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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뛰게할 레게…한 여름밤의 음악 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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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국내 레게 음악인들이 한데 모여 축제를 벌인다. 9일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펼쳐지는 레게 페스티벌 ‘라이즈 어게인 Vol. 2’다. 10년 전, 그러니까 국내 스카밴드의 원조인 ‘킹스턴루디스카’가 데뷔했을 때만 해도 레게 축제는 언감생심이었다. 1~2팀이 오늘날 20여개 팀이 되기까지 레게 판은 느리지만 강단있게 성장했다.

“한 번 국내 레게팀을 모아보자!” 지난해 킹스턴루디스카의 슈가석율과 ‘루드페이퍼’의 RD는 이런 궁리를 한다. 이제는 때가 된 것이다. 3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열린 1회 밤샘 공연은 준비한 음료가 다 팔렸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래서 올해 2회는 욕심을 냈다. 1000석 규모로 옮겼고, 10개팀을 모았다. 스카, 댄스홀, 퓨전 레게 등 면면도 화려해졌다. 국내 유일 레게 댄스팀 ‘미스 프라이데이’처럼 숨어있는 팀도 발굴했다. ‘미스 프라이데이’의 아키는 “레게엔 농촌의 품앗이 정서가 있다”고 했다. 내 것, 네 것 따지지 않고 함께 가는 ‘원 러브’(하나의 큰 사랑) 정신이 10개팀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는 것이다.

자메이카에서 탄생한 레게는 토속 음악에 블루스, 재즈, 알앤비 등 다양한 장르가 섞이고 상호작용하면서 완성됐다. 19세기 흑인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던 자메이카의 한(恨)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녹아있다. 1960년대 자메이카 출신 레게 음악가 밥 말리(1945~81)가 미국에 진출하면서 주류에 편입됐다. 국내에선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레게팀이 나오기 시작했다.

페스티벌을 앞두고 ‘라이즈 어게인 Vol.2’에 참가하는 뮤지션을 한 자리에 모았다. 킹스턴루디스카의 슈가석율·오정석, 루드페이퍼의 RD·쿤타, 미스프라이데이 리지·아키, 자이온루즈프로젝트 이광재·유승철, 디제이 콴돌, 엠타이슨, 태히언 등 11명이다. “왜 레게가 좋냐”는 질문만 던졌는데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답변이 이어졌다. 레게에 죽고, 레게에 사는 ‘레게꾼’들의 애정고백 현장을 중계한다.

- 다들 어떻게 레게를 시작하게 됐나? 레게의 무엇이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하나?

쿤타(루드페이퍼) : 진짜 솔직하게 얘기하면, 여자를 꼬시려고 시작했어요(웃음). 푸지스(The Fugees)란 팀을 좋아했는데 와이클리프 진이 노래할 때 정말 멋있더라고요. 이 정도면 꼬실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러다가 레게의 사상을 접하면서 바뀌었어요. 원래 저는 음악에 생각이나 이념을 담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모든게 바뀌었죠. 레게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어요. 레게 음악은 저항의 음악이에요. 저는 항상 제 스스로를 ‘총 안든 군인’이라고 생각해요.

슈가석율 : 저는 밴드에 들어와서 만났는데 그냥 운명인 것 같아요. 스카의 역사를 공부해보니 레게, 댄스홀, 힙합, 록, 펑크에 다 영향을 준 거있죠. 더 매력을 느꼈어요. 이제는 일상이에요. 다른 장르를 듣다가도 ‘아, 레게 들어야지’라며 돌아가고 말아요.

디제이 콴돌 : 다른 음악에 잘 붙어요. 이렇게 음악적으로 단순한데 다른 음악에 영향을 주기가 쉽지 않거든요.

태히언 : 저는 영국에서 레게를 만났어요. 원래 하드코어 록커였어요. 타국에 있으면 내 자신이 더 잘 보이잖아요. 나는 누구일까 고민하다가 국악, 민요에 관심이 생겼죠. 다른 나라 전통음악인 플라멩코, 삼바, 레게도 듣게 됐고요. 레게는 우리나라 음악과 비슷해요. 타령 같아요. '함께 나누자'는 메시지도 통하고요.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겠다 싶었죠.

엠타이슨 : 저는 레게 하위장르인 댄스홀을 하고 있어요. 레게가 조금 더 힙합 느낌이 나는건데요. 미국에서 공부할 때 듣게 됐어요. 처음엔 사운드가 좋아서 듣다가, 메시지를 공부하고 더 빠졌죠. 자메이카가 빈부격차가 심해서 범죄율이 높고 치안이 불안정하거든요. 그런 부정적인 것들을 표출하는 원초적이 음악이더라고요. 흑인들이 하는 댄스 파티에 갔는데, 클라이막스에 댄스홀을 트니까 갑자기 사람들이 변하더라고요. ‘아 이게 진짜구나. 사람의 근원적인 것을 건드리는구나’ 그게 결정적이었죠.

- 국내에선 여전히 제3세계 음악인데 서러울 때는 없나?

쿤타 : 저는 ‘제3세계 음악’이란 말이 싫어요. 미국에서 레게가 빌보드 차트 1위를 해요.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는데 왜 우리만 3세계 음악으로 분류되는지 모르겠어요.

RD : 일단 하는 사람이 적다보니 멤버 구하기가 어려워요. 왜곡되기도 쉽고요. 텔레비전에 노출되면 그게 전부인 줄 알잖아요. ‘레게머리’만 떠올리는 사람도 있어요. 사실 레게는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정말 멋있는 음악인데, 그럴수록 더 똘똘 뭉쳐서 분발해야 겠다 생각하죠.

태히언 : 평론해 줄 사람이 없다는게 안타까워요. 그래서 저희는 서로의 평론가가 되어주고 있어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레게라는 놀이터가 더 흥할 수 있다고 봐요.

리지 : 레게 댄스도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관심없는 눈빛을 보낼때 서럽죠. 레게 댄스는 형식이 없다는 게 큰 매력이에요. 힙합처럼 그루브를 잘 탈 필요도, 재즈처럼 선이 예뻐야 할 필요도 없어요. 자기가 직접 만들어가는 거예요. 허벅지 안쪽 근육이나 등 근육 처럼 잘 쓰지 않는 근육으로 만드는 아름다운 라인이 있어요.

엠타이슨 : 희망적인 얘길 하면 사람이 없어서 좋은 점도 있어요. 각각 캐릭터가 확실하다 보니 각인되기도 쉬워요. 승산이 있어요.

- 가족들은 반응이 어떤가?

태히언 : 결혼할 때 반대가 있었는데, 아내의 이모님이 '레게'를 검색해보셨대요. "좋은 음악"이라고 뜨니까 점수를 얻었죠. 레게는 자유와 평화를 위한 부르짖음이잖아요. 음악을 통해 사람이 변할 수 있어요. 레게의 힘입니다.

- 사람이 변한다?

태히언 :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변했을걸요. 제가 얼마나 ‘싸가지’였는데요(웃음).

RD : 확실히 이타적인 음악이예요. 3~4년전만해도 ‘라이즈 어게인’같은 파티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식이었는데 레게가 삶을 잠식하면서 모든 게 바뀌었어요.

쿤타 : 저는 어렸을 때부터 ‘쿤타 잘해, 쿤타 잘해’ 그런 얘기 많이 들어서(모두 웃음). 상대방한테 배운다는 것 자체를 몰랐어요. 그런데 요즘은 많이 배우고 있어요. 돈이나 자존심처럼 옭아매던 것들에도 해방됐고요.

- 서로 평론가가 되어준다고 했는데, 칭찬을 해달라.

RD : 태히언은 레게의 정통성을 지키는 싱어송라이터에요. 형이랑 얘기하면 삶이 더 레게에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쿤타 : 저는 일렉트로닉에 꽂혀있어서 스카가 신나거나 재밌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킹스턴 루디스카의 공연은 정말 재밌어요. 뛰면서 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몇 안되는 밴드죠.

엠타이슨 : 루드페이퍼는 세계적 트랜드를 가장 잘 반영하는 팀이라 조금 더 젊은 팬을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슈가석율 : 자이온루즈프로젝트는 레게뿐만 아니라 삼바 등 세계의 모든 리듬을 차용해 음악을 만들어요. 직접 보면 심장이 ‘쿵쾅’ 뛰고 소름이 돋아요.

오정석(킹스턴루디스카) : 엠타이슨과 루드페이퍼는 직설적이고 공격적이고 원초적인 편이고, 킹스턴루디스카나 자이온루즈프로젝트는 좀 더 부드럽고 재밌게 표현해요. 중요한 건 모두 생활 밀착형이란 거예요. 태히언의 예를 들면 제주 해군기지, 학원 폭력 등 생각할 거리를 던져요.

태히언 : 전부 개성이 강해요. 정형화된 음악, 정형화된 시장과는 다른 움직임인 건 분명합니다.

슈가석율 : 그러니까요. 이 모든 음악을 라이즈 어게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거 꼭 써주세요(웃음).

글=김효은 기자
사진=권혁재 기자

◆라이즈 어게인 Vol.2=9일 서울 서교동 예스24 무브홀, 예매 3만원, 현장판매 3만 5000원,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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