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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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불상을 보면 보통사람과 다른점이 32가지 있다. 그 중에서도 신기한 게 손가락사이를 붙여놓은 수족지능망상이다.
이것은 사람들을 구제할 때 혹시나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부처님의 마음씨를 나타낸다.
백호라는 것도 사람에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미문에 있는 백모를 말한다. 그것은 아무리 먼 곳에서 시름하고 있는 사람까지도 찾아내기 위한「안테나」의 효과를 한다. 부처의 귀가 크고 긴 것도 모든 사람의 하소연을 빠뜨리지 않고 다 듣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이 괴로울 때 제일 많이 찾는 관음상중에서도 묘한 것은 천수관음이다.
자비의 손길을 모든 사람에게 뻗칠 수 있으려면 천의 손이 필요하다고 여긴 탓일까.
물론 불상에는 천의 손이 아니라 좌우로 한가운데 둘씩 있는 큰손을 둘러싸고 20개씩 있다. 그것이면 충분히 온 세계의 중생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이란 자비를 바라는 중생이 만들어 낸 「이미지」 라는 지장보살에 가장 짙은 친밀감을 느끼는 것은 지장보살이 가장 소박하게 보통사람의 모습을 닮은 탓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부처에게 공통적인게 하나 있다. 오른 손을 위로 올리고 왼손을 밑으로 내려뜨린 인상이다. 그것은 모든 중생을 용서하고 모든 중생을 구제해 준다는 부처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모레 우리는 석존의 탄일을 맞는다.
불타의 생년월일은 사실은 분명치가 않다.
기원전 5백60년설도 있고, 기원전 66년설, 4백63년설도 있다.
날짜도 4월 초8일설 이외에 5월의 만월의 날 설도 있다.
옛 인도인은 생년월일과 같은 숫자에 무관심했다.
불타가 언제 나왔느냐는걸 굳이 밝힐 필요를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왜 석존이 나왔느냐는게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왜 우리가 석존을 섬기는지가 우리에겐 더 요긴한 문제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폭력에 떤다. 모든 것에 있어 생명은 소중하다. 내 몸에 견주어 죽여서는 안 된다. 죽이게 해서는 안 된다.』

<법구경>에 있는 구절이다. 이런 구절도 있다.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남을 원망함이 없이 우리 즐겁게 살아나가자….
실로 이승에서 원한에 대한 보복으로 인한 정복을 쓴다면 끝내 원한이 그칠 날은 없다. 원한을 버림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살게 된다. 이게 영원한 진리다.』
이건 불교도들에게만 어울리는 말은 아니다. 원한을 버리고, 사람들이 서로의 생명을 존중시하고 서로가 평화롭게 산다는 것처럼 아름마운 풍경도 없을 것이다. 「자비」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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