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새삶의 길|형벌보다 근로의 보람 깨닫게 해줘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50년대 암흑가를 주름잡던「오야분」들은 어언 60세 전후 인생의 내리막길에 섰다.
60년대의 신참 주먹들도 우백이됐다. 이들은 이제 사위와 며느리를 맞았고 손자를 보았다. 그때의 주먹들은「과거」를 말하려하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그 「악몽같은 시절」을 잊으려고 애쓴다. 이름조차 갈아버린 사람도 있다.
「깡패」라는 말은 이들에게는 마음의「상처」에 뿌려지는 「소금」보다도 더 아프다.
55년1월29일 단성사앞에서 이정재일파의 권총저격을 당했던 김동진의「단지참회」는 그 아픔을 웅변으로 말해주고있다.
김씨가 평택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의 일이다. 합동정견발표회에서 경쟁후보가 김씨의 과거를 들추어「깡패」라고 인신공격을 했다. 그 자리에서『나는 깡패였지만 오래전에 손을 씻었습니다』라고 변명해보았자 효과가 있을리 없었다.

<손떼면 "배신자" 낙인>
『칼과 도마를 가져와!』김씨는 자기의 선거종사원에게 큰소리로 명령했다.
『유권자 여러분, 나는 과거에 깡패였소. 그러나 오늘날은 깡패가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분앞에서 보여드리겠소』 김씨는 스스로 왼쪽 엄지손가락을 도마위에 올려놓고 칼로 내리쳤다.
잘린 손가락이 단상에서 팔딱팔딱 뛰었다. 과거를 씻은지가 오래였지만 악귀처럼 따라다니던 깡패「타이틀」을 만인이 보는데서 박살낸 것이다. 그후 김씨는 잘린 손가락을 「알콜」병속에 담가 가까이 두고 수시로 쳐다보며 수양을 쌓아 지금은 억대의 사업가로 사회활동을 훌륭하게 하고있다.
갱생이 이들에겐 특히 힘들다. 창녀가 그렇듯이 암흑가에서 몸에 밴 『쉽게 벌어 헤프게 쓰는』습성때문이다. 더구나 주먹사회엔 「의리」라는 무형의 멍에가 있다. 섣불리 손을 Ep려다간 「배신자」란 낙인이 찍힌다. 배신자에게는 가차없는「피의 보복」이 기다린다.
전과7범의 악명높은 「서방파」두목 김태촌(30)도 지금 옥중에서 「과거」를 후회하고 있다.
전체 삶의 3분의1에 해당하는 1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김은 몇번이고 새생활을 다짐했지만 출옥후엔 그 세계에 다시 발을 들여놓을 수밖에 없었다.
76년9월 김은 자신이 이끄는 「서방파」의 「똘마니」19명과 함께 전남도경에 자수까지 했었다. 이들은 이때 『죄의 댓가를 받고 떳떳이 살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각 신문은 이 사실을 대서특필로 보도했다. 사회각계에서도 격려와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6개월 복역을 마치고 출감한 김은 진짜 두목 오상수(가명)를 찾아갔다. 「이제 손을 씻을테니 두목대신 옥살이한 보상으로 생계대책을 마련해 주시오』라고 요구했다. 이때 두목 오상수는 비웃는 표정으로 2만5천원을 던져주었다.
생계가 막연해진 김은 출감후 한달도 못돼 다시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김태촌이 오늘의 악명을 쌓기까지는 매오의 눈물도 수없이 흘렸다.
광주교도소에 복역중이던 74년 김은 붓글씨를 배워 옥중서예전을 가졌다. 김의 재생을 위해 기관장들이 모두 작품을 샀고 김은 이돈으로 교도소내에「테니스」장도 만들고 책도 구입해 동료 죄수들에게 읽히기도 했다.
그때도 막상 출소후에는 갈곳이 없었다. 과거의 두목이나「동생」들은 말할것도 없고 사회전체가 차가운 눈초리를 보냈다. 붓글씨를 써도 강매라는 인상을 준다고 재동이 걸렸다. 결국 김은 또다시 암흑가를 찾았고 또 별(전과)이 추가됐다. 이번 국보위의 일제단속으로 검거돼 검찰에서 수사를 받고있는 김은『어러석게 「의리」란 말에 속아 살았다』며 『이젠 여생을 성경공부를 하며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용팔이」로 유명한 이용희씨(49)는 주먹의 후배들에게 『의리를 잘못 해석해 범죄의 구렁텅이에 빠진다』며 사회규범을 바탕으로 한 참다운 의리를 지키도록 충고했다.

<옛동료 선도하기도>
이씨는 6·25직후 암혹가를 맨손으로 제패한 주먹의 고참이다. 『의리의 사나이 용팔이』란 영화의「모델」이 되기도한 이씨는 스스로도 전국 유명한 상대만 골라 대결했지만 38연승으로 한번도 꺾여보지 않았다고 자랑한다. 5·16을 계기로 손을 씻은 이씨는 지금 수억대의 재산을 모은 사장이됐다.
「프로·복싱」세계「챔피언」이었던 김생준도 한때「검은손」이었다. 76년초까지 김은 소매치기 두목밑에서 「삑따기」(「핸드백」털이)노릇을 해왔다. 검찰에 자수해 손을씻고 천부의 재질을 살린 김은 우리나라권투사상 최초로 세계「챔피언」3차방어에 성공했었다.
김성준은 최근 은퇴를 선언하고 속죄의 의미로 후배「검은손」들의 선도에 나서고 있다.
이밖에도 암흑세계를 청산하고 성공한 사람은 많다. 74년까지 「전북파」두목으로 악명을 날리던 김모씨는 서울중심가의 양주총판을 맡아 재산을 모았고 이제 그 재산을 뜻있게 쓰기위해 구상중이라고 말했다.
정치깡패로 알려졌던 유지광씨도 고향인 이천에서 여관·식당을 경영하며 살고 있다. 유씨는 5·16후 사형선고를 받았던 암흑가의 거물.
그는 스스로 『악용만 당하고 역사의 죄를 뒤집어 쓴채 버림받은 하우』라고 지난날을 후회했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 1∼3월동안 폭력·상해·공갈등 강력범죄는 모두 6천l백63건이 발생해 그중 86.3%가 검거됐다.

<생활수단 바꾸어야>
그중 25.7%가 재범이상으로 드러났다. 재범원인은 물욕 10.7%, 원한·분노 9.9%의 순이다.
서울지검의 폭력담당 윤재기검사는『중형위주의 단속으로는 폭력배근절이 어렵다』고 말하고 다소 인권침해가 있더라도 간척지·야산개간사업등에 이들을 고용해 개인별로 통장을 만들어 일정한 생활기반을 잡을 때까지 수용, 자립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의 불행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내일의 올바른 삶을위한 밑거름이 될수있다.
5·16후 국토개척단에서 노역을 했던 사람중에는 마음을 잡고 갱생에 성공한 이가 많다. 특히「보스」급으로 조장·반장을 맡았던 사람은 거의 새삶을 찾았다.
국보위는 지난번 일제단속에서 검거한 주먹들을 구분해 근로봉사 시킬것을 발표한바 있다. 그동안의 죄값을 땀을 흘려 씻어버리고 재생의 길을 찾도록 조치한 것이다.
이들의 가족친지나 피해자였던 시민들까지도 폭력없는 밝은 사회에서 이들의 갱생을 기다린다. <끝>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