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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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조치훈 8단이 지그시 눈올 감았다. 뭔가를 깊이 다짐하는 듯, 또는 기원하는 듯 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텔리비전·뉴스」시간에 잠시 비친 그의 전송사진의 한 장면은 마지막 대국의 첫돌을 놓기 직전이었는지, 명인「타이틀」을 획득한 순간이었는지가 분명치가 않았다.
그러나 그 어느 쪽에도 어울리는 표정이었다.
『바둑은 조화, 승패는 운』.
한때 일본의 기계률 주름잡던 중국의 천재기사 오청원이가 남긴 말이다.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만큼 바둑의 승부는 아슬아슬하다. 2백30수 이상을 두는 사이에 무슨 심리의 동요가 생길지도 모른다.
면도 날 같다는 판전 9단도 어느「타이틀」전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대국 중에 불쑥 대국실에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에게 신경이 쏠려 그만 치명적인 악수를 놓은 적이 있다.
상대방의 기백에 눌리는 수도 있고, 체력에 지는 수도 있다.
조치훈 8단이 이번 명인전의 제1국을 기백으로 이겼을 때 분수수자는 그가 명인「타이틀」을 기어이 따낼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과연 적중하였다. 그는 시종 대죽명인을 기백으로 눌러 나간 것이다.
바둑은『운의 예』라는 말도 있지만 이번「시리즈」를 통틀어 그는 달이 좋았다기보다도 운을 만들어 나갔다고 볼만도 했다.
그에게는 완착이나 악수가 거의 없었다. 반면에 대죽 9단에게는 악수가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조 8단에게 말려든 탓이었다고 봐야 옳다.
명인「타이틀」은 매우 역사가 깊다. 16세기말에 경도의「본인방」이라는 승방에 살고 있던 일해는 일본에 바둑 중흥을 이룬 참이었다.「본인방」이라는「타이틀」은 여기서 유래한다.
한편 덕천가강은「기소」라 하여 바둑으로 임관된 사람들이 일하는 기관을 신설하고, 이들을 다스리는 자리에 일해를 앉혔다.
이때의 그의「타이틀」이 바로 명인이었다. 그는 이를테면 장군의 바둑선생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어떻게 해서라도 중국인인 오청원에게 명인·본인방 두「타이틀」만은 넘겨주지 않으려 했던 일본 기계의 심정도 이해할 만 하다.
그런「타이틀」을 외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획득한 것이다. 6세에 역시 어린 형과 함께 단둘이 도일한 조치훈으로서는 다시없이 기쁜 순간이었을 것이다.『요컨대 이기는 자가 센 것이다』어느 9단의 경구다. 24세의 젊은 나이로 외국의 한 세계를 정복한 그는 참으로 장한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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