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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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엊그제 본지에 실린 두개의 사진. 하나는 북「메리애나」군도의「사이판」섬에 세워질 한국인 위령탑의 조감도.
또 하나는 「야스꾸니」(정국)신사를 참배한 일본수상이 제주를 받아들고 있는 사진.
그 두 사진은 다같이 2차대전의 망령이 아직도 살아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잊을 수 없는 슬픔을, 또 하나는 잊을 뻔했던 분노를 일깨워 추며있다.
「정국신사」 에는 「명치유신」 이후에 나라를 위해 전사한 2백50여만 명이 들어앉아 있다.
이둘『영령』은 여러 가지 전쟁과 시대로 분류되어진다.
그 중엔『소화 순난자』라는 게 있다. 주로 2차대전의 희생자들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 넣은 데 가장 큰 책임이 있다하여 단죄된「동조영기」와 같은 특급 전쟁범죄자들도 여기 끼어있다.
지난해에「오오히라」(대간) 수상이 정국신사에 참배했다. 전후의 수상으로는 처음이었다.
이게 말썽이 되자 총리로서가 아니라 「오오히라」라는 개인의 자격으로 간 것이었다고 변명했다.
그는 「크리스천」이었다. 그런 그가 굳이 신사참배를 해야 했다는 것도 이상했다.
방명록에 『내각 총리대신 대간 아무개』 라 적은 이상 사적인 참배가 될 수 없쟎으냐는 비난도 있었다.
이번에 정국신사를 찾은「스즈끼」 (영목) 수상은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았다. 버젓이 수상의 자격으로 참배했다.
그러면서도 「오오히라」수상 때처럼 세찬 비판의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도 동조와 같은 전쟁의 최고책임자들이 『순난자』로 모셔지고 있음을 잘 알고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참배한다는 것은 동조가 전범자가 아니라 순난자라 여기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 논리를 한층 더 전개시키면 2차 대전에 대한 책임은 아무에게도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사이판」 에서 또는 만주변경에서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한국인의 넋은 무엇으로 달랠 수 있단 말인가.
죽은 이의 목숨을 이제 되살림 길은 없다. 그러나 아직도 죽음이나 다름없는 실향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인이 지금 「사할린」에 7천명이나 있다.
이들에 대해 일본정부는 애써 눈감아 왔다. 이들 『2차 대전이 낳은 마지막 난민』의 딱한 사정을 묵살하면서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어느 일본「칼럼니스트」가 쓴 적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돼야할 것은 인권이 아니라「책임」이다. 2차대전의 망령은 아직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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