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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런 검찰과 경찰에 내 세금을 써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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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찰은 유병언 청해진해운 회장 일가 체포에 연인원 145만 명을 투입했다. 범죄자 검거를 위한 사상 최대의 작전이었다. 하지만 전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씨는 붙잡힌 게 아니라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것도 40일 전인 지난 6월 12일, 유씨가 잠시 기거했다 도주한 전남 순천 송치재 별장으로부터 불과 2.5㎞ 떨어진 매실밭에서 인근 주민이 시신을 처음 보고 신고했다. 순천경찰서는 유씨로 의심할 만한 단서가 널려 있는데도 단순 행려병자라고 판단해 검찰은 물론 경찰 상부에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검찰과 경찰의 유병언 체포작전 과정을 복기해보면 허술한 초동 대처로 세월호 사고 희생자 규모를 키운 해경의 행태보다 더 한심하다. 우선 검경의 수사 협조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유씨의 장남 대균씨가 인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로 출국을 시도하려다 출국금지된 사실을 알고 도주한 시점은 지난 4월 19일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대균씨를 추적해 소재를 확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5월 12일 대균씨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됐으나 안성경찰서는 구원파 본산인 금수원의 출입을 통제하지 않았다. 만약 이때부터 금수원에 진입하거나 주변을 에워싸고 출입을 감시했더라면 유씨도 초기에 검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검찰이 수사를 한다는 이유로 경찰은 손을 놓고 있었다. 검찰은 5월 24일 유씨가 은신한 순천 별장을 급습했으나 그를 검거하지 못했다. 만약 경찰에 알려 순천 별장 주변을 통제했더라면 결과가 달려졌을지 모른다. 유씨의 시신이 발견된 뒤 경찰이 보여준 한심한 행태는 국민 입장에서 세금 내기도 아까울 정도다.

 시신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라지만 시신 주변에선 유씨의 세모그룹에서 생산하는 대표상품인 스쿠알렌 병이 발견됐다. 또 가방 안쪽엔 유씨의 저서 제목인 ‘꿈 같은 사랑’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숨진 유씨가 입고 있는 점퍼는 시가 수백만원에 달하는 이탈리아제 명품이었다. 충분히 유씨일 가능성을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순천경찰서는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유씨 밀항에 대비한다고 해군 함정까지 동원했다. 결국 경찰의 부실한 수사 때문에 국가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한 셈이다.

 경찰청은 22일 우형호 순천경찰서장을 직위 해제시켰다. 하지만 서장 한 명을 문책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성한 경찰청장이 직접 책임을 져야 한다. 단순 변사사건이라는 경찰 판단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지휘한 검찰도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다.

 세월호 사고 이후 가뜩이나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높아진 상황에서 유씨 시신 발견 후 각종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엔 의료민영화 입법예고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유 회장 시신 발견을 공개했다는 음모론도 나돌고 있다. 이런 의혹을 키운 책임은 처음부터 허둥대고, 공조를 제대로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유씨 일가를 잡지 못한 검찰과 경찰에 있다. 검경 수뇌부는 지금이라도 직을 걸어야 한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유씨의 사망원인을 철저히 밝혀내고 그의 두 아들 대균·혁기씨를 검거해 부당하게 모은 일가의 재산을 환수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