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는분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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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가닥『그래도...』하던 꿈은 무참히도 깨지고 금당주인부부는 운전사와 함께 시체로 발견되었다.
주범인 형은 대학을 2년까지 다녔고 동생은 한때 미술교사를 지낸 학사에 장교출신. 선악의 판단을 충분히 할만큼의 교육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사진기자에게 잡힌 표정에서도 그들은 전혀 뉘우치는 빛없이 마냥 태연자약하다.
우리네 범죄사상 흉악범도 적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것만도 도끼로 일가를 참살한 고재봉,전국을 누비며 10여명을 살해한 김대두 또는 은행을 턴다음에 자기가족을 몰살하고 자해한 이종대 문도석...
그러나 이들은 모두가 중등교육도 받지 못했거나 정신착란자들이었다. 결국 교육과 범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얘기일까.
범인이 금당주인을 죽인 것은 하오 2시30분쯤. 그후 다시 부인과 운전사를 차례로 죽인것이하오 4시. 그사이 1시간반이 홀렀다. 그동안 조금만치의 망설임도 없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우리를 놀라게한다.
그는 그저 5천만원인줄 알았던 돈이 5백만원밖에 안된다는 사실만이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뒤늦게 형의 범행을 알고 놀랐다는 동생도 형과 함께 세 시체가 놓인 방에서 나란히 잠을 잘수 있었다.
그리고 1백일. 그동안『쫒긴다고 생각지 않았느냐』는 기자물음에 그런생각은 전혀들지 않았다고 범인은 대답했다.
범죄자는 언제나 쫒기는 심리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그것을 범죄심리학자는 죄의식의 한표현이라고 풀이하고들 있다.
뮌가에 쫓기는 심리는 마음에 걸린다는 심리와 표현를 같이하게 된다.
살인을 저지른 다음에 그처럼 당당하게 범죄를 합리화 할수있던「라스콜리니코프」도 뮌가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게 있어서 현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런 것은 소설에서만 있는 것일까. 아니면 19세기의 범죄인과 오늘의 범죄인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일까.
골동품상부부살해범은 조금도 쫒긴다는 생각이 없이 태연히『가게일에 열심히 매달렸다』 고 했다.
그에게는 전혀 죄의식이 결핍되어 있었다고 블수밖에 없다.
그동안 여러차례에 걸쳐「텔리비전」에서는 어린 네자매가 눈물로 부모를 찾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신문은 또 절절히 피맺힌 주연양의 일기를 욺겨 실었었다.
그래도 범인들은 전혀 마음의 동요를 느끼지 않았다니 그저 악의 괴물이라고만 할까.
그저 끔찍스럽기만하다. 뭣이 이런 괴물들을 만들어 냈는지를 따질 경황도 아니다.
『나를 잔인하게 죽여달라』고 범인은 맡했다. 그러나 네 어린아이들의 슬픔은 뭣으로 달랠수 있겠느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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