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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테임즈·나바로, 미국선 B급 한국선 A+ 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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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NC 테임즈는 메이저리그 경력이 별로 없지만 외국인 타자 중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중앙포토]

2004년 4월 24일. 유승안(58) 당시 한화 감독(현 경찰청 감독)은 외국인 선수 엔젤(39)과 희한한 협상을 했다. “너, 메이저리그에서 포수였잖아. 한 번 해 봐.” “싫어. 포수를 시키려면 돈을 더 줘야 한다고.”

 그 전까지 엔젤은 3루수를 맡았지만 기대 이하였다. 고심 끝에 유 감독은 그에게 포수 마스크를 씌웠다. 엔젤은 1998년 외국인 선수 제도 도입 후 포수를 본 첫 외국인이 됐다. 이후로는 두 번 다시 포수를 맡지 않았다. 그는 박찬호(41)의 LA 다저스 시절 동료로 국내 팬들에게 잘 알려진 선수였다. 그러나 40경기에서 타율 0.275, 9홈런에 그쳐 실망만 안겼다. 포지션을 바꾸는 조건으로 웃돈을 요구한 건 비상식적이었다.

 지난 15일 인천구장에선 스캇(36)이 이만수(56) SK 감독과 말싸움을 벌인 끝에 “liar”라고 소리쳤다. ‘liar’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말쟁이’지만 실제로는 상대를 매우 능멸하는 말이다. 메이저리그에서 9년을 뛰며 135홈런을 때린 스캇은 올 시즌 외국인 타자 랭킹 1위로 평가됐지만 부상을 이유로 33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타율 0.267, 6홈런에 머무른 그는 항명 다음날 퇴출됐다.

 외국인 선수의 성적은 ‘스펙’순이 아니다. 올 시즌엔 반비례에 가깝다. 다른 선수들보다 경력이 떨어지는 삼성 나바로(27·0.322, 19홈런), NC 테임즈(28·0.332, 21홈런), 넥센 로티노(34·0.333, 1홈런) 등이 뛰어난 활약을 하고 있다. 이들에겐 한국에서 뛰는 것에 만족하고 팀과 동료를 존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재 직장(팀)에 대한 만족도가 높기 때문에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경력이 뛰어난 선수들은 한국야구를 한 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기량이 떨어진 걸 인정하지 않은 채 한국야구를 존중하지도 않는다. 그러다 정교한 한국 선수들에게 당하는 경우가 많다. 일정 수준의 힘과 기술을 갖췄다면 그 이후엔 열의가 더 중요하다. 자신의 포지션과 연봉에 만족하고 한국야구의 특성을 배워 적응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올 시즌 초 넥센이 외야수 로티노에게 “포수를 볼 수 있는가”라고 묻자 그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로티노는 마이너리그에서 여러 포지션을 떠돌았고, 일본 오릭스에서 2군 생활을 했다. 그에겐 헛된 자존심보다 자신의 활용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더 중요했다. 엔젤과 반대 케이스다.

 2000년대 초 현대(현 넥센) 스카우트들은 미국에서 경기를 본 뒤 꼭 ‘면접’을 했다. 선수와 식사를 함께 하며 품성과 매너를 살폈다. 서류보다 면접 비중이 높았던 현대는 외국인 선수를 잘 뽑은 구단으로 기억된다. 과거의 기록이 현재의 실력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이젠 여러 구단이 깨닫고 있다.

 외국인 선수의 성적은 팀 순위와 상관관계를 갖는다. 인적구성이 거의 바뀌지 않는 한국 선수는 상수, 매년 교체되는 외국인은 변수에 가깝기 때문이다. 올해 구단별 외국인 보유 한도가 3명(신생팀 NC는 4명)으로 늘어 중요성이 더 커졌다.

 SK는 지난달 외국인 스카우트 담당 직원으로 나이트(39)를 영입했다. 올해 5월까지 넥센에서 투수로 활약했던 그를 채용한 건 기록이 말해주지 않는 고급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SK는 올 시즌 8위까지 추락해 있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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