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혐악의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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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치적 무관심」 이라는 말이 있다. 사회학자들은 「폴리티컬· 애퍼디」 (Political Apathy)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국민들의 정치적 무력감을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정치의 권력「메키니츰」이 복잡·거대화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의사는 흐름 속에 휩쓸려 버리는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한편 우존 경쟁이 격심해 지면서 정치와는 관련을 잃고 일상생활에 몰두하게 된다. 정치적 무관심은 이런 상황에선 더욱 깊어 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허탈 다음에 오는 현상은 무엇일까? 「아돌프·히틀러」의 말에 잠시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정치 선전의 임무는 개인을 과학적으로 훈련하는 것이 아니고, 대중의 주의를 어떤 일정한 사실·사건·필요 등에 집중시킴으로써 그것이 중요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결국 정치 무관심은 강력한「리더」나 권위를 갈구하는 「아노미」 (두회적 혼란)현상을 빚게 된다. 「나치즘」이나「히틀러」는 바로 그런「아노미」의 산물이기도 하다.
한편「M·로젠버그」같은 사회학자는 『정치가 추하고 믿을 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국민들은「시니시즘」에 빠지기 쉽다고 말한다. 냉소주의라고나 할까.
이런 것을 극복하는 길은 국민이 자발적인 능동성과 합리적인 선택성을 발휘할 수 있도륵 양식 있는 여론을 조성하는 일이다.
정치는 이런 상황에서만 독주나 무리로 기울 수가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정치적 무관심의 경지를 넘어 정치 혐악에 빠지는 일이다. 정치는 더러운 것, 추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진보한 여론을 형성하기에 앞서 정치 그 자체를 외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민주 발전이라는 대명제를 놓고 모처럼의 국민적인 소망속에서 정치에의 관심도 높다. 관심뿐 아니라 기대까지도 큰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요즘 정당들이 연출하고 있는 이런저런 작태들은 여간 실망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어느 한 정당만의 일이 아니고 모두 함께 갖고 있는 정치협오적인 상황인 것이다.
특히 일부 지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 사태는 그 어느 편의 시비에 앞서, 정치와 정당, 그 자체에 대한 실망에 찬물을 끼얹게 한다.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하면 그 다음에 올 「아노미」 의결과가 무엇일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실망과 자제력. 이것은 어느 특정 세력이나 특정인에게만 요구할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발휘해야 할 최선의 지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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