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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우융캉 업고 7조 재산 … 중국판 마피아 두목 사형 선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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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7일 후베이 고급인민법원 항소심에서 피고석에 앉은 류한이 재판장의 사형 판결을 듣고 있다. [셴닝 신화=뉴시스]
저격용 소총 등 각종 무기들이 보관된 류한의 사제 무기고. [셴닝 신화=뉴시스]

중국 쓰촨(四川)성이 본거지인 한룽(漢龍) 그룹의 류한(劉漢) 회장은 부와 명예를 한 몸에 누리던 기업가였다. 부동산 개발과 광산업 등을 통해 드러난 재산만 약 400억 위안(약 7조 원)을 모은 그를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중국의 숨은 부호’ 중 1명으로 꼽기도 했다.

 가난한 집안에 태어났고 학력도 변변찮은 그가 화학공장 노동자로 시작해 성공에 이른 스토리는 자수성가의 모범으로 여겨졌으며 자선사업가로서도 명망이 높았다. 재력뿐 아니라 쓰촨 정·관계에 영향력도 막강했다. 성 정부와 당 조직의 인사를 주무른 그에겐 쓰촨성 정치협상회의(정협) 상무위원이란 공식 직책보다는 ‘제2의 조직부장’이란 별칭이 더 어울리는 직함이었다.

 류한의 ‘이중생활’이 드러난 건 올 2월 사정 당국의 수사 발표를 통해서였다. 알고 보니 그는 대량의 총기로 무장하고 청부살인까지 저질러온 폭력조직의 보스였다. 개발사업의 이권을 둘러싸고 경쟁업자와 알력을 빚자 조직원을 동원해 총격전을 벌인 사례를 비롯, 그가 배후로 지목된 각종 살인사건으로 숨진 사람은 9명에 이르렀다.

 그는 20여 자루의 총기와 수류탄, 다량의 탄약을 보관해둔 사제 무기고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손에 피를 묻혀 번 돈으로 정·재계의 거물로 군림하며 자선사업가 행세를 해 온 것이다. 중국 인터넷은 “홍콩 누아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들이 중국에선 버젓이 현실 속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는 개탄으로 부글거렸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신경보(新京報)는 “2001년 류한이 ‘귀인’을 만나 도움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폭력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조사 대상에 올라있었으나 고위층에게 거금을 전달함으로써 무마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수법은 이랬다. 류한은 자신이 운영하던 수력발전소 두 곳을 후이르(匯日)전력에 5억 위안에 넘겼다. 2개월 후 후이르는 27억위안을 받고 다른 기업에 팔아 22억 위안(약 3740억원)의 차익을 챙겼다. 후이르는 서류상 버진아일랜드에 등록된 기업이지만 실소유주는 고위층 인사였다. 당시 중국 언론들은 ‘귀인’의 실명을 밝히진 않았다. 하지만 “특수한 배경을 가진 사업가 저우빈(周濱)과 끈끈한 ‘관시’(關係)를 유지했다”는 문장을 기사에서 빠뜨리지 않았다.

 저우빈이 구속 조사를 받고 있는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의 아들이란 사실은 삽시간에 입소문을 타고 퍼졌다. 류한이 ‘귀인’과 관계를 맺었다는 2001년은 저우가 쓰촨성 서기로 근무할 때다. 저우는 이듬해 공안부장 겸 정치국원으로 발탁돼 베이징으로 올라갔으나 쓰촨성 부서기, 부성장 등 요직에 그의 인맥을 심었다. 더불어 류한의 사업도 날로 번창해 갔다.

 정경유착을 넘어 암흑세계의 마피아와도 결탁된 부패고리는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출범과 함께 철퇴를 맞았다. 고의살인, 흑사회(黑社會·범죄집단) 조직 등 13개 혐의로 기소된 류한에게 법원은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7일 CC-TV로 보도된 2심 재판(중국 형법상 최종심)에서 판결문을 읽는 후베이성 고급인민법원 여성 재판장의 목소리는 사뭇 준엄했다. “류한 피고인을 사형에 처하고 정치적 권리를 종신 박탈하며, 개인 재산은 전부 몰수한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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