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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규연의 시시각각

유병언은 살아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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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
이규연 기자 중앙일보 탐사기획국장
이규연
논설위원

음모론=대사건(국가불신X혼란정보).

 사건 취재를 하며 만들어본 음모론 출현 공식이다. 2008년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세계 10대 음모론’을 선정한 적이 있다. ‘9·11 테러 미국 자작설, 엘비스 프레슬리 생존설, 외계인 거주설, 달착륙 연출설, 셰익스피어 가공인물설, 예수 결혼설, 파충류 지구지배설, 케네디 암살 배후설, 다이애나 사망 왕실 개입설, 에이즈 개발설.’

 음모론은 전쟁이나 테러, 유명인 사망, 역병 창궐같이 충격적 사건을 계기로 발생한다. 대사건이 날 때마다 음모론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국가가 신뢰를 잃거나 사회 불신이 팽배할 때 음모의 환경은 조성된다. 음모론의 또 다른 요소는 혼란 정보다. 상식으로 납득이 가지 않고 불완전한 정보가 유통될 때 음모의 싹은 자라난다.

 우리의 뇌에는 이야기회로가 있다. 감각기관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논리적으로 조합해 이야기를 구성한다. 혼란 정보가 들어오면 뇌는 짜증을 낸다. 부조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상의 조각을 끼워넣어 이야기를 완성하려 한다. 그 조각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음모’라고 믿어버리면 뇌는 평온을 얻는다. 심리학계는 이를 ‘긍정적 피드백’ ‘망각적 자각’ 등으로 설명한다.

 1987년 8월 경기도 용인에서 벌어진 ‘오대양 집단변사’는 역대 의혹사건의 백미다. 공예품을 만들며 공동체생활을 하던 오대양교 교주·신도 등 3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 상태가 기이했다. 창고형 공예품 간이공장의 좁은 다락방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경찰은 집단자살이라고 했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의문점이 너무 많았다. 타살이라고 단정할 증거도 없었지만 강력한 음모론이 고개를 든다. 전두환 정권 실세를 등에 업은 종교집단이 타살 배후라는 것이다. 오대양교와 금전관계가 있던 유병언도 배후로 의심받았다. 91년 오대양 신도 6명이 집단자수해온다. 변사사건과 별개로, 자신들이 다른 신도를 암매장했다고 고백했다. 이를 계기로 타살 음모론이 다시 부각된다.

 당시 사건기자였던 필자는 이참에 오대양 타살 음모론을 검증해보고 싶었다. 집단변사 장소인 용인 공장 주변에 진을 쳤다. 공장에서 수십㎞ 떨어진 다른 오대양 농장에서 신도들이 살해돼 실려왔을 가능성을 파고들었다. 법의학자 두 분도 인터뷰했다. 한 분은 자살 가능성을, 다른 한 분은 타살 가능성을 제기했다. 음모론의 실체는 결국 풀지 못했다. 오히려 기존 음모론을 더 증폭시키는 ‘죄’만 저질렀다. 다만 오대양사건이 음모론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음은 확인했다. 은밀한 종교집단의 집단변사,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등으로 땅에 떨어진 전두환 정부의 신뢰, 명쾌하지 못한 수사 결과와 법의학계의 엇갈린 견해 같은 혼란정보가 있었다.

 유병언은 두 번째로 음모론의 주역이 됐다. 그의 변사사건도 음모론의 출현요건을 모두 갖추었다. 세월호라는 대사건, 신뢰를 잃어버린 국가, 검경이 연일 내놓는 혼란스럽고 불완전한 수사 결과…, 우리의 뇌는 자연스럽게 상상의 조각을 끼워넣어 스토리텔링을 시작한다.

 “유병언은 살아있다.” “유병언 독살됐다.” “의료민영화 반발이 심해지자 정부가 여론을 돌리기 위해 사건을 터뜨렸다.”

 국민 대다수를 셜록 홈즈로 만드는 사회가 건강할 리 없다. 그렇다고 음모론 예방법이 있을까. 사건이 터지지 말라고 기도하든지, 국가가 더 신뢰를 받든지, 수사기관이 혼란정보를 내놓지 말든지…. 이보다는 출현한 음모론의 폐해를 줄이는 방도를 찾는 게 더 현실적이다. ‘음모의 사회적 중재’ 같은 건 어떨까. 사태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나서 시민에게 친절하게 설명하고, 전문가들이 틈틈이 과학적 검증자료를 제시하며, 언론이 좀 더 책임 있는 보도를 하는 방식이다. 이제 음모론 공식을 다시 써본다.

 음모론=대사건(국가불신X혼란정보)-중재.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