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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흉부외과는 흥부외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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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김혜미
사회부문 기자

심장 기형으로 태어난 쌍둥이가 수술대에 누워 있다. 가슴을 갈라서 45분 안에 심장 대동맥을 만들어야 한다. 밖에서 수술을 지켜보던 다른 의사가 소리친다. “스톱워치가 멈추기 전에 끝내야 해. 아니면 바로 사망.”

 현재 시청률 1위를 달리는 드라마(닥터 이방인)의 한 장면이다. 쌍둥이의 생사여탈권을 쥔 ‘칼잡이’ 흉부외과 의사가 주인공이다. 흉부외과 의사는 의학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인기를 끈 ‘외과의사 봉달희’ ‘뉴하트’가 대표적이다. 흉부외과는 심장·폐 등 생명과 직결되는 수술을 담당한다. 긴장감과 긴박함에 휴머니즘이 섞이면 한 편의 드라마가 된다.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흉부외과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10년 넘게 전공의 지원율이 꼴찌를 맴돈다. 올해 51명의 흉부외과 전공의를 모집했지만 지원자는 31명(지원율 61%)이었다. 삼성서울병원 등 ‘빅 5’ 병원 중 4곳도 미달이었다. 심성보 가톨릭의대 흉부외과 교수는 “흉부외과가 ‘흥부외과’가 됐다”고 말했다. 가난하고 제 밥그릇도 못 챙기는 ‘흥부’에 빗댄 자조(自嘲)다.

흉부외과 의사는 큰 대학병원 아니면 취직할 데가 없다. 수술 난이도에 비해 수가가 낮다. 10명(마취과 등 다른 의료인력 포함)이 10시간 수술해도 300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 개업하기도 쉽지 않다. 개업한 10명 중 8명은 흉부외과 전문의 자격을 숨기고 감기 환자를 보거나 쌍꺼풀 수술을 한다.

 정부가 손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2009년 수가를 100% 올렸다. 그런데 이 돈의 상당 부분이 흉부외과 의사에게 가지 않았다. 병원의 적자 보전에 쓰였다. 전공의가 새로 충원되지 않으면서 기존 전공의들이 힘들어지고, 신규 지원을 더 안 하고, 이런 악순환이 계속된다.

 흉부외과의 위기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 병원에서 흉부외과 전문의가 없어 심장 박동이 약해지고 있는 응급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지금이야 큰 병원에서 해결한다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의사가 없어 제때 수술을 못할 수도 있다. 환자가 의사를 찾아 해외로 나가거나 외국에서 흉부외과 의사를 수입하지 말란 법이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금의 흉부외과 기피 추세가 계속되면 2025년에는 흉부외과 전문의가 필요한 수의 절반밖에 안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정부가 다음 달부터 수술·처치 선택진료비를 절반으로 줄이면 수술을 많이 하는 흉부외과 의사의 몫이 줄 수도 있다. 고난도 수술 수가를 올려 보충한다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장기 수급 현황을 정밀하게 분석해 부족한 흉부외과 의사 양성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거나 지원하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때다.

김혜미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