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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경기, 뒤를 지켜준 큰형님 최은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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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난 20일 전주에서 열린 프로축구 전북-상주의 경기. 프로에서 18년간 활약해 온 전북의 베테랑 골키퍼 최은성(43)이 마지막으로 골문을 지키는 경기였다. 킥오프 전 전북 선수 11명은 최은성의 경기 출전 횟수를 기리는 등번호 532번 유니폼을 입고 하프라인에 도열했다. 최강희(55) 전북 감독은 치열한 순위 싸움 중에도 주전 골키퍼 권순태(30) 대신 최은성을 선발 출장시켰다. 상주의 박항서(55) 감독은 선수들에게 봐주지 말고 슛을 때리라고 주문했다. 두 감독은 “영웅을 위한 예우”라고 입을 모았다. 전북 이동국(35)이 선제골을 넣자 전북 선수들은 최은성을 헹가래치며 선배의 앞날을 축복해줬다. 최은성은 전반 45분간 무실점해 6-0 대승에 기여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최은성은 1997년 대전에서 프로로 데뷔해 15년간 뛰며 단일팀 최다 출전 기록(464경기)을 세웠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엔 ‘넘버 3’ 골키퍼로 발탁됐다. 2012년 전북 이적 이후 2시즌 연속 30경기 이상을 뛰었고, 앞으로는 전북 골키퍼 코치로 축구인생 2막을 연다. 박지성(33)은 “최은성 선배는 축구 선수가 어떻게 몸관리를 해야 하는지 보여줬다”고 찬사를 보냈다. ‘평범했지만 위대했던 수문장’ 최은성과 22일 인터뷰를 했다.

지난 20일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골키퍼 최은성(오른쪽 끝)의 은퇴경기에서 전북 선수들이 최은성의 출장경기수인 532번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선 모습. [사진 전북 현대]

 -은퇴 경기에 이를 악물고 뛰더라.

 “구단이 은퇴 기념 머플러에 ‘출전 532·실점 674·평균 1.2’란 문구를 새겼더라. 만약 실점했다면 머플러를 다시 만들어야 했다(웃음). 후배들이 수비에 적극 가담한 덕분에 무실점할 수 있었다. (이)동국이가 경기 전 ‘골 넣으면 10명이 골대까지 가기 힘드니 형이 하프라인으로 오라’고 하더라(웃음). 생애 첫 헹가래 를 받으니 마음이 찡했다.”

 -은퇴를 결심한 이유는.

 “대전 시절 나를 가르쳤던 이영익 코치님이 ‘골대에 X칠할 때까지 해라’고 농담하신 적이 있다. 실은 지난해 여름 경기 도중 충돌로 오른손 약지 인대가 끊어졌다. 수술도 안 하고 참고 뛰었지만 한계에 부딪혔다. 팀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30년간 낀 장갑을 벗었는데 슬프지 않다. 프로 데뷔 때 10년이 목표였는데, 강산이 두 번 바뀔 동안 뛰었으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15년 뛴 대전에서 쫓겨나듯 팀을 옮겼는데.

 “중3 때 축구가 하기 싫어 상경했다. 박채화 감독님(배우 박한별 아버지) 도움으로 다시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대전 구단 해체설이 돌 때 김은중(35), 이관우(36) 등과 시민주 공모에 나서기도 했다. 전북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때 손을 내밀어 준 은인이다. 그리고 대전은 여전히 첫사랑이다. 은퇴하던 날 대전 서포터스 100여명이 ‘최은성 송’을 불러줬고, 서포터스 대표는 큰 절을 올리며 눈물을 쏟아, 나까지 울 뻔했다.”

 -K리그 657경기를 뛴 K리거 최연장자 김병지(44·전남)는 어떤 존재인가.

 “전도사, 마부 같은 존재다. 대전에서 나와 무적(無籍)일 때 ‘K리그 선수들이 모여 은퇴식 해 줄테니 걱정마’라고 이야기 해 주셨다. 병지 형은 700경기를 향해 가야 한다.”

 -K리그 골키퍼 최초로 고의 자책골을 넣었다.

 “지난해 7월 성남과의 경기에서 동국이가 공격권을 넘겨준다고 찬 공이 골문으로 들어가 버렸다. 2-2 동점골이었다. 다시 킥오프됐고, 동국이가 하필 내게 패스를 했다(웃음). 내 골문을 향해 자책골을 넣었다. 매너를 지키기 위해 아름다운 패배를 택했다.”

 -스스로 어떤 선수였다고 생각하나.

 “2002년 월드컵 당시 병지 형과 이운재(41)가 돌아가며 슈팅 방어를 하는데 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스스로 반성한 뒤 더욱 열심히 노력했다. ‘오늘과 지금에 충실하자’는 좌우명을 품고 살았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해 후배들이 최미네이터(최은성+터미네이터)’라 불렀다. 아내가 첫 아이를 가졌을 때 먹고 싶은 걸 못 사줘 지금까지 미안하다. ‘부지런함’이라는 천사가 ‘게으름’이라는 악마와 열 번 싸워 아홉 번을 이겼으니, 100점 만점에 90점은 주고 싶다. 누군가 최은성이란 선수를 물으면 ‘화려하진 않았지만 늘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박린 기자

최은성 "대전은 첫사랑, 전북은 은인”

생일 : 1971년 4월 5일 체격 : 184㎝·82㎏

출신 : 성내초 - 포항제철중 - 강동고 - 인천대

소속 : 대전(1997~2012년·464경기 603실점)
전북(2012~2014년 7월·68경기 71실점)

별명 : 최미네이터·수도승

가장 행복했던 순간 : 처음이자 마지막 A매치 2001년 나이지리아 평가전. 히딩크 감독이 “즐겨라”고 조언해줬고, 2-1 승리. 그리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좋아 하는 골키퍼 : 2002 월드컵 미국전 수문장 프리델(미국). 한 살 많은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17시즌 활약했고, 최근 토트넘과 1년 계약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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