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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방 일본부」의 처조성을 입증|동래 복천동 가야 고분 발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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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천5백년전 가야문화의 신비를 풀어줄 5세기 전반의 대규모 가야 고분군이 발굴돼 국내외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부산시 동래구 면천동 가야 고분군을 발굴중인 부산대박물관(관장 김석고)은 본격적인 발굴 한달째를 맞은 20일주·부야이 각각 서로 다른 수혈식 우실과 토광으로 된 전허 새로운 가야 묘제를 확인한데 이어 신전용 마면위(말 투구) , 이형 토기(유개대부왕구소호) 응 우리나라 최초의 출토유물을 수습했다.
발굴단은 이밖에도 2백50여 점의 각종 토기와 금제 세경이식, 갑옷·투구 등의 철제유물 2백여점을 수습함으로써 가야 고분에서는 처음으로 최 다량의 공반유물을 발굴한 성과를 올렸다.
특히 갑위와 마면주의 출토는 5∼6세기 사이에「임나일목부」를 설치, 가야를 통치했다는 일본 측 주장의 역사적 허구성을 반증할 수 있는 결정적 자료로 평가돼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새로운 묘제 확인>
총34기의 가야 고분이 위치한 곳은 동래여중·고 앞 판자촌이 들어서 있는 작은 능선의 6백15평. 석실묘가 18기, 토광묘가 척기로 석실과 토광이 주·부곽으로「콤비네이션」을 이룬 것이 3조가 있다. 이중 전혀 도굴의 흔적이 없는채 원상 그대로 온건하게 보존돼 있는 석실토광묘는 2조다. 이 2기의 고분은 각각 길이 2m40, 폭 1m40cm의 대형 개석을 3개씩이나 덮은 초대형의 수혈식 석실로 되어 당시 지배계층의 묘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분의 크기는 11호 분의 경우 주곽인 석실이 길이7m90, 폭 4m80cm이고 부곽인 토광이 길이 6m, 폭 3m50cm다.
이같이 석실과 토광이 조를 이루는 묘제는 가야나 신라 고분에서 처음 확인됐다.

<출토 유물>
모두 5세기 전반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지금까지의 대표적인 출토 유물로는 마면위(제10호분), 이형토기(제34호분), 갑위(제4, 6, 34호분)등을 손꼽을 수 있다. 이밖에 마구, 환두대도. 철정. 철촉. 철부 등의 철기 다량과 대혐 원통형기대, 발형기대, 장경호, 고배 등의 토기가 가야고분에서 일괄 유물로 다양하게 출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면위(길이 50cm), 광폭 23cm, 내폭 13cm, 미비(챔) 높이18cm)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출토된 고대의 실전용 말투구로 말방울·안교·전자 등의 마구류와 함께 수습됐다. 이 말투구는 20일 대구 계명대 박물관으로 복원하기 위해 이송됐다.
갑옷과 투구로는 수인판 혁급식의 계갑 2벌, 단갑 1벌, 투구 2개가 출토됐다.
이형토기(높이 23cm, 동경 10·3cm)는 뚜껑이 몸통과 고착돼 있고 주둥이가 달렸으며 뚜껑에 고사리형의 꼭지가 붙어 있다.
아직 손을 대지 않은 2공의 대형 석실묘의 개석을 열 경우 금동관·갑위·금제장식 등의 귀중한 유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어 출토 유물은 1천여점 이상으로 늘어날 것 같다.

<발굴 경과 및 의의>
이번 발굴은 부산시가 토지 구혁 정리사업을 위해 부산대 박물관에 발굴을 의뢰함으로써 시작됐다.
이에 앞서 복천동 고분은 69년 동아대의 긴급 발굴(1기), 69∼73년까지의 동아대 연차 발굴, 74년 부산대 발굴(2기) 등이 있었다.
이번 발굴의 가장 큰 의의는 일본의「임나일본부」설치설을 반증할 결정적 자료를 얻었다는 점이다. 일본측은 해방전 부산 동래와 72년 함양에서 발굴된 갑옷·투구가 일본기내 고분 출토의 것들과 모양이 같다는 점을 내세워 5, 6세기의 임나 한국 지배설을 뒷받침해 왔다.
그러나 이번 마면 위와 각종갑주의 출토로 5세기 후반에 들어서나 기마술이 본격화 한 것으로 돼있는 일본보다 가야의 기마 전술이 훨씬 앞섰다는게 증명됨으로써 그 허구성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다음으로는 본격화 된 가야의 기마전술이 입증됨으로써 일본학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한민족의「기마 민족설」이 상당히 폭넓은 반응을 일으킬 것 같다.<부산=이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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