중공관료로서는 처음으로 화의 수상 직 퇴진을 흘렸다가 당내에서 반발이 일자 어물 쩡 부인하는 발언을 공식으로 했었다. 그러나 내외의 여론이 친등 쪽으로 기울자 중공은 이미 화의 겸직해제를 기정사실로 굳히고 한층 더 강도 높은 조처와 여론조작을 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것이 이를테면 반봉건이고 반 관료주의이며 지난30년간 언제나 강조해 온 사회민주주의 강화였다. 넓은 시각으로 본다면 중공의 그러한 작품의 강조와 시행이 시급하기도 하고 문혁 파 집권 시에 비해 국민에게 어느 정도 숨통을 터주는 긍정적인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나 실제로는 그것이 바로 등소평 노선에 동조를 꺼리거나 반대하는 왕동흥 등 작은 4인 방을 제거하여 마침내는 화가 수상 직을 내놓게끔 만든 실권파의 노 회한 새로운 숙청수법이었음은 결과가 말하고 있다.
강청과 임표 집단에 대한 재판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홍콩」에서는 이미 9월에 48개의 기소죄목이 공공연하게 좌파잡지들에 보도됐다.
76년 4인 방이 체포될 때 불참하여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모의 조카 모원신이 요령성에서 재판을 받을 것이라는 소식이나 강 청의 완강한 저항으로 예정된 재판개시가 자꾸 지연된다는 속사정, 그들에 대한 재판이 결국은 모에 대한 평가의 한계선을 드러내기 때문에 애초의 기소죄목 60개항이 48개로 줄었다는 내막 등 이 그것이다.
실권파는 중대인사나 노선의 변경에 앞서 으레「홍콩」의 일부 좌파에 그 사실을 흘려 반응을 수집, 그 다음단계의 조처를 강구하는 기묘한 정책수립방식을 「즐기고」있다고 「홍콩」의 관측통들은 말했다.
사실 중공의 웬만한 고위직 인사조처는 사전에「홍콩」의「소도 소식」을 통해 나왔다. 중요한 정책의 전환 같은 것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호요방 이전에는 누구든지 붙들고 강조했던 제3세계전쟁의 불가피성을 수정하여『전쟁은 피할 수 있다』고 공식으로 밝히기 두 달 전에「홍콩」의 한 좌파잡지가 그같은 중공외교정책의 수정내용을 중공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따라서 현재 나돌고 있는 화의 당 주석 퇴진 설도 단순한 추측만은 아닌 것 같다고 좌파소식통들도 보고 있는 만큼 중공은 내년에 가면 완전히 실권파의 독무대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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