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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시대 예고… 해외진출 「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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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80년대 한국「스포츠」는 가장 변화있는 포물선을 그리게 될 것 같다. 지금까지의 한국「스포츠」가 국성선양에 역점을 둔 「아마추어리즘」의 기반위에서 발전했다면 80년대 「스포츠」는 자신의 명예와 영달을 위한 개인주의 중심으로 크게 변모할 것이 분명하다.
즉 개인주의 중심이라함은 각종 「스타」들이 「프로페셔널」에 탐익되어 한국 「스포츠」의 「프로」화가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이와같이 앞으로의 한국 「스포츠」는 「프로」화를 위한 첫 출발이라는 점에서 최대 전환기에 들어섰다해도 지나친 표현을 아닐 것이다.
한국「스포츠」는 50년대을 『보급과 계몽의 시대」라면 60년대는 「급속한 성장시대』, 그리고 70년대는 『해외진출의 시대』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추어리즘 퇴색>
이런 추세로 미루어 80년대는 『「프로」화시대』로 변모하는 시기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스포츠」의 이같은 시대적 의미는 곧 국민경제의 변천과 깊은 함수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스포츠」는 그만큼 그 나라의 경제성장에 직접적인 연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80년대 「스포츠」가 「프로」화시대로 접어들게 되지 않으면 안될 필연적인 사설들이 있다.
즉 차범근의 서독 「프로」축구진출이 가장 「프로」화를 촉진시킨 효시라 할 수 있다. 70년대 후반들어 축구 「스타·플레이어」들은 「홍콩·세미·프로」에 대량 유입됐다.
변호영을 「스타트」로 하여 김재영· 강기욱· 박이천· 임태주(후에 「사우디아라비아」로 진출) ·박병철· 문구호등이 「홍콩」축구계에 진출함으로써 한국에서도 「프로·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또 이미 각종목 지도자가운데 5대양 6대주로 뻗은 태권도· 유도이외에 농구에선 방렬(쿠웨이트) 주희봉(자유중국) 최종규(쿠웨이트) 유희형(쿠웨이트) 곽현채(쿠웨이트) 김동규(사우디아라비아) 정세훈(사우디아라비아) 주호석(바레인) 황재환(카타르)등, 배구의 박무(캐나다)박대희(사독) 박지국(멕시코) 박만보(페루) 손영완(아르헨티나) 구연묵(바레인) 이선구(쿠웨이트) 이춘표(쿠웨이트) 기영인(쿠웨이트) 임태호(사우디아라비아) 등, 탁구의 주창석(베네쉘라) 소영인(「아랍·에미리트」연합국) 김창제(리비아) 홍종빈(리비아) 이인섭(바레인) 이재화(「아랍·에미리트」연합국) 등 각 종목의 지도자가 해외에 진출, 「달러」획득과 함께 국위선양을 해봤다.

<중동· 미주 대거진출>
이들을 지역별로 보면 세계 6대주 47개국에 흩어져있는 태권도를 비롯, 농구는 중동, 배구는 미주, 탁구는 중동지역에서 주로 활약하고 있는 등 「프로」화의 기반은 지도자 해외진출을 통해서도 다져왔다.

<박상인도 떠날채비>
그런데다 79년에 들어 차범근의 성공적인 서독 「프로」축구 「분네스·리가」 「데뷔」와 함께 「프로」성향이 크게 「어필」, 허정무의 화란진출에 이어 박상인도 북미「리그」로 떠날 채비를 차리고있다. 또 탁구의 이에리사· 박이희등은 서독 「프로」탁구에 진출하게됐고 남자배구의 기둥인 안만수가 중동의 「아랍·에미리트」연합국으로 또 야구의 박철정이 미국으로 떠나게됨으로써 한국「스포츠」계는 「프로」화에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같은 「스타」들의 개인적인 「프로」진출에다 국내에서는 축구의 「할렐루야·팀」이 창단을 선언, 「프로」화에 본격적인 계기가 이뤄지고 있다.
지난 7월 대한축구협회 최정영 회장은 오는 12월까지 「프로」축구「팀」인 「할렐루야·팀」을 발족시키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한국 「아마」축구의 총수인 최 회장이 「프로·팀」창단의 발기인이 된 것이다.
기독교도만으로 구성된 「할렐루야·팀」은 지난해 처음 대통령「컵」 쟁탈 국제축구대회가 끝난뒤 선을 보였다. 올해에도 「할렐루야·팀」은 서독 「프랑크푸르트·팀」이 내한했을때 친선경기를 벌이는 등 이미 「팬」들에겐 낮선 「팀」이 아니었다.
「할렐루야·팀」은 전국5백만 기독교도들을 배경으로 선교의 목적과 함께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고있다.
최 회장은 「할렐루야·팀」에 이어 제2, 제3「프로·팀」의 창단을 기대하고 있다.
늦어도 금년말까지 「할렐루야·팀」이 정식 창단되면 한국「스포츠」는 구기종목에서 「프로」화에의 첫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팀」은 우선대표 「팀」을 비롯해 군· 실업· 대학「팀」등과 지방을 순회하며 잦은 경기를 벌이고, 또 한국선수들이 많이 뛰고 있는 「홍콩·팀」들을 불러들여 경기를 갖는 등 경제적 자립을 위한 청사진을 마련하고 있다.
「홍콩」축구의 해봉「팀」은 올 후반기부터 한국인이 경영에 참여하게돼 이같이 한국과의 축구교류는 난관이 없을 것 같다.
구기「팀」의 「프로」화는 축구이전에 야구에서 논의됐었다.
일본은 이미 1930년대초에 「프로·팀」이 시작됐으며 19세기 말에 탄생한 미국은 차치하고라도 한국은 일본에 반세기나 뒤지는 셈이다. 「프로」야구「팀」의 창단 움직임은 지난 70년대 중반에 있었다. 각 지역에 「프랜차이즈」(전용구장)를 두고 지연을 바탕으로 관중동원도 어렵지 않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구체화가 될 무렵 전세계에 엄습한 「오일·쇼크」와 함께 부경기가 오자 일단 주춤하고 말았지만 야구의 「프로」화설은 시기적으로 무척 단축시킨 역할을 했다 할 수 있다.

<팬도 참여한 스포츠>
서독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 『차「붐」』을 일으키며 성공적인 활약을 하고있는 차범근은 올 「시즌」 45만「마르크」 (한화l억4천여만원)을 받았으며 화란의 허정무도 이와 비슷한 액수로 계약했다. 또 중동 산유소국 「아랍·에미리트」 연합국에 「스카우트」된 배구의 강만수는 1년동안 10만「달러」 (약6천만원) 계약금에 월봉 2천7백「달러」 (약1백60만원)의 좋은 조건이다.
이들외에 배구의 서혜정(이탈리아) 탁구의 이에리사(서독)에 이어 「테니스」의 이덕희도「프로」에 뛰어듦으로써 한국「스프츠」는 80년대 초반에 이미 「프로」화 문턱에 들어선 느낌이다.
이와함께 축구지도자(김호· 김정남· 허현정)의 서독「코칭·스콜」 수학, 농구지도자(정주현· 박한)의 미국수학등 「프로」화는 더욱 촉진되고 가속되어왔다.
80년대 한국 「스포츠」는 관전의 「스포츠」에서 참여의 「스포츠」로 탈바꿈하고 있는 추세다.
그동안 축구· 야구· 농구· 배구· 권투등을 관전만 하던 「팬」들은 이제 「테니스」· 「골프」의 직접참여에 매료됐으며 직장야구· 축구등이 성행하게됐다.
이같은 것은 순수 「아마·스포츠」로 「아마」라는 뜻이 「라틴」어의 사랑한다는 말에 어원을 두고있듯이 순수하게 「스포츠」를 사랑하여 체력단련과 취미로 하는 것뿐. 따라서「아마·스포츠」에서 배출된 「스타」들의 돌파구는 필연적으로 「프로·스포츠」일 수밖에 없다.
「프로」란 전문적이고 직업적이란 뜻이다. 따라서 「프로·스포츠」는 고도의 「테크닉」과 승리하기 위한 비정한 승부의 싸움이라는데서 「아마·스포츠」와는 차원이 다르다 하겠다. 「프로·팀」의 출범은 「아마」선수들에게 의욕을 고취시키는 등 선수저변확대는 물론 기술개발등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은 틀림없다. 우선 「프로·팀」은 선수들의 수명이 길어지게 뇐다. 「아마」에선 30세에 가까와지면 벌써 노장으로 취급하고 그렇게 행세한다.

<야구· 배구등도 들먹>
그러나 「프로」는 이와는 다르다. 이웃나라 일본 「프로」야구의 장훈· 왕정치등이 모두 40세가 넘었는데도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또「홍콩」 「세미·프로」축구에 진출한 한국의 변호영 선수는 36세인데도 아직 「세이코·팀」의 최고의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실력은 곧바로 돈과 통하는 비정한 「프로」 세계에서 살아남기위해 선수자신이 체력관리에 애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엔 이제까지 「프로·복싱」과 「프로·골프」가 있었으나 영세성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80년대엔 「프로」 축구「팀」의 창단에 이어 「프로」야구· 「프로·테니스」· 「프로」 경륜· 「프로」배구· 「프로」농구까지도 생겨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이와같이 「스포츠」의 「프로」화 추구는 당연한 추세인지도 모른다.
일찌기 우리나라 「스포츠」가 이처럼 크게 변모할 것으로 예견되어 왔고 이제 예견된길로 가는 것만이 남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프로」화의 변질은 이처럼 「스포츠」의 추세로 보아 당연하면서도 정착하기까지엔 당분간 진통을 겪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즉 「프로」는 무엇보다도 이윤추구를 첫째 목표로 두고있을 때 「스포츠」의 광활적인「프로」화가 곧 이윤추구과 직결된다고 만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프로」화 시대이후도 엄청난 「스포츠」의 변화는 이뤄지면서도 결국 「스포츠」의 화려함은 극치를 이룰 것이 분명하다.
결국 「스포츠」의 「프로」화는 선수· 「팬」· 장소등 3대요건으로 볼때 이같은 구비가 모두 이뤄진 것이 80년대 한국「스포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대망의 80년대엔 국가경제의 비약적 성장과 함께 한국「스포츠」에 화려한 꽃이 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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