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긋는 나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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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 적군파의 대변인이 되어 쫓기는 몸으로 세계를 유랑하는「아다찌」(족립정생·40)가 영국에 살고 있는 그의 친구에게 느닷없이 편지 한장을 보냈다.『요즘와서 옛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산다고 들었는데 고국에는 자주 다녀오는지? 정말 자네가 보고싶다. 그러나 나는 지금 서방세계에서는 자유로이 나다닐 수가 없는 신세다.』
그가 느끼는 우정과 향수는 과격파「태러」단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너무나 평범하고 인간적인 감정들이다.
「아다찌」는 일본대 예술학부를 중퇴한 후 유학주 영화감독으로 활약하다가 71년 극좌파 「게릴라」조직인 적군파에 가입한 후 잠적해 버렸다. 결국 경찰의 추적에 쫓겨 72년부터 해외도피생활을 했다. 73년「암스테르담」에서, 77년「대카」에서 JAL기를 납치해 승객을 인질 삼아 구속동료의 석방과 6백만「달러」의 거사자금을 요구하고 목적이 달성되자 기체를 폭파했을 때는 바로「아다찌」가 유유히 성명을 냈었다.
28일은 이 유명한「대카」사건 2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금부터는「이데올로기」적인 과격한 영화가 아니라 일상생활 주변에서 소재를 찾아 가정과 인생의 행복을 영화로 만를고 싶다.』
젊었을 때 철없이 날뛰다가 환상적인 꿈에서 깨어나 허망과 좌절감에 빠진 한인간이 자신속에 내재한 광명으로 어둠속을 헤쳐나오는 인생의 단면을 보는 느낌이다.
그는 편지 말미에다 이렇게 썼다.『내 나이 벌써 사십. 이젠 어떤 선을 그을 때가 된 것 같다』-.
인생40-.「아다찌」는 극악한「테러리스트」이긴 하지만 그의 편지에선 인생의「커브」가 절실히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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