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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병영에서 휴대전화 소지해도 좋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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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논쟁의 초점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 이후 병영의 폭력사고를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병사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문제가 논쟁 거리로 떠올랐다. 일각에선 군 보안문제와 휴대전화 중독 문제를 거론하며 반대한다. 그런가 하면 일각에선 이미 미군들도 전쟁터에서 소지하는 휴대전화를 보안문제 핑계로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인다. 또 병사들이 휴대전화를 소지할 경우 병영 폭력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찬반이 엇갈린다. 휴대전화 소지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휴대전화 소지를 허용하는 게 좋을지에 대해 양쪽의 견해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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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에 휴대전화의 충격을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인류의 3대 발명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휴대전화는 아프리카의 물도 못 먹는 땅에서, 히말라야의 오지에서도 다 갖고 있고 북한에서도 수백만 대가 유통 중이다. 아무리 높은 장벽이 병영과 사회를 격리시킨다 하더라도 연결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은 막을 수 없다. 군이 그렇게 단속해도 병사들이 별의별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휴대전화를 반입하고 사용하는 걸 막지 못하는 이유다. 깊은 밤 침구 속에서 은밀하게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부대 밖 가게에 맡겨둔 휴대전화를 찾아 메시지를 확인하는 병사의 가슴은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이걸 왜 굳이 통제해야 할까?

 미군이 한국에 부임하면 가장 놀라는 것이 남녀노소 누구나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주한미군에 근무하는 일명 카투사 병사들은 휴대전화가 금지돼 있는 데서 두 번째로 놀란다. 그 이유가 보안 때문이라고 하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차라리 전기가 아까워서라면 이해하겠는데 말이다. 미군은 장교와 병사들이 기지 내에서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는데 그중 어떤 것은 수억 회의 조회수를 기록한다. 이걸 금지시키겠다고 말하는 미군 장성을 필자는 이제껏 본 적이 없다.

 휴대전화까지 금지시키는 우리 국방부의 병사들에 대한 과도한 통제는 구타와 가혹행위로 얼룩진 우리 병영의 이미지와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병사들을 불신하기 때문에 죄어치고 윽박질러서 군기를 잡는 데 익숙한 지휘관들은 병사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걸 곱게 보지 않을 것이다.

보안이 문제라고 하는데 이건 더 설득력이 없다. 휴대전화가 보급되면 북한군이 우리 대화를 엿듣기라도 할까?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으로 병사들의 기동을 파악하기라도 하는가? 솔직히 이건 검증되지 않은 괴담에 불과하고, 설령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차단할 수 있다. 그렇게 불안하다면 간부들의 휴대전화 사용부터 금지시키고 볼 일이다. 이건 ‘보안’이라기보다 ‘보신’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이런 고루한 발상은 심지어 병사들이 휴대전화에 중독돼 업무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또 다른 괴담으로 발전한다. 일과 후는 병사의 자유시간이 마땅하다. 세상과 연결되는 소통의 기본 욕구만 해소하도록 사용 기간을 조정하면 된다. 어쩌면 휴대전화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병사에게 유일한 구원의 동아줄일 수도 있다.

 현대전은 스마트폰으로 진행되는 전쟁이다. 미군은 이미 무거운 무전기와 종이로 된 지도를 대체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전쟁에 투입하고 있다. 무전기는 장기간 야외 작전에서 배터리 충전 문제에 봉착한다. 종이지도에 연필로 표기된 중요 정보는 다른 부대와 공유할 수 없다. 그래서 나온 게 전자지도가 내장된 스마트폰이다. 아프간 전쟁 이후 미 국방부가 개발한 애플리케이션만 해도 수백 개다. 미 국방부의 스마트폰을 활용한 차세대 전술통신 시스템인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저항군이 설치한 폭탄의 위치를 긴급 전송하고, 전투에 필요한 영상과 문자메시지를 전송하는 데 요긴하게 쓰인다. 이런 추세는 이미 나토군에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게 바로 스마트 군대, 첨단 네트워크 전쟁이다. 정보통신 강국이라는 우리가 가장 앞서서 받아들여야 할 문화다.

 우리 병영 문제의 핵심은 20대가 병영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군 장교들이 20대의 현대적 감각에 적응하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다. 재래식으로 싸우고 전근대적으로 병영을 관리하는 문화지체 현상이다. 이런 병영에 휴대전화가 몰고 올 충격은 분명히 있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충격을 병영문화 혁신의 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역발상이 요구된다. 그런 충격은 민과 군을 연결하는 ‘국방공동체’ 형성, 그리고 병영에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집단지성 창출로 이어진다. 우리 군이 똑똑해져서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기회다. 그걸 왜 마다할까?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군사기밀 유출 위험도 생각해야

장기윤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위원
예비역 준장

정말 어처구니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군인들 자신도 납득이 안 될 텐데 일반 국민, 특히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의 입장에서 용서가 되겠는가? 지속적인 폭행과 인권유린 자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런 심각한 문제들을 파악조차 못 하고, 사건의 실상을 가감 없이 알리지 않은 군에 대해 국민의 분노는 치솟고 신뢰는 무너지고 있다. 군 생활을 했던 한 사람으로서 피해 가족과 국민께 엎드려 사죄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간 군의 노력으로 각종 사고가 줄어들고는 있지만, 잊을 만하면 또 발생하곤 한다. 왜 그럴까? 군대란 자의에 반해 강제 징집된 각양각색의 젊은이들이 모여 험난한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갈등은 더 많이’ 생길 수밖에 없는 데 반해 그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탈출구는 더 제한되는 모순을 잉태하고 있다. 해결 방법은 ‘갈등은 더 줄여’ 주고 ‘탈출구는 더 넓혀’ 주는 것인데 그 실행이 어려운 것이 문제다.

 탈출구를 넓혀 주는 방편의 하나로 병사들에게 휴대전화를 지급하자는 의견이 제시돼 찬반 논쟁이 뜨겁다. 필자도 며칠간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며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그 결과 일부 장점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러 반대하는 입장에서 이 글을 쓴다.

 긍정적인 면도 분명 있다.

 휴대전화로 “언제라도 엄마에게 이를 수 있게” 함으로써 갈등에 대한 탈출구를 넓혀 주고 고립감을 줄여 줄 수 있다. 더불어 잠재적 가해자들을 더 조심하게 함으로써 사고예방에 기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별 도움이 안 되거나 오히려 문제되는 것도 많다.

 혹자들은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가진 후 사고가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왕따’는 존재하고 사고도 발생한다. 불량한 소수가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병영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할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자칫 더 교묘한 신종 가혹행위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를 못 쓰게 한다든지,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잘 해준다는 메시지를 보내게 할 수도 있다. 이런 우려에 대해 “그런 것까지 이르면 되지”라고 할 수도 있지만, 휴대전화의 존재가 잔뜩 위축된 피해자에게 그런 용기를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군의 존재 목적은 전쟁을 억제하고 유사시에 싸워 이길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진정한 전우애(戰友愛)가 필요하다. 전우애는 함께 땀 흘리고 함께 여가활동을 하며 생겨나는 것인데,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면 여가시간에 장병들이 주로 무엇을 할까? 아마 동료와의 어울림보다는 사회에 있을 때보다 더 휴대전화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개인주의가 팽배해 단결력이 저하되고 결국 전투력 약화로 이어질까 우려된다.

 병사들에게 휴대전화를 허용한다면 누가 좋아할까? 우선 부모들의 입장을 보면 전반적으로 좋아하긴 하겠지만, 모든 부모가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형편과 처지도 있을 수 있다. 반면에 통신회사들은 모두 좋아할 것이며, 특히 가장 좋아하는 쪽은 ‘북한’일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SNS 등을 통한 군사기밀 유출이 심각한데, 더 많은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으니 쾌재를 부를 것이 뻔하다. “요즈음은 웬만한 회사에서도 휴대전화 반입을 통제하는데, 하물며 부대에서 어쩌려는 것인지?” 우려하는 네티즌들이 부지기수다.

 병영문화의 개선은 군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국민적 과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이번에 국방부에서 민·관·군이 함께하는 ‘병영문화 혁신위원회’를 출범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조치라고 본다. 따라서 휴대전화 사용 문제도 지엽적인 면만 보고 성급히 결정할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혁신의 틀 속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장기윤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연구위원 예비역 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