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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 사퇴 여론 편승해 악의적 신상털기 … 뒷맛 씁쓸한 사령탑 교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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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오른쪽)과 허정무 부회장이 10일 홍명보 감독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브라질 월드컵 부진에 대해 고개숙여 사과하고 있다. [뉴스1]

홍명보(45) 감독의 최종 선택은 자진 사퇴였다. 홍 감독은 10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6월 24일 대한축구협회가 선임 사실을 발표한 지 382일 만이다.

 홍 감독은 “월드컵 출전에 앞서 국민 여러분께 희망을 드리겠다고 약속했는데, 실망감만 전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면서 “1년 가까이 대표팀과 함께 하는 동안 많은 실수가 있었고, 그로 인해 여러가지 오해가 생겼다. 잘못을 통감하고 대표팀을 떠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브라질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를 마친 직후 곧장 사퇴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축구대표팀 감독으로서 국민의 비난을 받고 그것을 함께 가져가는 것까지 내 몫이라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축구대표팀이 브라질 월드컵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기대 이하였다. 러시아(1-1무)·알제리(2-4패)·벨기에(0-1패)를 상대로 1무2패에 그쳤다. ‘최종 엔트리 의리 선발’ ‘상대팀 부실 분석’ ‘선수단 컨디션 조절 실패’ 등 여러 논란에 휘말렸고, 대회 이후엔 브라질 현지에서 진행한 선수단의 음주가무 회식, 감독 개인의 부동산 매입 논란 등으로 홍역을 치렀다.

 홍 감독 사퇴 소식이 알려진 뒤 “본선 직후 물러났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다. 홍 감독은 축구대표팀 감독으로서 갖는 책임감의 의미를 ‘당장 성적이 부진하더라도 인내하면서 대표팀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대중의 눈높이는 달랐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 하고, 결과에 당당히 승복하는 것’이 책임감에 대한 일반적 개념이다. 뒤늦게 홍 감독이 자신의 착각을 깨닫고 사퇴했지만, 박수를 받으며 퇴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문제는 사퇴 과정에서 홍 감독의 잘못 이상으로 주변의 ‘흔들기’가 과도했다는 점이다. 땅 구입과 관련한 왜곡 보도가 대표적이다. 경기도 분당의 부촌(富村)에 11억 원 가까운 거액을 주고 땅을 구입했다는 내용인데, 대표팀이 파주트레이닝센터에 소집해 훈련하던 기간에 잔금을 치렀다는 공인중개사의 증언을 들어 ‘대표팀 훈련 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땅을 샀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홍 감독 측의 설명은 달랐다. 한 측근은 “대표팀을 맡은 후 홍 감독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주민들과 마주치는 걸 꺼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집을 지으면 최소한의 사생활은 보호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사를 결심하고 땅을 구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 감독 본인도 “감독으로서 대표팀 훈련을 저버릴 정도로 제 삶이 비겁하지 않았다”며 ‘대표팀 훈련지 이탈’ 의혹을 부인했다.

 축구대표팀 감독이 공인인 만큼 잘못은 냉정히 짚는 게 언론의 역할이지만, 검증되지 않은 의혹까지 마구잡이로 제기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게 축구계와 언론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나 홍 감독은 한국 스포츠가 공을 들여 길러낸 레전드이기도 하다. 악의적인 보도를 통해 한국 축구의 영웅을 무차별 공격하는 일부 언론의 마녀사냥식 행태는 섬뜩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홍 감독 거취와 관련한 축구협회의 대응 방식 또한 후진적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축구협회는 지휘봉을 맡긴 이후 철저히 홍 감독의 그늘에 숨어 여론의 화살을 피했다. 홍 감독 사퇴 기자회견 현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허정무(59) 축구협회 부회장이 예고 없이 단상에 올라 동반 사퇴를 선언했고, 뒤이어 정몽규(52) 축구협회장이 나타나 사과문을 낭독하고 취재진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홍명보 사퇴’라는 대형 이슈에 슬그머니 묻어가려는 축구협회 집행부의 ‘얕은 수’였다.

 축구계에는 “축구협회가 ‘정몽규 회장 모시기’에 전념하느라 한국 축구의 현안을 제대로 챙기지 않는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축구협회가 ‘정몽규 지키기’에만 집중한다면 제2·제3의 홍명보가 희생자로 전락할 수 있다. 홍명보 감독 유임에서 사퇴에 이르기까지 불거진 소모적인 논란의 가장 큰 책임은 정몽규 회장에게 있다.

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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