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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바오로 2세, 분단 독일 2번 방문 … 베를린장벽 무너지는 마중물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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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프란치스코 교황의 분단국에 대한 관심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동료 사제들이 흔히 밟는 로마 코스가 아닌 독일행을 택했다. 독일 유학 시절은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깨달음의 순간”(영국 가톨릭헤럴드)으로 꼽힌다. 독일 남부 아우크스부르크의 성베드로 암 페를라흐 성당에서 ‘매듭을 푸는 성모 마리아’ 성화를 본 게 계기가 됐다. 꼬여 있는 흰 매듭을 풀어가는 성모 마리아처럼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고자 다짐한 것이다. 아르헨티나 귀국길에 이 성화의 복제품을 가져간 그는 교황이 된 후에도 바티칸 집무실에 이 그림을 걸어놓았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지도자”(포브스)로 불리는 지금, 그가 한반도행을 택한 것도 유일 분단지대인 한반도의 매듭을 풀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분단지대는 역대 교황들에게도 큰 관심사였다. 90년 통일 전후로는 독일에 교황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년 재임·사진)는 80년, 87년과 96년 세 차례 독일을 방문해 화합의 메시지를 던졌다. 87년 독일 방문을 마친 후 쾰른 공항에서 한 연설에서 독일 분단을 “역사의 비극”이라 칭하며 통일을 염원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독일뿐 아니라 냉전으로 인한 갈등 해결에도 앞장서며 독일 통일의 흐름을 만드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 89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비에트연방 공산당 서기장을 만나 그의 개혁·개방 추진 정책에 힘을 실어준 게 대표적이다. 그 이듬해인 90년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 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99년 ‘20세기를 이끈 지도자 20인’을 선정하면서 독일 통일 초석을 쌓은 공로로 요한 바오로 2세를 꼽았다.

 한반도의 분단은 요한 바오로 2세에겐 풀지 못한 매듭이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직후 추모미사에서 “당신이 나치 독일 치하에서 고통 받으셨기에 분단된 한국의 아픔을 당신의 고통처럼 느끼셨다”고 회고했다. 이런 요한 바오로 2세의 성인 추대 시성식을 올해 집전하기도 했던 프란치스코에게 한반도의 의미는 클 수밖에 없다. 요한 바오로 2세 외에도 한반도 분단 상황에 관심을 가진 교황이 또 있었다. 교황 비오 12세(재위 1939~58)는 6·25가 발발하자 “한반도의 전쟁 종식을 위한 기도와 지원을 아끼지 말자”고 수차례 당부했다. 비오 12세 본인도 전후 복구 사업을 위해 우리 정부에 1만 달러를 지원했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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