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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의 발판.. 모스크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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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국스포츠는 80년대를 맞아 전례 없던 변화와 충격의 회오리에 휩싸일 것으로 보여 비장한 관심을 끌고 있다. 세 차례의「올림픽」을 비롯하여 숱하게 꼬리를 물 중요한「이슈」로 대망의 80년대는 한국스포츠에 성숙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7O년대와 같이 특별한 장애요인이 발생하지 않는 한 앞으로의 10년은 한국 스포츠가 개화의 절정기를 향해 항진하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국가적으로는 서방과 공산권의 심장부인 미국과 소련에서 각각 번갈아 개최되는 「올림픽」에서 북한과 더욱 격앙된 승부를 치러야 하는 숙명적인 과제이다, 국내적으로는 국민경제생활의 부단한 발전과 함께 스포츠가 폭넓게 생활 속으로 침투·확산되는 명실상부한 스포츠의 활성화가 실현될 조짐이 큰 것이다. 이러한국 내「스포츠」의 혁신적인 변화는 주요 인기구기종목의「프로·시스팀」창설과 생활인들의 건강·여가선용에 초점을 맞춘「레저·스포츠」의 가속적인 확산 등으로 압축된다. <80년대에 세차례>
파란을 틀림없이 예고하는 80년대의 벽두에 세계 「스포츠」의 대제전인 「올림픽」이 공산종주국 소련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열린다.
「올림픽」이 공산권에서 개최되는 것은 사장 처음으로 7월부터 8윌 까지의 제 22회 하계「올림픽」기간은 소위 「스테이트·아마·스포츠」의 강점에 편승하여 주최국 소련이 공산체제의 선전이라는 정치적 저의까지 십분 드러낼 것이 확실시 돼 어느 면에서는 『「올림픽」의 정치오염』이라는 최근의 추세가「피크」룰 이루는 역사적인 순간이 될 것 같다.
이 때문에 한국선수단의 「모스크바」행은 최소한 심리적으로라도 처절한 고행이 될 수 밖에 없다. 7O년대에 참패의 곤욕을 치른 배한이 일대 설욕을 위해 와신상담의 발악적인 도전을 해올 것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그 4년 후인 84년에는 제23회 하계「을림피」 이 소련의 적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거행된다.
이 두「올림픽은 자유·공산 양진영의 지주로서 운명적으로 영원한「라이벌」일 수밖에 없는 미·소의 양대국이 마치 총칼 없는 전쟁, 국력의 결전을 벌이는 것과 진배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올림픽」사상 가장 흥미로운 「페이지」를 잠식하는 셈이다.
한국「스포츠」가 어쩔 수 없이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모스크바」에서 시련을 겪어야 한다면 4년 후 「로스앤젤레스」에서도 뜨거운 땀을 홀려야 한다.
88년의 제24회 하계「올림픽」역시 대단한 관심의 대상이다. 이 대회를 한국이 유치하려는 것이다. 과연 「서울·올림픽」이라는 고유명사가 80년대에 이 세상에 탄생할 것인가.
그러나 그 실현성은 지극히 비관적. 공산권의 대한 폐쇄주의가 단시일 안에 시정되지 않는 한 국제「올림픽」위원희 (IOC) 에서 한국유치가 결의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무방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체적인 관측은「서울·올림픽」이 아닌 일본「나고야·올림픽」이 가장 유력하다.
「올림픽」 말고도 「아시아」 경기대회도 82년과 86년 두 차례이며 86년 대회를 역시 서울에 유치하려는 계획이 관철된다면 중공·북한등 공산국의 출전 문제를 포함, 국내가 온통 소란을 벌일 것이다. 프로·시스팀 출범
세계를 향한 스포츠의 완숙한 성장을 위해서는「프로·시스팀」이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이 철칙.
이 때문에 7O년대 후반에 들어 국내 일부 「스포츠」계에서는 「프로」의 창설을 위한 노력과 예비적 검토가 신중히 검토되어 왔다.
80년대의 새시대가 전개됨과 함께 이 범「스포츠」계의 여명은 실천의 청신호를 밝히기 시작했다.
「프로」의 선두주자는 축구가 윌 공산이 크다. 국기라 할 축구의 본격적인 발전을 위해 가장 「프로·시스팀」창설이 강조되어 온 탓인지도 모른다. 축구계의 일각에선 금년 8월께 비록 소규모이더라도 일단 「프로팀」을 발족시킨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다듬고 있다. 79년에 예비적인 구성과 경기를 한번 가졌던 가칭 「할렐루야팀」이 비슷한 성격과 체제로「프로」를 표방하면서 정식 출범하며 이에 기존 혹은 신생의 2, 3개 대기업축구팀이 가세할 전망이다.
70년대에 적극적으로 추진되다 일단 좌절된 야구의「프로」화도 2, 3년 안에 이루어질 것이 틀림 없다. 사실 축구보다 야구의 「프로」화가 여건상으로 더욱 유리하여 설사「프로」개척은 축구에 일단 뒤진다 해도「프로」야구의 발전속도는 오히려 빠를 는지도 모른다.
국내「스포츠」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축구와 야구의「프로·시스팀」 잠실로「아마추어」가 상 대적으로 위축, 「올림픽」·「아시아」 경기대회 등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일부의 우려는「프로」의 활성화로「스포츠」의 저변이 확대된다는 점을 깨닫는다면 한갓 근시안적인 오해일 뿐이다.
어쨌든 『박성화의 연봉 1억원에 육박』 이라든지, 『조광래 올해 개인소득 국내「랭킹」10위』 라든지, 혹은 『김재박 광고수입 5천만원』이라는 서독·일본「프로·스포츠」계의 흔한 얘기들이 이 땅에도 시중의 화제로 등장 할 날이 멀지 않다.
또 축구·야구복권 당첨으로 어느 공원이 횡재를 했다든지, 주말이면 가족나들이가 주로 경기장이 된다는 등 예상 가능한 새로운 얘기들은 다만 시중의「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지만 경제생활의 향상, 사회의 복잡화가 필연적일 때 이러한「스포츠」의 팽창과 활성화는 생활의 고귀한 윤활유로서 중요한 몫을 다할 것이 틀림없다.
축구·야구 외에도 80년대엔 시설확충에 따라 「테니스」·「사이클」 등의「프로」 선수가 나올 것 같으며 「프로·복싱」의 가속적인 발전가능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레저·스포츠 확대>
원유파동으로 인한 세계 경제의 위기가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지만 국민의 경제생활이 치명적으로 침체의 수렁에 빠지지 않는 한 7O년대이래 생활 속의「레저」에 대한 관심과 가치를 높이자는 국민들의 체질이 바뀔리는 만무하다.
오히려 「레저·스포츠」의 폭넓은 생활화는 가속될 것이 틀림없다.
경제적으로 거의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테니스」는 생활 「스포츠」로 계속 장수할 것이고 아직까지는 일부 부유층의 귀속 「프로」로 일컬어지는 「골프」마저 차차 대중화의 추세에 놓여 있다.
「골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공연한 선입관에 빠져 있었으며 최근 들어 최소한 중년층이상에게는 매우 효과적인 건강증진운동으로서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인도어」혹은 정규「골프장」이 날로 증가됨에 따라 중산층이나 중류이상의 봉급생활자들이 경제적으로 무리하지 않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골프」를 즐기는 시대가 한국에도 80년대 전반에 전개될 것이다.
또 대관령·진부령 외에 태백산맥·한라산 등에 새로운 「슬로프」 가 개설됨으로써 동계 「스포츠」 의 꽃, 「스키」가 남녀학생층을 중심으로 역시 대중화할 것이 틀림없다. <공산계 방한 늘 듯>
한국「스포츠」는 80년대에 두텁게 닫혔던 공산권에의 장벽을 뚫어 73년 「모스크바·유니버시아드」 를 비롯, 소련· 「유고」· 「헝가리」등 공산국가에 태극기를 휘날리며 원정함으로써 공산권과의 스포츠 교류에 전기를 마련했다.
80년대에는 지난 10년의 일방적인 원정이 아닌 쌍방 교류가 실현되리라는 기대가 없을 수 없다.
만약 86년 「아시아」경기대회와 88년「올림픽」이 서울로 유치된다면 공산국 선수단의 입국이 현실로 나타날 기회가 될 것이며 그 외에도 당장 올해 9월로 예정되고 있는 제1회 서울 「오픈」국제탁구대회에 일부 공산국들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듯이 최소한 일부 공산권 국가들과는 개별적인 왕래가 반드시 실현될 전망인 것이다.
한국「스포츠」는 이미 문호개방을 천명, 공산권 국가들의 자세 개선만이 문제다.
특히 북한이 심기일전, 허심탄회하게 순수한「스포츠」교류에 응해 실질적인·민족적 화합의 기회를 만들 것이라는 희망이 이 80년대에는 더욱 크게 부각된다. <박군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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