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사이공 억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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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하룻밤이 가고 해가 뜨니 9월30일 아침이었다. 물을 긷고 방을 쓸고 있는데 간수가 나를 부르러 왔다.
세 번째로 북괴요원 있는 곳으로 호송되었다. 심문실에 도착하니 어제 방안에 배치되었던 경비경찰 하사관은 지난 월요일 심문할 때의 상태로 되돌아가 방밖에 배치되었다. 「어젯밤 잘 쉬셨소?』 북괴선임요원이 심문조의 인사를 했다.
『당신이 원한다면 누님들 소식을 알러주겠소』 여러 번 해온 말을 또 되풀이했다.
『망신이 「웻남」 인민 5백명을 학살했다는 증거가 있소. 안 했다면 말 좀 해보오』
터무니없는 날조된 공갈이었다. 『그렇지. 틀림없군. 말 못하는군.』 북괴선임요원은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현재 남북대화를 하고 있지 않소.』 거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것이야 말할 수 있지 않소). 흰색 「노타이」 입은 자가 어제 한말을 또 반복했다.
한마디 말없이 묵비권을 행사하는 내가 꽤 밉다는 듯이 북괴선임요원은 나를 한참 응시하더니, 『당신은 뭘 믿고 그러는 거요. 「유엔」을 믿소? 「유엔」 사무총장이 당신 같은 것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줄 아오.
당신은 남반부에 돌아갈 줄 생각하고 있소? 「웻남」은 쌀이 남아서 당신을 3년 간이나 먹여주고 있는 줄아오. 「웻남」 속담이 있소.
과일을 따먹을 때는 그 나무 심은 사람을 생각하라는 속담이 있소. 전범들이 사형 당한 사실을 당신은 모르고 있소?』
좀 있다가 이번에는 흰색 「노타이」를 입은 자가 말하였다.
『당신의 경치이념은 무엇이오. 그것이나 들어봅시다.』
『우리가 고국통일을 하자는데, 우리 민족으로서 이를 반대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요. 정치이념을 떠나서 이야기 해 보자는 거요. 한번 말해 봅시다.
나는 귀를 막았다. 내가 귀를 막고 있는 동안 그들은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귀를 너무 오래 막고 있을 필요는 없다. 1,2분이면 족하다. 완강히 저항하든 나의 투지와 부동의 자세를 그들에게 보여주면 된다. 나는 귀에서 손을 뗐다.
그가 말하는 것은 항상 대부분 거짓말이기 때문에 나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또 크게 양보해서 그가 말한 것이 모두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나의 자유조국은 월공치하나 북괴치하보다는 몇 백배 및 천배 살기 좋은 낙원이라고 나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북괴선임요원은 언성을 높여. 『사태는 이렇소. 당신은 이 사태를 묵묵히 알아야 할 것이요. 사람은 기회를 한번 놓치면 망하는 법이요. 지금이야말로 당신이 중요한 결심을 할 때요. 나중에 후회한들 소용없소. 조국통일이 된 다음에 영광을 누릴 것이냐, 또 제2차대전 후 전범들이나. 「티우」 일당들처럼 아주 망할 것이냐 하는 것은 지금 당신이 어떻게 결심하느냐에 달려 있소.』
한반도의 통일은 적화통일로 그는 단정하고 있었다. 그들은 또 어제 한 이야기들을 되풀이 반복했으나 나의 입을 열지 못한 채 점심때가 되어 심문을 끝냈다.
「사이공」의 「시에스터」 시간이 끝나자 그들은 나를 또 심문장소로 데리고 가서 네 번째의 심문이 시작됐다. 심문을 시작할 때는 꼭 북괴선임요원이 먼저 말을 했다.
『낮잠을 좀 잤소? 아마 못 잤겠지. 수면제가 필요하면 좀 주겠소. 필요하오?』
이를 이어받아 흰색 「노타이」 입은 자가 말했다.
『당신도 조국통일은 반대하지 않을 거 아니요. 우리 아무런 부담 없이 서로 개인의견이라도 나누어 봅시다. 통일은 해야하지 않겠소. 그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나는 귀를 막고 고개를 90도로 돌려 오른쪽 창 너머로 「망고」나무 잎이 바람에 가볍게 나부끼는 것을 보다가 약2분 후에 손을 내리고 머리를 돌려 앞을 바라보는데 북괴선임요원이 째까닥하고 나를 향해 「카메라」의 「셔터」를 눌렸다.
나는 얼른 손으로 얼굴 하반부를 가리고 『왜, 내 허가 없이 내 사진을 찍는 거야, 안 된다.』하고 반말로 소리쳤으나 그자는 연거푸「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나는 얼굴을 한 손으로 가린 채 일어서며 『그따위 짓을 하면 「카메라」를 부숴 버리겠다.』 했더니, 그자는 「카메라」를 들고 황급히 경비경찰하사관이 기병총을 들고 앉아있는 문밖으로 뛰어 달아났다.
그자가 「카메라」를 감춰두고 제자리에 돌아올 때까지 심문은 중단됐다.
방에 돌아온 북괴선임요원은 손가방을 열더니 서류를 꺼내 보면서 『당신이 1964년에 여기 대사관 무관으로 왔소? 무관시절에 꽤 우쭐탰겠시다!』
『당신이 「티우」로부터 보국훈장을 받았소? 「티우」와 친한 사이라는데 왜「티우」가 도망갈 때 함께 안갔소?』
『학훈단장이 뭐요? 그거나 말해보시오. 2군참모도 했소. 당신이 육사7기요.』 그는 호통치듯이 소리를 내어 말하고 서류를 다시 손가방 속에 챙겨 넣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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