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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대구의 맛·골목 … 사투리로 읊어낸 노시인의 '망향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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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자신의 세 번째 사투리 시집 『대구-노곡동 징검다리』를 들고 진골목에 선 상희구 시인. 그는 “50여 년 전 골목길 모습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공정식]

시인은 진골목을 걸으며 추억에 잠겼다. 궁핍하던 소년 시절 진골목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대구의 거부들이 살았던 그 골목에서 ‘나는 언제 저런 집에서 살아보나’하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 때 그는 진골목 입구 대구소방서의 사환으로 일했다. 취직과 함께 서울로 간 그는 옛날이 그리울 때마다 진골목을 찾는다. 그는 “한옥이며 골목길의 정취가 옛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사투리 시인’ 상희구(72·인쇄업·서울 충무로)씨가 세 번째 연작 사투리 시집 『대구-노곡동 징검다리』를 펴냈다. 1950, 60년대 대구가 무대다. 2012년 1집 『대구』, 지난해 『추석 대목장날』에 이은 작품으로 모두 사투리를 섞어 썼다. 이번 시집에는 ‘대구의 맛·명소’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가난했던 시절 먹었던 보리밥·갱죽·부추전 등을 대구 사투리로 묘사했다. 명소로는 상씨가 뛰어놀았던 노곡동·진골목·검단동 보리밭 등의 풍경을 담았다.

 ‘아, 노곡동 징검다리!’에는 금호강을 가로질러 길게 놓인 징검다리를 그렸다. 돌다리에 쓰인 다양한 돌을 ‘돌띠이(돌덩이), 돌미이(돌멩이), 돌덩거리(돌덩어리), 도리납짝(동글납작)한 돌로 표현했다. 시집에는 ‘진골목’도 들어있다. ‘…/대구 묵은디(토박이) 부자들이/마이(많이) 살았던 곳/약전골목 염매시장/종로통은/바로 이부잰데(이웃인데)/앞산 안지래이(안지랑이)나/무태꺼정은(무태까지는) 멀다’

 연작시집을 쓴 동기는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다. 언젠가 사라질 사투리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도 한몫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한다. “아버지가 가정을 돌보지 않아 늘 보리밥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어요. 어머니는 4남매를 키우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었지요. 어려웠던 그때와 어머니의 구수한 사투리가 그리웠습니다.”

 상씨는 회계사무소에서 일하며 대구상고 야간부를 마쳤다. 힘든 일상에서 위안을 준 것은 책이었다고 한다. 틈날 때마다 서점에 들러 시집·소설 등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는 “그게 글쓰기의 바탕이 된 것 같다”고 했다. 이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77년 섬유업체를 차렸지만 몇 년 뒤 부도가 났다. 그때 갑자기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결국 서정주 시인이 창간한 월간 ‘문학정신’을 통해 87년 등단했다. 89년엔 첫 시집 『발해기행』을 내는 등 잇달아 시집을 출간했다.

 내년 1월에는 대구의 역사인물을 다룬 4집을 낼 예정이다. 대구의 방언·종가·사찰·민속·세시풍속·산·하천 등을 모두 10권에 담아낼 작정이다. 상씨는 “사투리가 생각나지 않을 때는 당시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면 술술 풀린다” 고 했다.

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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