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의 귀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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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시골에 혼자 계시던 시어머님을 모셔온 지 넉 달이 된다. 처음엔 흙냄새 나는 고향을 떠나지 않으시겠다며 상경을 거절하셨지만 아들내외와 손자랑 아침저녁으로 웃음을 나누며 살수 있다는 생각에 마지못해. 올라오셨던 것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시어머님은 고향과 서울을 비교하시면서 몸은 편하나 마음은 더 고되다고 말씀을 하셨다.
며칠 전엔 볼일이 있어서 어머님께 집을 부탁했다. 아무나 섣불리 문을 열어주면 안된다는 인식이 박혀서인지 충실히도 집을 지키신 모양이었다.
왜냐면 그이가 집에 서류를 가지러 와선 「벨」을 눌렀지만 안에선 감감무소식이었단다. 계속 대문을 두드렸더니 어머님이 나와 『주인이 없으니 죽어도 문을 못 얼어주겠다』고 한마디하고 그냥 들어가 버리시더란다.
그이는 안되겠다 싶어서 『어머님 접니다』하고 큰 소리를 몇번 질렀단다. 그래도 못미더워서인지 어머님은 문틈으로 철저하게 당신의 아들임을 확인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문을 열어 주셨단다. 나중 어머님은 어처구니가 없으신 지 웃으시면서 도시에서는 집을 보는 일도 여간 긴장이 되지 않는다면서 아직은 기력이 있으니까 텃밭에 채소를 가꾸며 살다가 정 몸 움직이기가 곤란해지면 그때야 아주 울라오시겠다면서 당장 고향으로 돌아가시겠다 고 우기섰다.
할 수 없이 여름만 지내시면 찬바람이 불기 전에 모시리 가겠다는 다짐을 한 뒤에야 시어머님의 가방을 챙겨드렸다. 짧게 「퍼머를 하시고 흰 「카바」에다 「샌들」차림인 어머님은 피부도 하얘지시고 겉모양은 산뜻하게 변모하셨지만 마음만은 그간 퍽 지루하셨다는 듯이 활짝 웃는 얼굴로 집을 나섰다. 그 모습을 보니 자식의 정성도 시어머님껜 고향의 품만큼은 못 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왠지 송구한 기분이 들었다. 양기숙 <서울 은평구 응암동73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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