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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에 쏟은 민족불교의 일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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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운허 스님은 현대 한국 불교의 크나큰 별이셨습니다. 입적하기 이전에 민족주의자며 독립운동가였던 스님은 교육을 통한민족의 각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만주에서 동창 소학교·흥동학교 등을 세워 아동교육으로 그 뜻을 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다 독립운동 단체인 광한단의 일원으로 국내에 들어와 유·불·기독교 조직을 연결하는데 실패, 유점사로 입산한 것이 불교와의 큰 인연이 되었습니다.
불교에는 국경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중국의 글로 불경을 만들어 중국 정신의 중국 불교를 만들고 있습니다. 옛 신라에서는 신라의 불교를 만들어 나라의 정신을 삼았습니다. 이웃 일본의 불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전은 우리 글로 되어 있지 않아 좀처럼 우리의 불교가 만들어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한국 민족은 한국 민족이 가져야할 불경이 있어야 하고 그 불경으로 우리의 사상이 표현되어야 한다고 믿으셨습니다. 그 뜻이 역경사업으로 나타났습니다.
호국의 일념으로 만들어졌던 팔만대장경, 그 방대한 경전을 우리 글로 옮기겠다는 뜻을 세우고 64년 동 국역경원을 설립하여 숙원의 사업을 풀어나가기 시작하셨습니다. 독립 운동가로서의 맥락이 여기서 다시 한번 이어진 것입니다.
처음 2년 동안은 역경원이 있는 동국대학교 안에 숙소를 잡으시고 학교 안에서 기거하며 역경에 전념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초창기 역경사업을 거의 당신 혼자 하시면서 한번도 그 일을 자랑삼으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스님은 말없이 일만 해오셨습니다.
이젠 그 팔만대장경도 거의 3분의1이 우리말로 번역되고, 이를 쉽게 터득할 수 있도록 불교사 전도 스님이 직접 펴냈습니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한국에 나서 승이 되어 역경사업을 계속하고 싶다』고 하시던 스님의 말씀. 그 숙원의 사업이 지금은 스님이 직접 길러낸 후진들의 손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홍서심여해 역겁불사의(보살의 서원은 깊이가 바다와 같고 세상이 다 하도록 다 하도록 헤아릴 길이 없다)이 서원을 이루지 못해 부끄럽다고 말씀하시던 스님은 늘 입버릇처럼 내 몸을 위해 살지 말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말없는 실천으로 후진에 불교를 가르쳐 오신 운허 스님은 이제 다시 말없는 입적으로 우리에게 큰 것을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운허 스님, 이젠 크나큰 호국의 얼이 되어주소서. <전 동국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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