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들이 춤추며 노래한다|한국 구화학교 학생 예술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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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제 우리는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며 악기를 다룰 수 있어요.』
벙어리가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른다.
기적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 뼈저린 훈련 끝에 쌓아올린 인간 의지의 승리다.
한국 구화학교(교장 최병문·서울 구수동 21)가 9일 하오 숭의학당에서 마련한 제3회 한국 구화예술제에는 유치부·초등부·중등부의 농아학생과 정박아 학생 3백30명이 출연, 평소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자랑했다.
강약과 고저, 억양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농아 특유의 말소리가 함께 어울려 힘차고 감미로운(?)합창으로 울려 퍼지자 환성과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색동옷을 곱게 갈아입은 농아 유치부 꼬마들이 장단에 맞춰 서툰 몸짓으로 춤을 출 때는 깜찍하다기보다 차라리 애처롭다.
이들의 노래와 춤은 물론 정상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리나 벙어리 자식을 키우며 남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살아온 엄마 아빠들은 이들이 서투른 솜씨로 해 보이는 노래와 춤이 마냥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기만 하다.
처음에는 「아빠」「엄마」조차 말하지 못하던 농아들이 이제는 노래와 연극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대부분의 농아들이 일반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데 지장 없을 정도.
다른 어린이들처럼 「나도 말을 하겠다」는 집념, 교사들의 정성과 사람이 이같은 보람을 가져온 것.
구화학교 졸업생 2백40명중 1백70여명이 일반학교에 진학, 교육을 받고 있다.
이번 예술제도 「농아도 교육을 받으면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반사회에 알려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고 내 자식 같이 사랑하고 슬픔을 같이 나누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
불우한 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부모와 주위사람들의 이해와 사랑.
학부모 이모씨(42·서울 구수동)는 『농아 등 장애인들을 따뜻이 포옹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교장은『우리도 들을 수 있다』 『우리도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도록 주위에서 이들을 격려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했다.
합창·무용·연극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 예술제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농아의 능력을 확인하고 정상인을 향한 의지를 새롭게 갖게 하는 좋은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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