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망」과「구르메」방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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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표제의「프랑스」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gourmand은「대식가」「걸신장이」가 본뜻, 부의로「미식가」라 되어 있고, gourmet는「음식의 맛을 아는 사람」「미식가」, 그리고「포도주 감정가」라는 뜻이 있다.「구르망」이건「구르메」건 공통성은 의식주라는 인간생활의 필수 요건 중에서 특히 식에 남달리 관심과 정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구르망」과「구르메」의 관심과 정열은 그 도와 질에 다소의 차가 있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재료의 질과 조리자의 솜씨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맛」이라는 것도 맛보는 사람에 따라다 다르기 때문에 어느 누구의 작품(요리)이 제일이라든가, 어느 누구의 구미에 맞는「맛」이 가장 좋은「맛」이라고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작품이나, 어떤 유의 감상에도 객관적인 수준이 있어서 그 수준에 도달한 작품이 비평의 대상이 되듯이 음식도그 조리과정에서의 기술과 노력이 문제일 것 같다. 어떤 음식에도 그 자체의 개념이 있다.
개념에 입각해서 좋은 질의 재료가 있어야하고, 선택한 재료를 충분한 기술로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양질의 재료와 우수한 기술만으로 훌륭한 작품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해다.
무엇보다도 거기에는「성의」가 깃들여야 한다.
이 무미무취의「성의」가 결여된 제작품은 그것이 요리 건 건물이건 기계 건 속된말로 김빠진 맥주다.
조리자(또는 창조자)와 마찬가지로 감상자도 여러 층이 있을 수 있다. 음식의 값만 가지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겠고, 음식의 양을 위주로 생각할 수도 있고, 희귀한 재료면 다 맛있는 것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바로 우리의 주변에 있는 수가 많듯이, 값보다도, 양보다도, 희귀한 음식보다도, 우리가 언제나 먹는 음식도 얼마만큼의「성의」로 이루어졌는가를 맛을 보고 아는 감상자가 진정한「구르메」가 아닌가 생각된다. 가야 할 손이 한번 덜 간 음식, 그저 적당히 요기나 면키 위한 음식이 맛이 있을리 없다. 자명한 일이다.
이러한 자명한 이치가 어찌 식생활에만 해당하겠는가. 우리의 사화생활의 각분야에도 적용될 것이다. 사회정책을 세우는 데도. 주는 기업을 경영하는데도, 그리고 국민한사람 한사람이 자기의 맡은바 일을 수행하는데도 졸속이 아니고 신중과 사명감-즉 계의를 가지고 창조자의 자부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어 낼 때, 감상자-즉 소비자나 수혜자는 역시 성의를 가지고 그것을 향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글쎄,「프랑스」요리의정수가 바로「소스」인데「소스」가 맛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당연 이상의 당연이죠.
바로 그것은 요리가 맛이 있다는 말에 포함되는 거니까.』「구르메」이신 Y선생의 명언이다. 물론 정성어린「소스」의 맛을 구별하는「구르메」없이는 어떤 걸작품도 무의미하지만.

<경희대교수·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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