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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여기 … 백화점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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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공룡 모형들이 설치된 신세계 부산 센텀시티점 9층의 테마파크 ‘주라지’. 3967㎡(약 1200평) 규모의 공간에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공원을 만들었다. [사진 신세계]

신세계백화점 동대구 복합환승센터를 기획하고 있는 손기언(55) 상무는 지난달 초 두바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현지에서 그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 살펴본 곳은 상어 300마리 등 3만 마리 이상의 해양 생물이 들어있는 두바이몰의 수족관과 7성급 아틀란티스 호텔의 수족관. 판매 매장 분석은 2순위로 밀렸다.

 손 상무의 동선은 신세계의 새 출점 전략과 관계있다. 손 상무는 “단순히 상품을 구매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주말과 휴일을 맞아 놀이동산·동물원·야구장 등 야외로 나가는 고객들의 발길을 돌릴 수 있는 백화점으로 개발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의 일환으로 2016년 말 완공 예정인 조성돼 회전목마를 제외한 모든 시설이용이 무료다. 최대 300명까지 동시에 이용 가능하다. 손 상무는 “테마파크나 수족관 대신 판매대를 설치하면 당장은 연간 4000억원 정도 더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지만 더 장기적으로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쇼핑공간의 테마파크화는 정용진(46) 신세계부회장의 비전과 연계돼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경기도 하남 유니온스퀘어 착공식에서 “국민소득 증가로 가족 단위 외출이 늘어나는 만큼 앞으로 유통업의 경쟁 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백화점은 쇼핑과 함께 체험과 엔터테인먼트가 어우러진 생활·문화공간을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같은 백화점끼리 경쟁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뛰어넘어 다른 업종의 장점을 도입한 하이브리드형 백화점으로 진화해야 향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다.

직장인들이 스타벅스 서울 소공동점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스타벅스 코리아]

 신세계의 전략 변화는 테오도르 레빗 전 하버드대 교수의 ‘마케팅 마이오피아’를 경계하라는 지적에 기반한다. 레빗 교수는 1800년대와 190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 가장 번성했던 철도사업이 1970년대 들어 줄파산하며 위기에 처한 상황을 예로 들었다. 그는 철도 회사가 위기에 당면동대구 복합환승센터에는 국내 유통업계 최초로 대형수족관이 만들어진다. 기획부서에서는 3년전부터 전 세계의 수족관을 둘러보면서 이 센터에 맞는 적정규모, 동선형태 등을 수집해 왔다. 동대구 환승센터에는 9917㎡(3000평) 규모의 테마파크도 들어선다. 지난해 7월 3967㎡ 규모로 세워진 부산 센텀시티점 ‘주라지(ZOORAJI) 파크’보다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주라지파크는 ▶공룡의 땅▶아프리카 마을▶해적선 등 5개의 공간으로 하고 있는 것은 그 사업을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통수단중 하나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철도 사업 자체에만 국한해버렸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이유로 철도회사들은 서비스·비용 체계를 개선하지 못하고 고객들을 비행기나 버스 등 다른 운송수단에 빼앗겼다는 것이다. 레빗 교수는 한 때 잘 나가던 기업이나 산업이 쇠퇴하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고객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야한다고 지적했다.

 2011년 1월 경영위기로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한 코닥 역시 마케팅 마이오피아를 극복하지 못한 대표적 사례다. 1889년 설립돼 세계 최고 기업이라는 명성을 누리기도 했던 코닥은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필름 산업에 집중하다 무너졌다. 정작 1975년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한 건 코닥의 한 연구원이었음에도 이를 상용화하지 않고 가만히 뒀다. 대신 필름 카메라의 가격을 최대한 낮게 책정해서 카메라의 보급을 확산시킴으로써 필름에 대한 수요를 증대시켰다. 필름에 마진을 높게 책정해서 이익을 내는 영업을 한 것이다. 반면 후지필름은 디지털카메라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다. 카메라용 필름 부문의 인력을 대대적으로 감축했고, 보유하고 있는 화학기술을 활용해 화장품 사업 등에 진출했다. 코닥이 근시안적 시각에 갇혀있는 동안 후지필름은 새 시장을 만들며 새로운 소비자를 확충했다.

 98년 한국시장에 진출했던 세계 1위 소매업체 월마트 역시 교훈을 얻었다. 2006년 이마트에 한국사업 지분을 넘기고 철수한 이 회사는 한국 소비자가 원하는 복합적인 서비스를 무시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월마트는 창고형 할인매장답게 물건을 높은 위치까지 가득 쌓아 진열했다. 한국 소비자의 손이 닿지 않는 물건들이 많았다. ‘싸게만 팔면 고객이 몰릴 것’이라는 판단에 내부 인테리어에 집중하지 않았다. 반면 이마트는 제품의 진열 높이를 소비자의 손이 직접 닿을 수 있게 했다. 내부도 밝고 화사한 분위기로 꾸몄다. 이주희 이마트 상무는 “사기 편리하게 포장을 소량으로 하고, 신선제품의 경우 소비자가 직접 만져보며 살 수 있는 제품들을 늘리면서 창고형 할인매장과 차별성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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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쟁 상대를 단순히 같은 업종에 제한하지 않고 영역을 넓히며 성장을 지속하는 눈에 띄는 기업들도 나타났다.

 스포츠용품 세계 1위 기업인 나이키는 1994∼98년 5년 연속 3배 이상의 매출 성장세를 이어갔다. 한데 이후 성장률이 둔화됐다. 원인은 전자 게임기. 분석 결과 용돈의 절반 이상을 스포츠용품을 사는 데 쓰던 청소년들이 게임에 몰두하면서 회사의 매출이 줄어든 것이다. 나이키는 이후 닌텐도로 대표되는 게임기업체들을 경쟁상대로 삼았다. 다른 전자기술(IT) 업체들과 손잡고 운동화에 게임기 센서를 달고, 웹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친구들과 그 기록으로 경쟁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2012년에는 걷거나 뛰는 움직임을 칼로리 소모량, 운동거리 등으로 측정해 발광다이오드(LED)화면에 띄워주는 손목 밴드도 출시했다. 나이키는 경쟁상대를 리복이나 아디다스가 아닌 애플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코카콜라의 혁신 사례는 올 초 삼성전자 임직원들에 ‘고정관념을 깨라’는 메시지를 통해 소개됐다. 80년대 초 코카콜라는 미국 음료 시장의 35%를 점하며 업계 선두 기업으로 이름을 날렸다. 임직원들이 음료업계 최고의 기업이라는 기분에 취해있을 즈음, 81년 회장에 취임한 로베르토 고이주에타(Roberto Goizueta)는 “한 사람이 하루에 마시는 액체 중 코카콜라 비중이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음료업계 점유율 1위였지만 물 시장 전체로 보면 3%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킨 것이다. 이후 코카콜라는 다른 음료회사가 아닌 물 시장까지를 경쟁상대로 상정하고 변화를 해 왔다.

 커피업계에서는 스타벅스 코리아의 변신이 주목을 끌었다. 초기 커피 전문점이지만 단순히 커피만을 판매하는 것은 아니라 휴식공간의 역할을 강조하며 국내에서 성장세를 이었다. “스타벅스의 경쟁 상대는 영화관·도서관 등 편안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모든 곳”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최근에는 IT기술을 접목하며 서비스 방식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5월 말에는 전세계 스타벅스 최초로 모바일 앱(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편리하게 음료를 선택하고 결제할 수 있는 ‘사이렌 오더’ 서비스를 시작했다. 자동차를 몰고 와 차 안에서 매장 밖에 설치된 화상을 보면서 주문할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 매장도 확대하고 있다. 이석구 대표는 “다른 커피업계가 경쟁상대가 아니라 현재 스타벅스가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를 끊임없이 극복하며 새로움을 찾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문병주 기자

◆마케팅 마이오피아(Marketing Myopia)=근시안(Myopia)적인 마케팅을 뜻한다. 하버드대 교수였던 테오도르 레빗(Theodore Levitt) 교수가 1975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이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근시안적인 시각을 지닌 기업이나 조직은 생명력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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