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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도교가 중국만의 것 ? 샤머니즘도 섞여 있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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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동아시아
상상력과 민족서사
정재서 지음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347쪽, 2만원

최근 중국에 ‘랴오허(遼河)문명론’이 드세다. 중국문명의 기원이 황허(黃河)나 창장(長江) 일대가 아니라 랴오허 일대라는 것이다.1982년 랴오닝(遼寧)성 차하이(査海)에서 빗살무늬 토기와 옥 귀걸이,그리고 용의 형상이 발굴됐는데 탄소연대 측정결과 8000년 전 유적으로 판명됐다. 용은 중화민족의 토템인데, 중국의 문명권으로 치지 않았던 만리장성 밖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러자 중국은 고대문명탐색 프로젝트를 2003년 출범시키고, 동시에 랴오허 유적의 고대 민족이 중국 건국설화의 주인공 황제(黃帝)의 후예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지역은 본디 동이(東夷) 문화권으로, 태백을 정점으로 한 단군설화의 마당이다. 일찍이 육당 최남선이 주장한 ‘밝’사상의 불함(不咸)문화권이기도 하다. 특히 샤머니즘은 은(殷)나라와 동이족의 유력한 원시종교인데, 요하문명의 유물에서도 그 흔적이 보인다. 귀걸이와 토템의 소재로 쓰인 옥(玉) 역시 압록강과 강원도 고성 일대에서 출토된 것과 성질이 같다. 어쩌면 신화 속의 황제(黃帝)와 치우(蚩尤)의 대결도 이들 고대 주민들의 정착과 이동, 협력과 갈등을 상징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신화와 도교를 깊이 연구해 온 저자는 문화의 단원(單元)론을 경계한다. 중국의 신화와 도교 역시 주변 문화와의 교섭 결과이자, 동시에 동아시아 전체의 상상력 원천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의 ‘토생토장(土生土長·한 지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람)’을 거부한다. 서로 얽히고 주고받으며 성장한다는 것이다.

 무속과 도교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신화집인 『산해경(山海經)』에는 불사약을 지닌 무당 이야기가 나온다. 불사는 도교의 궁극적 경지로, 후세에는 단련보다 단약(丹藥)이나 선약을 통해 이루려 했다. 그런데 무당이 불사약을 지니고 있다는 신화는 샤머니즘 자체에 이미 도교의 중심 모티프가 깃들어 있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도교의 부적은 무속의 영향이다. 부적 글씨는 고문자의 이미지를 기괴하게 변형시켰다. 그 기원은 갑골문자인데, 점쳐서 얻은 예언과 신탁을 적는 무속행위이다. 무속과 도교는 서로 얽히고 흐르면서 상상력의 보고가 됐다는 얘기다.

 저자는 다원적인 중국문명 형성과정에서 샤머니즘과 동이(東夷) 문화권 신화를 바탕으로 도교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한민족의 상고 문화도 중국문명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고 추론한다. 그러면서 ‘랴오허 문명’으로 촉발된 중국의 ‘신판 단원론’에 우려를 던지고, 동아시아 상상력의 원천을 더욱 풍부하게 발전시킬 수 있도록 ‘열린’ 자세를 촉구한다.

박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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