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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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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새해 초나흘. 아직 도소주의 취기가 가시지 않은 이도 많을 것이다.
『홍서몽』 제53회에 보면 세배 돈을 나누어주고 도소주를 바치는 것은 대보름날 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세배돈은 압세전이라 하여 동전을 홍지에 미리 싸서 나눠주는게 제식이다. 배세전이라고도 했다.
현금주의의 요새는 그냥 날돈을 건네준다. 그것도 「인플레」탓으로 적어도 천원짜리 빳빳한 종이돈이 아니면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도소는 소라는 어름의 악귀를 죽인다는 뜻이 담겨있다. 악귀를 죽여서 사고를 소생시킨다는 뜻도 된다. 일설에는 또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유행하던 악역을 물리치기 위해 당시의 명의였던 화타가 처방한 약주이름이었다고도 한다. 어쨌든 푸짐한 세배돈에 아이들은 신나지고, 어른들도 또 도소주에 거나해지는 탓인지 신이 난다. 「신나다」는 말의 어원이 뭣인지 분명치는 않다. 혹은 「신이 나린다」의 준말인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보면 「신들린다」는 말도 있다. 흥이 지나쳤을 때 곧잘 쓰기도 한다.
악귀를 물리치는 것도 신나는 일이요, 마음 놓고 도소주에 취할 수 있는 것도 신나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쨌든 새해는 신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신바람 나는 새해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올해는 원숭이의 해. 뭣보다도 듣지 않고, 보지 않고, 말하지 않는 삼부의 원숭이가 생각난다.
노자를 찾아가는 길에 공자가 주의 태조후직의 묘를 들른 적이 있다. 거기에는 세 원숭이 상이 서있었다. 그 셋은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으며 밑에는 『말을 조심할지어다. 다언이면 패가 망신할지로다』라는 명이 적혀있었다는 얘기가 있다.
새해에는 신날 일이 많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마냥 흥에 겨워해서도 안된다. 원숭이에 얽힌 격언에 이런게 있다. 『치원달(월)을 잡는다』 산 속의 원숭이가 수중의 달을 잡으려한다는 것으로 무지 무모한 계획을 타이르는 말이다. 『원용산을 무너뜨린다』는 격언도 있다. 소사를 소홀히 해서 대사를 그르친다는 뜻이다.
너무 신날 때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한다. 그럴 정월은 아니다.
도시 정월의 「January」는 「Janus」에서 나왔다. 「야누스」의 신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있다.
하나는 앞을 보고 또 하나는 뒤를 보고.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 여기엔 담겨져 있다.
뒤를 조금만 돌아다보면 아무래도 조심스러워진다. 꼭 되리라 믿던 일도 틀어지는 쓰라린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다.
과거와 동떨어진 미래란 있을 수도 없다. 조심스럽게 걸어가야 할 새해. 독자여러분의 소박한 꿈들이 이뤄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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