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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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루이·주베」가 주연한 옛 명화 『여로의 끝』엔 색다른 양로원이 나온다. 늙은 무대인·영화인들을 받아들이는 곳이다.
이렇게 「파리」엔 30년대부터 벌써 양로원이 있었다. 『페페·르·모코』에서 「장· 가뱅」과 공연한 여우 「미레유· 바랑」도 이런 예술인전용 양로원에서 쓸쓸히 죽었다.
「프랑스」에는 그밖에도 직업별로 노원이많다. 퇴직 수위들을 위한 곳까지 있다.
그래도 「시몬·보브와르」는 『노인들은 가난·고독·질병과 절망에 시달려 있다』고 그의 사서 『늙음』속에서 한탄하고 있다. 양로원은 어느 나라에나 있다. 영국에는 「클래식」 음악가들을 위한 양로원도 10여곳이나 된다.
양로원 이외에도 노인들을 위한 시설은 수없이 많다. 「빈」에선 1백22개의 노인「센터」 에서 매일「코피」와 「케이크」를 무료「서비스」한다.
노인올 괴롭히는 것은 가난만이 아니다. 삶의 보람을 잃었다는 절망감이 있고. 질환이 있다.
북구의 노인들은 적어도 이런 것에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모든 노후대책과 의료가 무료인 까닭이다.
또 외로운 「프랑스」 노인들은 어느 지방에나 있는 「제삼연령대학」을 다니면 된다.
이런 시설이 우리 나라에는 전혀 없다. 누구나 늙으면 그만이다. 그러니 죽는 날만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가령 갑조근로소득세를 매달 5만원 이상씩 내는 장년의 고급「샐러리맨」이 있다고 하자. 그가 15년동안 일한다면 납세액은 1천만원이 넘는다.
그래도 퇴직하고 나면 그만이다. 알량한 퇴직금울 받은 사람이라도 그걸 꽂감 빼먹듯 하며 몇 년을 지나고 나면 그만이다.
아무도 그를 돌봐주지를 않는다.
그저 늙은게 죄일 뿐이다. 어쩔수 없이 자식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미 지난 여름부터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인의 비화가 보도된 것만도 두 건이나 있었다. 우리네 평균수명은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자연 노인인구도 늘어나고 있다. 보통은 총 인구의 5분의 1로 잡는다.
그 중에서 『죽지못해 사는』 딱한 노인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무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실상 우리네 사회에선 노인들이 발붙일 곳이 거의 없는 것이다. 자살한 노인들의 얘기도 자꾸만 개인적인 문제로만 돌리려 한다.
어제 자살을 기도한 노부부가 제발 목숨을 되찾기를 석원할 뿐이다. 그러나 그걸 그분들은 과연 바라고 있을까.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아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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