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산케이, 박 대통령 악의적 보도" … 8·15 앞두고 악재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검찰은 10일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된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을 출국금지시키고 12일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산케이신문은 세월호 침몰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증권가 루머 등을 인용해 의혹을 제기했다. 10일 산케이신문 서울지국 사무실이 텅 비어 있다. [뉴스1]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동선’과 관련한 일본 산케이(産經)신문 보도가 꼬여 있는 한·일 관계에 악재로 떠오르고 있다. ‘8·15 경축사’에 담길 박 대통령의 대일(對日) 메시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9일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과 한 시간가량 회담을 한 뒤 산케이신문 보도에 대해 강력 항의했다. 윤 장관은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이용한 악의적 보도”라며 “이웃 나라 국가원수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걸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산케이신문은 세월호 침몰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동선에 대한 증권가 정보지, 모 신문 칼럼 내용 등을 인용해 “이 소문은 박 대통령과 남성에 관한 것”이라며 사생활에 관한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 지지율이 40%로 폭락했으며, 이로 인해 서서히 대통령 등 현 정권의 권력 중심에 대한 진위를 알 수 없는 소문이 문제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 장관의 항의에 대해 지지(時事)통신은 외교 소식통을 인용, “일·한 외교장관회담에서 기시다 외상이 윤 장관에게 ‘(산케이 보도를 문제 삼는 건) 보도의 자유란 점에서도 우려하고 있다. 일·한 관계에 영향이 생길 것’이라며 억제적 대응(자제)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신문 보도가 지난해 9월 유엔 총회 이후 11개월 만에 열린 양국 외교수장 간의 만남에서도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것이다. 당초 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일본에 대해 전향적인 메시지를 담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으나 이마저도 불투명해졌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윤 장관의 항의는 청와대 핵심부의 격앙된 기류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그간 청와대는 “보도 내용 자체를 언급하는 것조차 수치스럽다”며 ‘조용한 해법’을 모색해 왔다. 하지만 보도의 파장이 수그러들지 않자 지난 8일부터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이 직접 기자실을 찾아 “박 대통령은 당일 경내에 있었고,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보고를 받았다”고 해명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산케이신문에 대해선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수봉)도 이날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48·加藤達也) 서울지국장에 대해 소환을 통보하는 한편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다. 검찰의 조치는 산케이신문에 대한 시민단체(사단법인 독도사랑회 길종성 이사장)의 고발에 따라 이뤄졌다. 검찰은 가토 지국장에게 12일 피고발인 조사를 위해 검찰에 나와 달라고 통보했다.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외국 언론사 지국장을 출국금지하고 검찰 소환을 통보한 것은 이례적이다.

 검찰은 가토 지국장을 2∼3차례 소환해 보도 근거와 취재 경위 등을 조사한 뒤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안이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인 데다 한·일 간 국제 문제인 만큼 외교 갈등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신속하게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명예훼손 성립 여부는 가토 지국장이 3일자 기사 내용에 대한 객관적 근거를 얼마나 제시하느냐에 달려 있다. 검찰 관계자는 “가토 지국장이 칼럼 인용 보도를 넘어 한국 대통령의 사생활 의혹을 구체적으로 제기한 만큼 사실임을 입증하려면 취재 내용을 충분히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선 가토 지국장 출국금지를 둘러싸고 반한(反韓)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한국 정부의 대응을 연일 1면에 상세하게 보도했다.

9일자엔 서울중앙지검의 가토 지국장 출두 요구 소식을 전하며 “(관련) 기사는 한국 국회 내에서의 논의 및 모 신문에 게재된 칼럼 등 공개돼 있는 정보를 중심으로 그걸 소개하는 형태로 쓰여 있다”고 주장했다. 산케이신문은 또 고바야시 다케시(小林毅) 편집국장의 “명예훼손 혐의로 출두를 요구받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해명도 함께 게재했다.

◆산케이(産經)신문=일본의 대표적 보수우익 신문. 210여 만 부를 발행하는 일본 5번째 신문이다. 문제의 서울지국에선 전임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지국장이 2009년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우리 국민이 분노하자 “억지를 부리지 마라”고 주장했고, 최근엔 서울지국 특별기자 자격으로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위안부”라고 비꼬는 기사를 썼다.

정효식 기자, 네피도(미얀마)=정원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