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에서 용돈쓰는 풍토돼야/일한만큼 대접받는 사회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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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몇달 전인가 어느 신문을 보다가 실소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공무원의 일부가 한달에 한번씩 받는 월급봉투를 고스란히 부인에게 갖다바치고 그 자신은 봉투에서 용돈을 거의 떼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집에서는 달마다 일정액을 정해 놓고 그 이상의 용돈은 빌려주는 형식을 취한다고 한다. 이자야 없겠지만 꼭 되돌려 받는 것은 물론이리라. 모르기는해도 상당수의 일반 직장남성도 마찬가지일것이다.
그들이 용돈을 안쓸리 없고 그 돈도 적지 않을텐데…. 그렇다면 그 용돈들은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뻔하다. 어딘가 불투명한「루트」를 통해, 또 석연치않은 방법으로 생기는 부수입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입장의「샐러리맨」들만 나무랄 수는 없다.
이런 비정상적인 가계운영이 되어야하는 책임이 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요, 우리 사회전체가 안고 있는 임금문제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받는 월급이 용돈을 쓸 수 있는 액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용돈마저 거기서 떼어간다면 도대체 살림이 될 수없을 것이다. 자식들 공부도시켜야겠고, 체면도 차릴 때는 차리며 살아야겠기에 비정상적인 부수입을 마달 수 없을것이다.
밤8시가 넘어 시내 중심가에 서 있는 저 높기만한「빌딩」들을 보라. 창문이란창문마다 불이 환히 밝혀져있다. 아직도 그들은 집에돌아가지 못하고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자는 시간을 빼고나면 그들의 시간과 노력은 직장 일에 거의모두 소비된다.
초봉이 교사는 13만원선, 대기업체는 18만원선, 여공이나 육체근로자는 고작 6만∼8만원 정도다.
그런데도 고용주들은 근로자들에게 성실만을 강요하며 가족적인 분위기, 가족적인 회사를 말한다. 그것도 봉건적인 가족관계를 말이다. 그렇다면 누가 아버지이고 누가자식이란 말인가?
모두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접대비 명목으로 술집 여인의「팁」까지도 공금으로 지불하게나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성실히 일하고 그에 알맞은 보수를 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올바른 직업 의식이 세워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무조건적인 성실만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남의 것을 도둑질하지도 말고 자신의 것을 도둑질당하지도 않는 것이 올바른 직업 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부정이 사회의 한 작은 구조적인 요인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암시한다. 한 지아비에게는 삶의 한 구조적인비애가되겠지만 내가 만약 결혼한다면 남편의 용돈은, 꼭 장담은 할 수 없겠지만, 월급봉투에서 내 주고 싶다. 용돈을 빌려주는 그런 아내는 더더구나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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