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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흘려 지켜온 230년 … 한국 천주교 역사 여기 모였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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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아, 죽은 자들은 이미 목숨을 던져 진리를 증명하였으니… 산 자들은 양떼가 흩어져 달아난 것처럼 산골짜기로 도망쳐 숨고 길에서 헤매며 숨죽이고 있습니다… 금년의 박해는 끔찍했습니다. 인간이 어찌 이처럼 극단에 이를 수가 있겠습니까.”(김훈 소설 『흑산』 중)

 황사영(1775∼1801)은 옹기가마 속 토굴에서 흰 비단(帛書·62×38㎝)을 펼쳐 1만3311개의 한자를 빼곡히 써내려갔다. 그는 정약용의 조카 사위로 신유박해(1801·한국 천주교회에 처음으로 가해진 대대적 박해)를 피해 충북 제천, 지금의 배론 성지에 은신하고 있었다. 중국인 주문모 신부와 신유박해 순교자 30여 명의 순교열전, 신앙의 자유를 구할 방안 등을 적었다. 밀사편에 베이징에 보내 외세의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간절한 말들은 토굴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황사영이 체포되면서 백서는 의금부에 압수됐고, 1894년에야 서울의 뮈텔 대주교에게 전달됐다. 조선 순교자 79위 시복식이 있던 1925년 로마로 보내져 바티칸 민속박물관에 소장됐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을 계기로 한국 교회 230년사를 집대성한 최대 규모 전시가 열린다. 7일부터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서소문·동소문 별곡’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독일의 성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서울역사박물관 공동 주최다.

 황사영 백서를 비롯한 교황청 소장품 5점도 서울 나들이를 했다. 백서가 한국에 온 것은 2001년 절두산 순교박물관의 신유박해 200주년 기념전에 이어 두 번째다. 『천주실의』(天主實義·마테오 리치가 저술한 가톨릭교리서), 『주교요지』(主敎要旨·이번 시복식에서 시복되는 정약종이 쓴 최초의 한글교리서), 김대건 신부 유골함과 복원 두상, 안중근 의사 유묵 ‘경천(敬天)’, 뮈텔 주교 수집 문서, 왜관수도원 소장 겸재 정선 화첩 등 국내외 30여 기관에서 모은 희귀 자료와 유물 450여 점을 전시한다.

 강흔모 서울역사박물관장은 “한양 도성의 외곽인 서소문·동소문 일대를 다방면으로 연구하며 전시를 준비하던 중 교황 방한이 확정되면서 일정을 4개월 앞당겼다”며 “서울의 땅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와 그 속의 천주교회사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 주제인 서소문과 동소문은 가톨릭 교회사에서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조선왕조의 공식 처형지였던 서소문은 한국 교회 최대의 순교지이기도 하다. 103위 성인 가운데 가장 많은 44위를 배출했으며, 오는 16일 시복식을 통해 복자 반열에 오르는 124위 중 27위 또한 여기서 순교했다. 교황도 시복식 미사를 집전하기 전에 의주로 서소문 순교 성지를 참배한다. 동소문 백동(지금의 혜화동) 일대는 한국 교회 최초의 남자 수도원인 베네딕도회 백동수도원(1909∼27)이 자리했던 곳이다.

 전시엔 서학 연구로 시작해 신앙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인 이들이 체제와 갈등을 빚으며 박해받고 순교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많은 것, 심지어 목숨을 잃으면서 그들이 닿고자 했던 세계는 어디였을까. 10월 31일까지. 무료. 02-724-0192.

권근영 기자

사진 설명

‘서소문·동소문 별곡’전에 출품된 유물들. 위로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① 신문 1개면 정도 크기의 흰 비단에 1만3311개의 글자를 쏟아낸 황사영 백서(1801). 청의 군대 파병을 요청한 부분 등은 그동안 논란이 돼왔다. ② 김대건 신부의 유골함(1901). 가톨릭대학교 전례박물관 소장. ③ 서울 동소문 백동수도원이 설립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실업학교인 숭공학교에서 만든 백동수도원 현관문. ④ 다산 정약용의 십자가. 남양주 정약용 묘에서 발굴됐다.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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