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세는나이와 앰한나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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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예절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선 모르는 사람과 만나 안면을 트고 나면 으레 서로의 나이를 물어본다. 동갑이라면 편하게 말을 놓을 수도 있지만 연장자라면 존대를 해야 낯 붉히는 일을 피할 수 있어서다. 이럴 땐 만 나이가 아닌 한국 나이로 몇 살인지 대답하는 게 일반적이다. 1984년생이라면 보통 서른한 살이라고 한다. 몇 월에 태어났든 상관없이 태어난 해를 1년으로 쳐서 얘기하는 것이다. 이를 가리키는 말이 바로 ‘세는나이’다. “환갑은 만으로 예순 살이지만 세는나이로는 예순한 살이다”처럼 쓰인다.

 ‘앰한나이’ 때문에 옥신각신할 때도 많다. 새해의 첫머리에 태어나든, 한 해의 마지막 무렵에 태어나든 둘은 동갑내기가 되지만 12월 31일에 태어난 이와 다음 해 1월 1일에 태어난 이는 한 살 차이가 나게 된다. 가령 빠른 85년생이 84년생에게 화끈하게 말을 트자고 해도 84년생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건 ‘앰한나이’도 무시할 수 없다는 서열의식이 작용해서다. 12월 31일에 태어났다면 나자마자 한 살, 해가 바뀌는 다음 날은 두 살이 된다. 이처럼 연말에 태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이 한 살을 더 먹게 된 경우의 나이를 일컬어 ‘앰한나이’라고 한다. ‘애먼나이’나 ‘엄한나이’라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나 “섣달그믐에 태어났으니 설을 쇠고 나면 앰한나이 두 살이다”와 같이 사용해야 바르다. ‘애매하다’의 준말인 ‘앰하다’와 ‘나이’가 합쳐진 단어여서다. 이 ‘앰한나이’도 햇수 나이이므로 ‘세는나이’에 해당된다.

 한국은 나이를 셈하는 방법이 경우에 따라 달라 헷갈릴 때가 있다. 일상생활에선 ‘세는나이’가 통용되나 법적으로 따질 때는 생일을 기준으로 한다. “만 나이로 몇 살이다”와 같이 사용하는데 생일이 지났는지, 안 지났는지에 따라 나이가 달라진다. ‘만(滿)’은 날·주·달·해 따위의 일정하게 정해진 기간이 꽉 참을 이르는 관형사다. ‘세는나이’ ‘앰한나이’는 하나의 명사이므로 붙이지만 ‘만 나이’의 경우 한 단어가 아니므로 ‘만’과 ‘나이’를 띄어 써야 한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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