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풍조의 진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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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상의 큰 변동이 있을 때마다 극성을 떨었던 매점매석행위 등이 이번「1·12 환율 및 금리인상조치」이후엔 비교적 잠잠해졌다는 소식이다.
물가 인상의 조짐만 보이면 일부 주부들의 사재기로 으례 품귀현상마저 빚던 세탁비누·조미료·설탕·화장지 등 일부 생활필수품의 값이 이번 조치로 15∼20%가량 올랐지만 거래량은 크게 줄고, 그중 조미료·설탕 등은 정부고시가격보다도 더 싸게 팔리고 있으며, 생선·달걀 등 오래 저장하기 어려운 식료품값은 오히려 떨어지는 기현상마저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분양 때마다 날뛰던 투기꾼들, 고추 값이 오르자 고추생산단지까지 휩쓸고 다니며 매점매석을 일삼던 고추복부인들, 값이 오른다고 해서 「슈퍼마켓」에 있는 세탁비누·화장지 등을 몽땅 매점해 가던 사재기 등은 그동안 너무나도 자주 목도해온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풍조였다.
투기·매점매석 행위란 실상 따지고 보면 지속적인 「인플레」속에서 시민들이 터득해온 어쩔 수 없는 자위수단이었다고 보아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행위는 그럴만한 여유가 없는 동료시민들에게 공황심리를 일으키게 하고 정상적인 유통질서를 교란시킴으로써 선량한 소비자들에게 가계의 파탄을 가져오게 한다는 점에서 어김없는 반사회적 행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실상, 종래 우리가 자주 겪었던 일부·상품들의 품귀소동의 중요한 원인이 이 같은 사재기 심리에 의한 가수요 촉발에 있었다는 것은 여러 증거에 의해 분명하다. 예컨대 해마다 일어났던 연탄파동만 보아도 지나 놓고 보면 공급물량 부족때문은 아니었던 것이다.
정부시책에 대한 신뢰감 결여, 「인플레」기대감 등에도 그 원인의 일단이 있었던 것이지만 그 주범은 가수요였다는 것을 이제 시민들도 깨닫게 된 것이다.
따라서 「1·12조치」이후 사재기풍조가 사라졌다는 것은 물가 앙등의 주범인 가수요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매우 바람직한 현상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시중에 돈이 없다는 이유도 없지는 않겠지만, 사재기 등으로 얻는 이익보다 그로 인한 손해가 훨씬 크다는 것을 소비자들이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데에 더 큰 이유가 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고물가 시대의 시련을 이겨내는 길은 사재기가 아니라 근검 절약하는 가운데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이 모두의 이익이 된다는 것을 국민들이 그동안의 체험을 통해 알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가 안정은 모든 국민의 한결같은 바람이고 현정부가 당면한 최대 과제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바다. 정부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경제시책을 펴야 하고, 특히 생활필수품의 공급확대에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국민 또한 지금과 같은 이지적인 소비형태를 유지시킴으로써 가수요라는 독버섯이 다시는 선행할 수 없도록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물가고를 극복하는 열쇠는 정부나 생산자뿐만 아니라 바로 소비자 자신도 함께 쥐고 있다는 인식을 새롭게 할 때는 바로 지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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