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재회의 실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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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한 적십자사의 이호 총재는 남북적십자회담 제의 9주년에 즈음하여 『중단된 적십자회담을 무조건 재개할 것』을 북괴 측에 다시 촉구했다.
한 적총재의 성명은 이어 판문점에 이산가족 면회소와 우편물 교환소를 설치하고 노부모와 그 가족들의 상봉을 우선적으로 주선하며 남북 간의 생묘 방문단 교환을 하루속히 실시하자고 요구했다.
이호 총재의 이러한 성명은 9년 전 우리 측 적십자사가 제의한 이산가족의 확인·상봉·재결합에 관한 인도주의적 안건의 기본정신을 재확인 한 것이다.
분단 30년의 비극을 극복하는 가장 최종적인 작업은 물론, 정치적·제도적인 취지겠지만 그것은 일조일 석에 성취되는 일이 아니다.
분단 30년의 과정 자체가 좋든 궂든 역사적인 실체로 객관화되었기 때문에 통일의 목표 역시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일정한 과제와 단계를 거치지 않고서는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비관이나 체념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의 달성에 대한 냉엄한 견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통일촉진을 위한 우리의 부단한 노력을 저해하는 사실일수는 없는 것이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는 그때 그때의 여건과 흥망에 부합하는 가장 현실적인 조치를 취하는데 실수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오늘의 상황과 여건을 기준으로 생각할 때 이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조치』란 바로 이산가족의 재회를 실현하는 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안건은 민족 신심에 기초해 하려고만 든다면 아무런 부담 없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일뿐더러 정치니, 군사니, 국제관계니 하는 중임과 상관없이 비교적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측 제안은 그 내용에 있어서는 분단 최악의 인간적 비극인 이산가족의 상봉을 통일 이전이라도 우선 긴급히 해소해줄 것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 방식에 있어서는 반 정치적 한계를 준수하려 애쓰고 있다. 이산가족의 재결합이라는 일 자체의 성사를 위해서는 정치에 영향을 미쳐서도 안되고 정치의 영향을 받아서도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괴는 우리의 이러한 취지와는 달리 회담초기부터 대뜸 「안건 환경론」운운하며 우리측 법 조항 변경을 회담진척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등, 회담을「남한혁명」의 한 전술적 방편으로 이용하려 책동해왔다.
그리고 그 저의와 기도가 수포로 돌아갈 듯 하자 회담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안을 트집잡아 접촉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고 말았던 것이다.
북괴의 이러한 태도는 그들이 근본적으로 적십자 회담 같은 인도적 사항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적화통일이란 불순한 정치적 집념에만 사로잡혀 있음을 자인한 것이며, 그럴수록 북한공산집단의 반민족적이고 비인도적인 정체는 전 세계에 폭로될 뿐이다.
그러나 북한공산집단은 언제까지고 대한민국의 국민과 5천만 민족의 비원, 그리고 전 세계의 양식을 거역하면서 남북적십자회담의 인도주의적 취지를 외면 만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체제의 장벽을 뛰어넘어 끊어졌던 혈맥을 다시 이으려는 민족구성원 하나하나의 피맺힌 절규이며 대세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북괴 당국자의 갱생과 응답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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