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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족, 위안부 할머니 … 위로의 말씀 학수고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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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호 12면

김군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왼쪽)가 8일 ‘나눔의 집’에서 황은하 인턴기자와 대화하고 있다. 김 할머니는 청력이 약해 크게 말해야 들을 수 있다. 최정동 기자

500만 가톨릭 신자를 비롯한 많은 한국인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더욱 애타게 그의 방문을 고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 음성 ‘꽃동네’ 주민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쌍용자동차 해고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교황은 이들을 직접 만나 상처를 어루만져줄 계획이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아픔을 함께하는 사랑과 평화의 세상을 꿈꾸는 시간, 교황이 우리들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이다.

[14일 교황 방한] 목자 프란치스코를 기다리는 사람들

교황은 15일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과 유족들을 만난다.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뒤 경기장 내에 마련되는 임시 제의실에서 이들을 면담한다. 참여 인원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교황청 대변인 롬바르디 신부는 “교황께서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실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들은 교황이 세월호특별법에 대한 생각을 밝혀주길 고대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으로 아들 승현군을 잃은 이호진(56)씨는 “유족들이 원하는, 진상 규명이 이루어질 수 있는 특별법에 대해 교황께서 한마디라도 얘기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교황을 뵙고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세월호에 대해 꼭 한 말씀 올리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잊혀지는 옛날얘기가 아닌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고 싶다”고 덧붙였다.

유족들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줄 것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7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특별법안에 이를 포함시키지 않기로 합의했다.

익명을 원한 한 유족은 “내정간섭 문제가 될 수 있어 교황이 특별법과 같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얘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교황은 약자와 서민의 편이기 때문에 정부와 국회에 대한 우리들의 요구와 관련해 긍정적인 말씀을 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시복미사 집전을 마친 뒤 충북 음성군의 사설 복지시설인 ‘꽃동네’를 방문한다. 그곳의 입구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교황은 헬기를 타고 오후 4시30분에 도착해 2시간30분가량 머문 뒤에 다시 헬기를 타고 떠난다. 중증 장애인 요양시설인 ‘희망의 집’에서 약 30분간 장애인들을 만난 뒤 오픈카를 타고 1㎞ 정도 떨어져 있는 ‘태아동산’으로 향한다. 낙태 문제를 생각해보자는 뜻으로 조성된 이곳에서 교황은 ‘생명을 위한 기도’를 올린다. 이후 수도자와의 저녁 기도, 평신도 사도직단체 협의회 대표 150명과 만남 등의 일정이 잡혀 있다.

희망의 집에서 교황을 만나게 되는 김 레오비노(55)씨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 교황을 직접 만나는 것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교황께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파해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봉사자 김춘화(60)씨는 “교황께서 정치인들이 싸우지 않고 사랑으로 정치를 하도록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우리나라가 사랑 가득한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꽃동네의 언론 담당 박 마태오 수사는 “교황의 방문은 우리가 요청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가톨릭 청주교구장이 전국 주교회의에 건의해 성사된 것이다. 지난해 8월 오웅진 신부(꽃동네 설립자)와 교황의 만남에 의해 추진됐다고 보는 것은 오해”라고 설명했다.

오웅진 신부는 “인류가 공멸이 아닌 공존의 역사로 함께 나아가도록 교황이 기도해주시기를 바란다. 교황이 이곳의 ‘가족’을 보러 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본다. 마태복음 25장 40절에는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다’고 적혀 있다”고 말했다.

전국장애인철폐연대 등의 일부 단체는 교황의 꽃동네 방문에 반대하고 있다. 장애인들을 일반 사회에서 떨어진 곳에 집단적으로 거주시키는 올바르지 않은 시설에 교황이 가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교황청은 이에 대해 “한국의 교회 관계자들이 많은 검토를 한 뒤에 주교회의에서 교황 방한 프로그램을 검토할 때 원해서 결정된 부분이다. 꽃동네 방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1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교황이 집전하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는 3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도 참석한다. 김군자(88)·강일출(87)·이용수(87) 할머니다.

“광복된 지 69년이 됐는데, 아직도 (위안부 피해 문제가) 해결이 안 됐어요. 교황께서 일본이 사죄하고 잘 처리하라고 얘기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우리들(위안부 피해자)이 고생했고,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위안부 피해자 후원 시설인 경기도 광주시의 ‘나눔의 집’에서 만난 김군자(세례명 요안나) 할머니의 소망이다. 그는 1997년 부활절에 세례를 받았다.

이날 미사에는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제주 강정마을의 주민, 쌍용자동차 해고자, 밀양 송전탑 건설 예정지 주민도 참석한다. 3명씩 초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교황방한준비위원회는 “사회적 갈등에 대한 화해와 평화를 염원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정신과 맞아 초청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고권일(51) 강정마을회 부회장은 “해군 기지 문제에 대한 얘기를 안 해도 좋으니 꼭 우리 마을을 방문해 축복해달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교황청에 보냈는데, 일정을 따로 잡기가 어려워 우리를 초대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 같다. 교황이 낮은 데로 임하는 자세로 우리를 부른 듯하다”고 말했다.

황은하·박종화 인턴 기자 heh7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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