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기사 5단계 분류 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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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권력과 언론의 긴장 관계'를 강조해온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의 언론 정책이 구체화하고 있다. 청와대와 문화관광부.국정홍보처가 전방위적으로 언론정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최근 국정홍보처는 특정 기사에 대해 보도 내용.사실확인.대응조치로 분류해 보고하라고 각 부처 공보관실에 지시하고 있다.

국정홍보처는 기존의 '언론분석팀'과는 별도로 직원 6명으로 구성된 '오보 대응팀'을 이미 만들었다. 이들이 해당 부처와 수시로 접촉해 보도에 대한 대응책을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12일엔 정부종합청사 주변 10여개 행정부처 공보 실무자들을 소집해 '문제 보도 대응 방법'을 주제로 회의한다고 한다. 10일엔 청와대도 비슷한 작업을 각 부처에 지시했다.

정부 각 기관에 관련 보도 내용을 요약하고 기사의 성격을 분류해 매일 보고하라며 다섯가지 분류 기준까지 제시했다.

부처 성격에 따라 청와대 정책실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홍보.민정수석실이 각각 자료를 취합하고, 다시 홍보수석실을 거쳐 盧대통령에게 보고한다는 것이다.

언론중재위를 통한 정정보도나 반론청구권 등 공식적인 조정절차가 얼마든지 열려 있는 데도 청와대와 국정홍보처가 중심에 서서 언론보도에 대한 정면 대응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는 청와대 각 수석실과 정부의 모든 부처가 동원되고 있다.

특히 이라크전과 북핵 문제, 한.미 동맹 관계 등 굵직한 현안이 쌓여 있는 NSC까지 나서는 등 정부의 역량을 언론 대응조치 마련에 집중 투입하는 양상이다.

청와대가 정부에 지시한 기사 분류법도 지나치게 주관적이어서, 현 정권이 적대감을 표시해온 일부 언론에 대해서만 가혹한 잣대가 적용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벌써부터 '특정 언론 길들이기' 차원의 계산이 깔려 있지 않으냐는 의구심이 대두되고 있다.

또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기사가 사실이더라도 과연 부처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겠느냐는 문제도 있다.

숙명여대 정보방송학과 박천일 교수는 "정부가 이 같은 기사 분류를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며 "'악의적 비판'과 같은 용어를 현 정부가 쓰는 것을 볼 때 언론을 건강한 동반자라기보다 적대적인 상대로 인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박종희(朴鍾熙)대변인은 논평에서 "일선 언론인들이 명예를 걸고 심혈을 기울여 만든 기사를 어떻게 5지선다형 답안 고르듯 단순평가하려 하느냐"며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온 나라가 뒤숭숭한 판에 국정은 팽개치고 언론과 한판 승부를 벌여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지 심사숙고해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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