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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아산정책연구원 공동기획] ‘좌빵우물’ 서양 예절 외우며 밥상머리 전통 예절 파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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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호 23면

김홍도의 풍속화 ‘점심’. 18세기 조선 민초의 논두렁 식사 풍경을 생동감있게 묘사했다. 얼핏 무질서해 보이나 왼쪽 사내의 거동이 장중하고 오른쪽 술병 든 소년은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심지어 삽살개도 나대지 않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4월 17일 서울 명동의 회전초밥집. 점심시간에 손님이 몰리면서 식당 안은 소란스러워진다. 한켠에선 10여 명 되는 일행이 큰 소리로 떠들며 먹는다. 노래가 나오는 스피커 바로 밑에서는 여성 두 명이 큰소리로 버스와 강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종업원이 접시를 쾅쾅 내려놓는 소리가 귀를 때린다. 왁자지껄한 그곳에서 조용조용 담소하며 식사하기란 불가능하다. 취재팀도 목소리가 높아졌다. 얼떨결에 점심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는데 귀가 멍했다. 다음날 점심에 들른 서울 시내의 한 칼국수 집. 마찬가지로 시끌벅적하다. 사실 이런 모습은 일상적인 한국의 식당 풍속도다.

한국문화 대탐사 ⑫ 밥상<하>

40대 직장인 L씨는 가끔씩 일본 출장을 다녀오곤 한다. 그는 도쿄(東京)와 지방도시를 돌며 샐러리맨들이 즐겨 찾는 식당을 찾곤 했다. 도쿄 신주쿠(新宿)의 식당은 조용했다. 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옆자리에 앉은 손님들의 귀에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이를 배려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밥상은 언제까지고 이렇게 시끄러워야 하는가. 서울 모 기관의 영양사 K씨는 “대다수의 학생들은 합석한 어른이 수저를 들기도 전에 먼저 먹기 시작하고, 그것도 의자에 다리를 걸치고서 삐딱한 자세로 먹는다. ‘잘 먹겠습니다’는 인사도 없이 자기 입맛에 맞는 반찬만 골라 먹는다”고 무례함을 지적한다.

자신을 대한민국 중산층의 전형적인 가장이라고 믿는 김모(57)씨는 자기 집 밥상머리의 예절은 있는가를 따져본다. 20대 중·후반의 딸·아들과 휴일에 가끔 같이 밥을 먹는다. 식성이 다른 애들은 각각 다른 음식을 먹어 엄마가 분주하다. 자기 음식이 차려지면 후루룩 먹는데 감사 인사도 잘 하지 않는다. 음식을 남기고, 치우지도 않는다. 마뜩치 않다.

한국의 식탁예절 실태에 대한 아산정책연구원 여론계량분석센터의 흥미로운 조사가 있다. 지난 3월 25~27일 전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인의 밥상’에 대해 설문조사한 것이다. ‘전통 식사예절이 중요한가’, ‘전통식사 예절이 잘 지켜지나’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중요한가’에 대해 평균 82.1%가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각론은 분열된다. 여성이 84.7%로 남성 79.4%보다 높았다. 50대(83.7%), 자영업자(85.7%), 가사종사자(85.9%)가 중요시했다. 그러나 20대(78.5%), 대학생(71.4%)의 경우 많이 낮아진다.

‘잘 지켜지는가'란 질문에 평균 56.3%가 ‘아니다’고 했다. 여성(59.1%)이 남성(53.6%)보다 부정적이다. 40대는 59.1%, 50대 66.2%가 ‘아니다’고 했다. 주부도 59.0%가 부정적이었다. 반면 20대는 51.8%만이 부정적이다.

나이·직업·소득에 따라 밥상 예절에 대한 인식이 혼란스럽다. 나이별로는 양극화에 가깝다. 젊은 층은 전통 식사예절이 덜 중요하다고 보고 나이 든 이는 중요하다고 본다. ‘젊은이들 밥상 예절이 무너졌다’는 어른 세대의 개탄은 통계적으로 일리 있다.

이는 2003년 1월 대구ㆍ경북지역의 10~60대를 상대로 한 조사와도 일치한다. 전통 식사예절에 대한 인지도는 100점 만점에 77.78점이었는데, 여성ㆍ30대ㆍ기혼자ㆍ고소득층의 인지도가 높았다. 그러나 실천도는 71.72점이었다. 남자ㆍ10~20대ㆍ미혼자ㆍ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더 낮았다.(이연정 외, 『한국 전통 식생활 예절에 대한 인식 및 실천 정도』)

그렇다면 잘못된 예절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전통 예절의 뿌리격인 『소학』의 ‘음식지절’에는 이렇게 나온다.

▶밥을 뭉치지 말며, 크게 뜨지 말며, 길게 흘려 마시지 말라 ▶혀를 차지 말며, 뼈를 깨물지 말며, 먹다 남은 생선이나 고기를 그릇에 되돌려놓지 말며, 먹고 싶은 것을 굳이 얻으려 말라 ▶밥을 헤젓지 말라 ▶불고기를 한꺼번에 먹지 말라

백과전서파의 대가이기도 한 이덕무의 『사소절(士小節)』(선비 집안의 작은 예절) 제1장 제3절 ‘의복과 음식’의 내용 가운데 음식 부분을 정리하면 이렇다.

“나쁜 의복ㆍ음식이라도 싫어하거나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야한다. …부귀한 집 자제로서 거친 밥을 맛있게 먹으면 좋은 사람, 일반 백성으로 잡곡밥을 잘 못 먹으면 상서롭지 못하다. …음식 가리는 습성은 고치기 어렵지 않다. …성낼 일이 있어도 밥을 대했을 때 노기를 가라앉히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왈칵 놓지 말라. …남의 연회에 갔을 때는 음식 품평을 말라. …먹고 싶은 고기나 떡이 집어먹기 거북스런 곳에 있어도 자기 앞에 당겨놓지 말라. …식사할 때 더러운 얘기를 말라. 남이 식사를 끝내기 전에는 변소에 가지 말라. …(음식을) 칼로 꽂아 입에 넣지 말라. …국물을 꿀꺽꿀꺽 들이키지 말라. …젓가락으로 두드리지 말고 숟가락을 그릇에 부딪치지 말라. …밥을 먹을 때 기침도 하지 말고 웃지도 말며, …뜨거워도 입으로 불지 말고, …남김없이 먹으라.”

‘어린이 예절’에선 “어른과 식사할 때 먹자마자 일어나지 말라. 식사가 끝나면 반드시 수저를 정돈하라”고 했다. ‘부녀자 예절’에선 “자녀를 가르칠 때 음식 탐내는 것부터 금해야 한다. 탐욕으로 인해 사치한 마음이 생기고, 그로 인해 도둑의 마음이 생기고, 사나운 마음이 생긴다”고 했다. 이런 내용들은 현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예절이다.

두 손으로 라면 먹는 젊은 여성. 조용철 기자

요즘 국적불명의 매너가 유행하고 있다. 최근 신촌의 대학가 라면집. 젊은 여성들은 거의 전부 왼손에는 수저, 오른 손에는 젓가락을 들고 먹는다. 젓가락으로 라면을 말아 숟가락에 올린 뒤 먹는다. 그런 풍경은 도처에 있다. 요즘은 아예 떠먹으라고 국자형 숟가락이 등장했다. 이게 새로운 예절의 등장인가. 먹자골목, 대학가를 막론하고 여성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한손에는 포크를 다른 손에는 나이프를 쥐는 양식 스타일과 흡사하다.

그래도 되는 것일까. 대구대 윤리교육학과 장윤수 교수는 초등생들 교육 교재인 『현대사회와 예절문화』에서 ‘수저와 젓가락을 동시에 쥐고 음식을 먹지 않는다’라고 썼다. 남상민의 『예절학-이론과 실제』에서는 ‘숟가락ㆍ젓가락은 양손에 같이 사용하지 말고 하나씩 사용한다’고 했다. 장 교수는 “밥상 예절은 식사 때 주변에 대한 배려가 깔려 있는데, 두 손을 쓰면 당사자엔 편할지 몰라도 다른 사람에겐 안 그럴 수 있다. 삼가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는 “이 책은 초등생을 가르치는 예비교사들을 상대로 가르치는 교재인데 그런 밥상예절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서 그렇게 교육한다”고도 말했다. 90대의 김정희 씨는 “한손에 수저, 다른 손엔 젓가락을 들고 먹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밥상 예절”이라고 했다. 50대의 정 모씨도 “말도 안 되는 식사 예절”이라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20대 이하 51명, 40~50대 28명을 상대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양손에 각각 숟가락ㆍ젓가락을 함께 사용하는 예절이 옳은지’를 물어보자 20대ㆍ50대 모두 ‘예전엔 몰랐던 예절’로 꼽은 점이다.

호서대 정혜경 교수는 “우리는 ‘좌빵우물(좌측에 빵, 우측에 물)이라 하고, 포크와 컵의 순서까지 따지면서 서양 예절을 엄격히 지키려 하면서 우리 전통식탁에서는 아무렇게나 먹어도 된다는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밥상 부분에서 가장 파괴되고 있는 부분이 예절”이라고 말했다. 그는 “밥상 예절은 같이 밥을 먹는 타인에게 피해를 안 주고 배려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며 “이는 삶에 대한 배려와 실천으로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밥상 예절이 인성과 관련 있다는 점은 유아를 상대로 한 교육에서도 드러난다.

전남대 유아교육학과는 2012년 만 5세 50명을 대상으로 식사예절 교육을 실험했다. 식사준비에 참여시키고, 어른 먼저 식사하기, 식사 속도 조절하기, 감사의 말하기, 편식 지도하기 등을 단계별로 주5회 6주를 교육해 그런 교육을 안 받은 아동과 비교했다. 그 결과를 밥상머리 교육활동이 유아의 자아 존중감 및 조망수용 능력에 미치는 영향에 썼다. ▶자아 존중감 ▶인지 능력 ▶동료 수용 ▶신체적 능력 ▶자기 수용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 ▶상대방에 감사하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도 커졌다.

이덕무는 『사소절』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작은 예절에는 구속을 받지 않는다’고 하는데, …『서경(書經)』에 ‘조그만 행실을 삼가지 않으면 끝내는 큰 덕을 더럽힌다’고 했다. …작은 예절을 닦지 않고서 큰 의리를 실천하는 자를 보지 못했다.”

우리의 식사 예법은 가족 밥상에서 출발했다. 다 모일 때까지 기다려 식사하고, 어른을 우선시하면서 그를 통해 배려와 인내심을 배웠다. 밥상머리 교육으로 소통과 이해의 능력을 키웠다. 같이 먹으며 깨끗하게 먹는 방식, 즉 남을 위한 배려도 배웠다. 음식을 위해 수고한 사람에게 감사함으로써 원만한 인간관도 키웠다. 현대사회에선 예전처럼 할 수 없다지만, 남기지 않고 먹고 뒷자리를 정리하는 것 같이 사소한 것도 못한다면 어찌 교양적인 시민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 국가 경영과 같은 대사에 어울릴 큰 예절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인간사회 모든 예절의 절목은 밥상예절에서부터 출발한다.



취재지원=권은율 아산정책연구원 리서치 어시스턴트



세월호 사고로 순연됐던 밥상 <하>편 ‘밥상예절’을 싣습는다. 지난 4월 6일자 <상>에선 백반과 과시·낭비로 가득한 한정식의 문제를, 4월13일자 <중>에선 한식 영양의 양극화를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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